헌법재판소가 다른 사람의 자동차 보닛(엔진 덮개)을 발로 밟아 찌그러뜨린 자폐성 장애인에 대한 기소유예 처분을 취소했다.
헌재는 지난달 20일 자폐성 장애인 ㄱ(27)씨가 낸 헌법소원을 받아들여 서울남부지검의 기소유예 처분을 재판관 전원 일치 의견으로 취소했다고 15일 밝혔다. 장애인인 ㄱ씨가 사건 당시 차를 훼손할 고의가 있었다고 보기 어려워 죄가 성립되지 않는다는 취지다.
ㄱ씨는 지난 2020년 7월 길을 걷다가 서울의 한 아파트 앞에 주차된 차량을 보고 보닛 위에 올라가 오른발로 두차례 차량을 밟았다. 다음날 오전 차량이 찌그러진 것을 발견한 차 주인이 경찰에 신고했다.
ㄱ씨는 경찰 조사를 받았지만 경찰과 의사소통이 제대로 되지 않았다고 한다. 자폐성장애인 1급인 ㄱ씨는 관련 진단기준에 따르면 ‘주위의 전적인 도움이 없이는 일상생활을 해나가는 것이 거의 불가능한 사람’이었기 때문이다. ㄱ씨의 어머니는 경찰 조사에서 “ㄱ씨가 최근 말을 조금씩 하기 시작했다”며 “평소 자동차에 관심이 있기는 하지만 이런 행동을 한 건 처음이고 그 이유도 전혀 모르겠다”고 대신 진술했다. 조사는 약 13분 만에 끝났다.
이후 사건을 넘겨받은 검찰은 ㄱ씨의 재물손괴 혐의를 인정해 같은해 8월 기소유예 처분했다. 기소유예란 혐의가 인정되지만 검사가 피의자의 연령 및 범행 후 정황 등을 고려해 재판에 넘기지 않는 처분을 말한다. 형사 처벌은 면할 수 있지만 수사기관이 죄가 성립한다고 판단했다는 점을 근거로 민사 책임을 질 수 있고 수사경력 자료도 5∼10년간 보존된다.
헌재는 검찰의 기소유예 처분을 취소했다. 헌재는 “ㄱ씨의 재물손괴죄가 인정되려면 ㄱ씨가 당시 이 차량을 훼손시키겠다는 인식을 미필적으로나마 가지고, 사물을 변별할 능력과 의사를 결정할 능력도 갖추고 있어야 했다”고 밝힌 뒤 “그러나 당시 ㄱ씨가 재물손괴의 고의와 책임능력이 있었다고 보기 어렵다”고 판단했다.
이어 헌재는 “검사는 ㄱ씨의 자폐성 장애의 정도 등을 확인하지 않는 등 수사 미진의 잘못이 있다”며 “이로 인해 ㄱ씨의 평등권과 행복추구권이 침해됐다”고 덧붙였다.
오연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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