채아무개 상병 순직 사건을 수사하다 항명 등의 혐의로 입건된 박정훈 전 해병대 수사단장(대령)이 1일 오전 구속 전 피의자심문(영장실질심사)을 받기 위해 서울 용산구 군사법원으로 들어가고 있다. 연합뉴스
해병대 채아무개 상병 순직을 둘러싼 ‘박정훈 대령 수사 외압의혹 사건’으로 국가인권위원회(인권위)가 내홍을 겪고있다. 인권위가 박 대령에 대한 긴급구제 안건을 처리하는 과정을 둘러싸고 사무처와 군인권보호관(상임위원)이 갈등을 겪는 중인데, 시민단체와 군 사망사건 유족들은 군인권보호관의 사퇴를 촉구했다.
5일 고 이예람 중사 유족 등 ‘군 사망사건’ 유족과 군인권센터는 인권위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군인권보호관이) 권력자의 지시를 받은 것 아니냐는 의혹까지 제기되는 게 낯부끄럽다”며 군인권보호관인 김용원 상임위원의 사퇴를 촉구했다. 인권위 군인권보호관은 이예람 중사가 숨진 사건을 계기로, 군대 내 차별행위를 조사해 시정조치·정책권고 등을 담당하기 위해 지난해 7월 출범했다.
갈등은 지난달 14일 군인권센터가 박 대령의 항명죄 수사 중단 요청 등을 담은 긴급구제 안건을 신청하며 시작됐다. 송두환 인권위원장은 지난달 18일 임시 상임위를 소집했지만, 김 위원이 병가를 쓰고 상임위에 불참하는 바람에 정족수 부족으로 회의는 무산됐다. 같은 달 29일 김 위원은 군인권보호위원회를 열고 긴급구제 신청을 기각했다.
이후 군인권센터 등은 ‘김 위원이 의도적으로 임시 상임위를 회피했다’고 비판했다. 그러자 되레 김 위원은 송 위원장과 인권위 사무처를 정치적 의도가 있는 집단으로 몰아붙였다. 김 위원은 임시 상임위 날짜가 촉박하게 잡혔다고 비판하는 한편, 해당 안건은 상임위가 아닌 군인권보호위원회가 맡아야 하는 사안이라고 주장했다. 김 위원은 한겨레에 “왜 억지스럽게 소집을 하게 됐는지, 어떤 외부세력의 사주가 있었는지를 엄정하게 조사를 해달라고 (인권위에) 요청해둔 상태”라며 “정치적인 의도가 있다고 본다”고 말했다. 송 인권위원장은 문재인 대통령이, 김 위원은 윤석열 대통령이 임명한 인사다.
인권위 사무처는 법상 상임위역시 군 관련 사건 긴급구제를 논의할 수 있다는 입장이다. 임시 상임위는 박 대령 징계위원회 전에 논의하기 위해 긴급히 소집됐으며, 화상 참여 역시 가능했지만 김 위원과 연결이 되지 않았다고 덧붙였다. 인권위 내부에서는 “해병대 수사단장 등에 대한 수사는 보류되어야 한다”고 입장을 냈던 김 위원의 태도가 지난달 9일 이후 소극적으로 바뀐게 오히려 의문스럽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이후 대통령실 등 ‘윗선’ 외압 의혹이 본격적으로 불거졌다.
한편, 김 위원은 전날 군인권센터와 임태훈 소장을 상대로 명예훼손이라며 5천만원 손해배상 청구 소송을 제기했다. 군인권센터가 김 위원의 임시 상임위 불참 등을 ‘의도적 회피로 보인다’고 언론에 전달한 내용을 문제삼은 것이다. 이날 인권단체들로 꾸려진 인권정책대응모임은 “군인의 인권을 보호할 책임을 가지고 있는 군인권보호관이 박 대령에 대한 긴급구제를 다루는 회의에 참석하지 않은 것에 대하여 의혹과 비판을 제기하는 것은 당연한 일”이라며 김 위원 쪽의 손해배상 청구를 비판했다.
김가윤 기자
gayoon@hani.co.kr 심우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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