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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 사회일반

평균 85살 래퍼그룹 ‘수니와 칠공주’ 환장하지~♬

등록 2023-09-15 15:12수정 2023-09-16 00:57

성인문해교실 할머니들, 애환 어린 자작시를 랩으로
“어릴 때 학교 못 가고 설거지 해 애보기 해 환장하지”
국내 최고령 래퍼 그룹 ‘수니와 칠공주’와 성인문해교실 강사 정우정씨(맨 오른쪽), 칠곡군 안태기 주무관(맨 왼쪽). 칠곡군 제공
국내 최고령 래퍼 그룹 ‘수니와 칠공주’와 성인문해교실 강사 정우정씨(맨 오른쪽), 칠곡군 안태기 주무관(맨 왼쪽). 칠곡군 제공

“고추밭에 고추 따고 수박밭에 수박 따고 오이밭에 오이 따고 가지밭에 가지 따고 호박밭에 호박 따고 집에 돌아오니 너무 너무 행복합니다∼!”

평균 나이 85살, 국내 최고령 래퍼 그룹 ‘수니와 칠공주’가 부른 ‘고추밭에 고추 따고’라는 제목의 랩이다. 리더 박점순(85) 할머니의 이름을 딴 ‘수니와 칠공주’는 최고령자인 정두이(92) 할머니부터 최연소인 장옥금(75) 할머니까지 경북 칠곡군 지천면 신4리에 사는 할머니 8명이 뭉쳐 탄생했다.

원래는 군에서 운영하는 성인문해교실에서 한글을 배우고 시를 썼는데 그 시로 랩까지 도전했다. 지난달 30일에는 동네 경로당에서 정식으로 창단식도 열었다.

김현정의 뉴스쇼 유튜브 갈무리
김현정의 뉴스쇼 유튜브 갈무리

김현정의 뉴스쇼 유튜브 갈무리
김현정의 뉴스쇼 유튜브 갈무리

‘수니와 칠공주’ 가운데 박점순, 김태희 할머니가 15일 오전 시비에스(CBS) 라디오 ‘김현정의 뉴스쇼’에 출연했다. 김태희 할머니는 선글라스에 가로 무늬의 줄이 그어진 ‘셔터 쉐이드’ 선글라스를 머리에 얹고, 목에는 십자가 목걸이를 착용했다. 박점순 할머니 역시 은색의 굵은 체인 목걸이와 팔찌, 알사탕만한 반지를 차고 나와 래퍼로서의 면모를 뽐냈다.

이들은 데뷔한 지 한 달가량 된 신인답지 않는 여유로운 태도로 그동안 발표한 랩을 능숙하게 선보였다.

15일 오전 시비에스(CBS) 라디오 ‘김현정의 뉴스쇼’에 출연한 국내 최고령 래퍼 그룹 ‘수니와 칠공주’의 리더 박점순 할머니. 유튜브 갈무리
15일 오전 시비에스(CBS) 라디오 ‘김현정의 뉴스쇼’에 출연한 국내 최고령 래퍼 그룹 ‘수니와 칠공주’의 리더 박점순 할머니. 유튜브 갈무리

‘수니와 칠공주’의 랩에는 삶의 애환이 녹아있다. 6·25 전쟁 때 들었던 총소리를 폭죽 소리로 착각한 기억으로 ‘딱꽁딱꽁’ 곡을 썼고, 성주 가야산에서 북한군을 직접 만나기 전까지 북한군은 온몸이 빨갛다고 생각했다며 ‘빨갱이’라는 곡을 쓰기도 했다.

먼저 세상을 뜬 남편이 좋아했던 깻잎전을 떠올려 ‘들깻잎’이라는 곡도 만들었다. 이 밖에도 ‘환장하지’, ‘황학골에 셋째 딸’, ‘학교 종이 댕댕댕’, ‘나는 지금 학생이다’ 등 ‘수니와 칠공주’는 지금까지 모두 8곡의 랩을 발표했다.

‘나 어릴 적 친구들은 학교에 다녔지 / 나 담 밑에 쭈그리고 앉아 울고 있었지 / 설거지 해 애보기 해 / 이것이 내 할 일입니다 / 환장하지’(‘환장하지’), ‘성경골 아니, 황학골 셋째 딸로 태어났음 / 오빠들은 모두 공부를 시키고 딸이라고 나는 학교 구경 못 했지 / 우라질 우라질 우라질’(‘황학골에 셋째 딸’) 등 가사를 듣다 보면 할머니들이 감내해야 했던 삶의 무게가 느껴지는 듯하다.

15일 오전 시비에스(CBS) 라디오 ‘김현정의 뉴스쇼’에 출연한 국내 최고령 래퍼 그룹 ‘수니와 칠공주’의 멤버 김태희 할머니. 유튜브 갈무리
15일 오전 시비에스(CBS) 라디오 ‘김현정의 뉴스쇼’에 출연한 국내 최고령 래퍼 그룹 ‘수니와 칠공주’의 멤버 김태희 할머니. 유튜브 갈무리

함께 라디오에 출연한 성인문해교실 강사 정우정씨는 “1년에 한 번씩 ‘성인문해 한마당’에서 학예 발표를 한다. 거기서 (발표)할 것을 찾으려고 어머님들하고 유튜브를 뒤져서 이것저것 보다가 어느 날 우연찮게 랩하는 걸 보여드리게 됐는데 ‘아니, 이게 노래야 뭐야. 우당탕 우당탕 나도 하겠다’ 이러시면서 갑자기 리더 박점순 어르신께서 막 일어나셔서 그날 기분을 랩으로 보여줬다”고 말했다. 할머니들의 ‘랩 스승’은 공무원이 되기 전 연예인을 꿈꿨던 칠곡군 공무원 안태기 주무관이 맡았다.

‘언제 가장 보람이 있냐’는 진행자의 질문에 김태희 할머니는 “안동 가서 잔치를 했는데 1등을 해서 며느리 오고 손자도 오고 그리고 꽃다발도 2개나 받고 그때가 제일 행복했다”고 말했다.

‘소망’을 묻자 박점순 할머니는 이렇게 말했다. “우리 아들 다 건강하게 밥 잘 먹고 잘 놀고 나도 이대로 밥 잘 먹고 잘 놀고 여기 갔다 저기 갔다 다니고 그리고 막 회관에 가서 선생님하고 노래도 하고 행복합니다. 최고 좋아요.”

‘수니와 칠공주’는 새달 칠곡군 교육문화회관이 주관하는 ‘성인문해 한마당’ 공연을 앞두고 있다. 온라인 커뮤니티와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서는 ‘우리 모두의 엄마, 멋진 인생 선배님들 멋있어요’, ‘즐겁고 행복하게 사세요’ 등 그룹의 행보를 응원하는 반응이 나온다.

배현정 기자 sprring@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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