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달 31일 국회 행정안전위원회 전체회의에서 ‘10·29 이태원 참사 진상규명과 재발방지 및 피해자 권리보장을 위한 특별법안’이 참사 발생 307일 만에 의결됐다. 이태원참사유가족과 시민대책회의는 이날 기자회견을 열어 “참사 1주기가 되기 전에 특별법을 국회에서 통과시켜달라”고 촉구했다. 10·29 이태원참사유가족협의회 페이스북 갈무리.
국민의힘 지도부가 “이태원 참사 촛불시위 등은 북한의 지령”이라고 말한 것과 관련해, 이태원 참사 희생자 고 김의진씨 어머니가 “일말의 (대답할) 가치도 없는 발언이며, 저희 귀와 입만 더럽혀지는 것 같다”고 분통을 터트렸다.
김씨 어머니는 8일 엠비시(MBC) 라디오 프로그램 ‘김종배의 시선집중’과의 인터뷰에서 “박대출 국민의힘 정책위 의장이 10·29 참사 때 북한이 서명운동과 촛불시위 추모문화제를 하라는 지령을 내렸다, 이렇게 주장을 한 바가 있었는데 어떤 심경이시냐”는 진행자의 질문에 이같이 말했다.
김기현 국민의 힘 대표는 지난 6일 국회에서 열린 ‘북한의 간첩 공작과 대공수사권 이관 점검’ 정책세미나에서 이태원 참사 촛불시위와 일본 후쿠시마 제1원자력 발전소 오염수 방류 반대 시위 등에 대해 “북한이 지령을 보내면 그대로 실현되고 있다”고 주장했다. 박대출 정책위 의장도 “북한이 ‘후쿠시마 (오염수) 반대 투쟁을 벌이라’는 긴급지령을 내리고, 장소를 일본 대사관, 광화문광장 주변으로 하라고 하면 그곳에서 방류 반대 집회가 열린다. (이태원) 핼러윈 참사 때 (북한이) 서명운동, 촛불시위, 추모문화제를 하라는 지령을 내리고 ‘이게 나라냐’ ‘국민이 죽어간다’ 구호까지 지정하면 현수막이 실제 집회 등장했다”고 말했다.
이에 ‘10·29이태원참사희생자유가족협의회’와 ‘10·29이태원참사시민대책회의’는 7일 ‘집권여당 국민의힘 지도부는 10·29이태원참사 희생자와 시민들 모욕하는 막말 중단하라’는 성명을 내고 국민의힘을 규탄했다.
이들은 성명서에서 “집권여당의 당 대표와 정책위원회 의장이라는 위치에 있는 이가, 그것도 1980년대가 아니라 지금 2023년에, 공개적으로 이태원 참사 진상규명 활동이 ‘북한의 지령’이라는 주장을 했다는 언론보도를 보니 참담한 마음뿐”이라며 “시대에 뒤떨어진 이념 공세와 막말과 이태원 참사 진상규명 특별법 외면으로 유가족들의 가슴에 한을 남긴 국민의힘 지도부는 즉각 사과하라”고 촉구했다.
이들은 또 ‘이태원참사 진상규명 특별법 제정’을 위한 국회 심의 절차를 국민의힘이 외면하고 있다고 비판하며 “지난 이태원 참사 100일 국회 추모제에서, 여야 지도부가 한자리에 모여 희생자들 영전에 헌화하고 진상규명과 재발방지를 위해 끝까지 노력하겠다고 눈물 흘리며 약속한 다짐은 모두 없던 일이 된 것이냐”고 물었다. 유가족협의회와 시민대책회의는 하루라도 빨리 특별법을 통과시키고 독립된 조사기구를 설립해 이태원 참사의 진상규명과 제대로 된 재발방지 대책 마련에 국회와 정부가 적극적으로 동참할 것을 호소했다.
김씨 어머니는 국민의힘 지도부의 ‘색깔론’에 대해 참담한 심경을 밝히면서 최근 육군사관학교의 홍범도 장군 동상 철거와 관련해 “묘한 동질감을 느낀다”고 말하기도 했다. 그는 인터뷰에서 “애초에 동상 철거라는 제안 자체가 나오지 말았어야 했고, 이태원 참사도 절대로 일어나지 말았어야 했다”며 “두 가지 다 진행이 됐고, 국민으로부터 슬픔과 공분을 일으키고 있다”고 말했다.
김씨 어머니는 홍범도 장군 동상 철거 계획 발표 이후 홍범도 장군에 대해 40년간 연구해온 이동순 영남대 명예교수가 ‘홍범도 장군의 절규’라는 시를 발표해 많은 사람에게 회자하고 있는 상황을 전하며, 자신 역시 이태원 참사로 희생된 아들을 생각하며 시를 썼다며 직접 지은 시를 낭독했다.
이태원참사 희생자 고 김의진씨 어머니가 낭독한 시
그토록 오매불망 행복한 시간 될 거라 기대하고 친구들과 함께 찾은 이태원은 인생의 버킷리스트를 작성하며 1분 1초를 아껴서 열정을 다해 살아온 내가 하루쯤 여유롭게 힐링하고자 했던 이곳은 아닐세 전혀 아닐세.
누가 나를 왜 그 좁은 골목길에 가둬두었는가 상상 못할 숨 막히는 고통과 물밀듯 밀려오는 절망의 공포 속에서 사랑하는 이를 애타게 불렀으나 고독한 내 손 잡아줄 이가 아무도 없으니 내가 있는 지금 이곳은 어디인가. 내가 그토록 사랑하는 이들은 어디에 있는가.
그리도 빛나던 내 청춘의 역사는 왜 강제 종료되었으며 내가 꿈꾸던 찬란하고 아름다운 미래와 비전은 어디로 갔는가.
내가 감히 명령하노니 지금 당장 나를 사랑하는 행복한 나의 집으로 보내주게. 나 거기로 되돌아가려네.
허울뿐인 공정과 상식과 소통은 어디에 패대기치고 철지난 이념논쟁으로 세월을 좀먹는가.
불꽃같은 삶을 살았던 159명의 별들의 절규가 양심 없는 그대들에게는 들리지 아니하는가.
아직도 정의와 진리와 진실이 살아있음을 외치는 시민이 있고 결국엔 그들이 반드시 승리함을 믿는 국민의 심판이 그대들은 정녕 두렵지 아니한가.
양선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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