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부장제에서 가정폭력의 폐해를 다룬 영화 <세자매>의 한 장면. 리틀빅픽처스 제공
남편의 폭력에 저항하다 할퀸 아내를 폭행죄로 기소유예한 검찰 처분이 헌법재판소에서 취소됐다. 헌재는 “정당방위에 해당할 여지가 충분하다”고 밝혔다.
헌재는 재판관 전원 일치 의견으로 ㄱ씨가 인천지검을 상대로 낸 기소유예 처분 취소 청구를 인용했다고 6일 밝혔다.
ㄱ씨는 2021년 1월 집에서 남편과 말싸움을 하다 손톱으로 남편의 팔 부위를 할퀴어 다치게 한 혐의(폭행)로 기소유예 처분을 받았다. 기소유예란 혐의가 인정되지만 검사가 여러 정황 등을 고려해 재판에 넘기지 않는 처분을 말한다. 형사 처벌은 면할 수 있지만 수사기관이 죄가 성립한다고 판단했다는 점을 근거로 민사 책임을 질 수 있고 수사경력 자료도 5∼10년간 보존된다.
ㄱ씨는 남편이 자신을 잡아끌거나 배를 차고 물건을 던지는 등 폭행했고, 이에 저항하다 일어난 정당방위라고 주장했다. ㄱ씨는 이 사건으로 약 4주간의 치료가 필요한 요추 골절상 등을 입었다. ㄱ씨 남편은 상해죄가 인정돼 기소유예 처분을 받았다.
두 사람의 진술이 엇갈렸으나 헌재는 폭행 당시 정황이 녹음된 음성파일 등의 증거를 살핀 결과, ㄱ씨의 폭행은 남편의 폭행에 저항하는 과정에서 발생한 것이 맞는다고 판단했다. 헌재는 “ㄱ씨의 행위는 남편의 선제적이고 일방적인 공격으로부터 자신을 보호하기 위한 소극적 물리력 행사”라며 “ㄱ씨의 행위가 정당방위에 해당하는지 밝히지 않고 폭행 혐의가 인정됨을 전제로 내려진 기소유예 처분은 잘못됐다”고 밝혔다.
헌재 관계자는 “최근 ‘묻지마 범죄’ 등의 확산으로 정당방위 성립요건에 대한 국민적 관심이 높아지고 있다”며 “헌재는 자신을 보호하고 위법한 공격에서 벗어나기 위한 저항수단으로 물리력을 행사한 경우에는, 그 행위가 새로운 적극적 공격이라고 평가되지 않는 한 위법하지 않다고 판단했다”라고 설명했다.
정혜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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