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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 사회일반

“조부 김범수는 3·1운동 광주 시위 핵심…하루빨리 서훈을”

등록 2023-08-17 19:16수정 2023-08-21 15:46

광주 광복절 행사 처음 초대받은 손녀 김행자씨
독립운동가였던 의사 김범수 선생의 손녀 행자씨가 15일 광주광역시 광복절 경축식에 참석해 태극기를 들고 있다. 광주시 제공
독립운동가였던 의사 김범수 선생의 손녀 행자씨가 15일 광주광역시 광복절 경축식에 참석해 태극기를 들고 있다. 광주시 제공

“하루빨리 할아버지 김범수 선생이 독립유공자 서훈을 받을 수 있기를 바랄 뿐입니다”

지난 15일 광주광역시청 대회의실에서 열린 제78주년 광복절 경축식이 끝난 뒤 만난 김행자(79·전 전남여중·고역사관장)씨는 “검소하셨고, 절약을 강조하셨던 할아버지 모습을 지금도 또렷하게 기억한다”며 말했다. 광복절 경축식엔 서훈을 받지 못한 독립운동가 김범수(1899~1951?) 선생 손녀 행자씨와 1929년 광주학생운동 주역이었던 장재성(1908~1950) 선생 기념사업회 황광우 운영위원장, 일제강제동원 피해자 양금덕(92)·이춘식(99)씨 등이 처음으로 초대받았다.

독립운동가 의사 김범수 선생. 김행자씨 제공
독립운동가 의사 김범수 선생. 김행자씨 제공
박해현 초당대 교수가 쓴 ‘의사 김범수 연구’(도서출판 선인)를 보면, ‘광주의 수재’로 불린 김범수 선생은 1917년 경성의학전문학교에 입학했다. 일본 유학생이었던 친구 정광호가 2·8독립선언서를 감춰 들고 경성에 와 김범수 선생을 만났다. 김범수 선생이 내놓은 돈으로 구한 등사기는 전남 장성에서 2·8독립선언서를 인쇄할 때와 광주 김언수·최한영의 집에서 3·1독립선언서를 인쇄할 때 사용됐다.

1919년 3월10일 대규모 광주시위는 김범수 선생의 용의주도한 역할이 크게 작용했다. 박 교수는 “(김범수 선생은) 1919년 2월 초부터 1개월 동안 광주와 경성(서울)의 시위 주체 간 연결고리를 하며 광주시위의 구심점 역할을 했다”고 밝혔다. 광주시위로 구속된 103명 가운데 김범수·최한영·김태열·정광호 등 14명이 징역 3년형을 받았다. 대구형무소에서 수감생활을 하던 김범수 선생은 1년6개월로 감형돼 1920년 9월 말 출옥했다. 형무소에서 만난 민족주의자 안재홍 선생과는 이후 30년간 인연을 이어갔다.

조부, 3·1시위 이끌며 1년6개월 옥고
경성의전 나와 빈민 무료 진료도
해방 뒤 전남건준 조직부장 활동
한국전쟁 때 보도연맹원 몰려 수감
“한국전쟁 부역 등 미확인 사실로
2018년 이후 서훈 신청에도 떨어져”

1921년 복학 뒤 우수한 성적으로 졸업한 그는 경성의학전문학교 수련병원이었던 ‘총독부 의원’에서 1년 인턴 과정을 마친 뒤 고향으로 왔다. 독립운동가 출신 의사가 광주에 의원을 열자 세간의 화제가 됐다. ‘동아일보’(1924년 11월17일)는 “남선의원은 김범수씨의 경영인바…특별히 무산환자를 위하여 실비 혹은 무료진료에 응하겠다고 한다”고 보도했다. 실제로 김범수 원장은 간호조수에게 “신발에 흙이 묻어 있는 환자에게는 치료비를 받아서도 안 되고 내쫓아서도 안 된다”고 강조했다. 의사 생활을 하면서도 재산은 병원 건물 하나 외에는 없었다.

15일 오전 시청 대회의실에서 열린 제78주년 광복절 경축식에서 최만년 애국지사 손자녀인 최장훈씨, 일제강제동원피해자 양금덕씨, 김범수 독립운동가 손자녀인 김행자씨(왼쪽부터)가 만세삼창을 하고 있다.  광주시 제공
15일 오전 시청 대회의실에서 열린 제78주년 광복절 경축식에서 최만년 애국지사 손자녀인 최장훈씨, 일제강제동원피해자 양금덕씨, 김범수 독립운동가 손자녀인 김행자씨(왼쪽부터)가 만세삼창을 하고 있다. 광주시 제공
일제강점기에 쌓은 이런 지역 내 신망을 바탕으로 의사 김범수는 해방 후 8월17일 결성된 전남 건국준비위원회에서 조직부장을 맡았고, 후신인 전남인민위원회 간부도 지냈다. 하지만 한국전쟁은 그에게 큰 시련을 안겼다.

1950년 7월 ‘보도연맹’원으로 광주형무소에 수감된 그는 극적으로 죽음을 면하고 전남 화순 처가로 피신했다. 그런데 국군에 밀려 백아산으로 밀려 들어온 인민군 전남도당 사령부는 ‘유명한 의사가 난을 피해 왔다’는 첩보를 들었다고 한다. 김선우 도당 총사령관 수행비서인 ‘마지막 생존 빨치산’ 이복순은 김범수 선생이 강제 징발당해 1951년 초까지 중환자를 치료했다고 증언했다.

김범수 선생의 사망 시기는 알려지지 않고 있다. 박 교수는 “중환자를 치료하던 ‘본트’에 있던 김범수도 토벌대에 의해 죽임을 당하지 않았을까 추측한다”고 말했다. 김범수 원장이 운영하던 남선병원은 인민군들이 접수해 사용하기도 했다. 한국전쟁 뒤 가족들이 주검을 수습하기 위해 백아산을 찾았지만 끝내 찾지 못했다. 민족경제론 주창자인 경제학자 고 박현채 선생이 그의 처조카다.

박 교수는 “친일파와 공산주의자 낙인, 한국전쟁 때 부역이라는 잘못 알고 있거나 확인되지 않은 사실 때문에 독립운동가 김범수 선생이 독립유공자 서훈에서 제외되고 있다”고 밝혔다. 손녀 행자씨는 “2018년부터 독립운동 서훈을 신청했지만, 인정받지 못했다. 올해 11월 다시 서훈을 신청할 생각”이라고 말했다.

정대하 기자 daeha@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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