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국여성장애인폭력피해지원상담소및보호시설협의회를 비롯한 시민사회단체 관계자들이 21일 오전 서울 종로구 정부서울청사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여성가족부가 성 인권 교육 사업 폐지 방침을 철회할 것을 촉구하고 있다. 오세진 기자 5sjin@hani.co.kr
여성가족부가 청소년들의 올바른 성 가치관 형성을 위해 장애·비장애 학생들을 대상으로 진행해 온 ‘성 인권 교육’ 사업을 내년에 폐지하기로 한 사실이 한겨레 보도로 알려지자(9월7일자 보도), 시민사회단체들이 모여 사업 폐지 방침을 철회할 것을 촉구했다.
전국여성장애인폭력피해지원상담소및보호시설협의회(이하 협의회)를 비롯한 100여개 단체는 21일 오전 서울 종로구 정부서울청사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어 여가부가 ‘성 인권 교육’의 내년 예산을 전액 삭감하고 사업을 폐지하기로 결정한 것을 규탄했다.
단체들은 “성 인권 교육은 장애 학생들이 성적 주체로서 내가 가진 성적 권리가 무엇인지 이해하고, 나의 감정과 생각을 표현하는 시간이다. 더불어 자기결정권, 사생활 등 (상대방과) 평등한 관계를 맺어가기 위해 필요한 내용을 토론하고 배우는 유일한 현장”이라며 “장애아동·청소년 성 인권 교육을 제도적으로 보장하지 않겠다는 것은 교육받을 권리 등 장애아동·청소년의 시민권을 박탈하는 것”이라고 비판했다.
앞서 여가부는 교육 수요 감소와 다른 부처 사업(보건복지부가 추진 중인 발달장애인 대상 성 인권 교육)과의 유사성 등을 이유로 사업을 폐지하기로 결정했다. ‘성 인권 교육’은 학생 스스로 성적 주체라는 점을 인식하고, 자신과 타인의 성 인권을 존중하고 보호하도록 가르치기 위해 초·중·고교 장애·비장애 학생을 대상으로 2013년 시작됐다. ‘성 인권’이란 성적인 표현과 행동을 보장받을 권리, 성별을 이유로 차별받지 않고 성폭력 피해를 받지 않을 권리 등을 말한다.
단체들은 여가부의 이런 결정이 현장을 전혀 알지 못하는 탁상행정이라고 비판했다. 이혜경 울산장애인성폭력상담센터 소장은 이날 회견에서 “장애 학생들은 성 인권 교육을 통해 가해자의 행위가 사랑인지, 폭력인지 구분할 수 있다고 말하고 있다”며 “성 인권 교육은 발달장애뿐만 아니라 시각, 청각, 중복 등 다양한 장애 유형을 가진 학생들도 지원하고 있다. 복지부에서 하는 사업과는 차이가 있다”고 밝혔다.
전국여성장애인폭력피해지원상담소및보호시설협의회를 비롯한 시민사회단체 관계자들이 21일 오전 서울 종로구 정부서울청사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여성가족부가 성 인권 교육 사업 폐지 방침을 철회할 것을 촉구하고 있다. 오세진 기자 5sjin@hani.co.kr
협의회의 이미진 대표는 “성 인권 교육은, 평소 ‘하지 말아라’ ‘가면 안 된다’는 말에 익숙한 장애아동·청소년에게 ‘내가 경험한 차별이 차별이라고, 내가 당한 폭력이 폭력이라고 말할 수 있는 힘을 갖게 하는 교육”이라며 “사업 폐지는 장애 특성을 고려하지 않고 다양성을 존중하지 않는, 장애인을 소수자로서 차별하고 배제하는 정부의 행태를 그대로 보여주는 것”이라고 비판했다.
단체들은 성명서를 통해 “여가부는 사업 폐지가 아닌 장애 학생들의 포괄적 성교육을 위해 꾸준히 예산을 확대해야 한다”며 “우리는 여가부가 장애아동·청소년 성 인권 교육 사업 폐지를 철회할 때까지 끝까지 연대하여 투쟁할 것”이라고 선언했다.
오세진 기자
5sjin@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