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방관, 몸에 새겨진 재난] ③ 출동 현장이 악몽으로…PTSD 체력만큼은 자신 있던 ‘탱크’ 정봉식씨도 못 피한 마음의 상처
퇴역 소방관 정봉식이 지난 7월5일 오전 경남 창원시 성산구 창원지방법원 앞에서 국가유공자 소송 1심 선고를 기다리며 취재진과 인터뷰를 하고 있다. 그는 1심에서 패소했다. 조윤상 피디 jopd@hani.co.kr
‘문 살살’
경남 창원 진해구에 있는 아파트 현관에 이런 메모가 붙어 있었다. 이 집에는 퇴역 소방관 정봉식(60)이 살고 있다. 정봉식은 우울증과 함께 발작성 심방세동 증상을 앓고 있다. 심장이 비정상적으로 뛰는 부정맥의 일종으로, 심장의 윗부분인 심방이 1분에 60~80번 정도 뛰어야 하는데 “갑자기 1분에 한 500~600번씩” 바르르 떨리는 질환이다. 작은 자극에도 화들짝 놀라며 기겁하고, 때로는 기절하는 일까지 있을 정도로 예민해진다. 현관의 포스트잇 메모도 누군가 문을 세게 닫으면 소음 자극이 발생하기 때문에 붙여뒀다. 이 때문에 정봉식은 약효가 강한 수면제를 먹어도 하루에 1~2시간 밖에 자지 못한다. “누워 있다가 벌떡 일어서면 어지러움증이 와서 쓰러지고 그래요. 아무리 힘이 들어도 못 누워 있습니다. 잠도 앉아서 자려고 등을 기댈 수 있는 병원용 침대를 일부러 샀지요.”
‘‘2002년 4월15일’
그날, 영남 지역 일대에는 장대비가 내리고 있었다. 경남 진해소방서 대흥소방파출소 소속 구급대원인 정봉식(당시 39살)은 이날 진주에서 열릴 예정이던 소방기술경연대회 준비에 열중하고 있었다. 전국에서 소방관들이 모여 구급과 구조, 화재진압 등의 실력을 겨루는 대회다. 그런데 갑자기 출동 지시가 떨어졌다. 급히 출동 차량에 올라서고 나서야 행선지를 알게 됐다. “김해로 간다. 비행기가 떨어졌다.”
이날 오전 9시40분 승객과 승무원 166명을 태우고 중국 베이징 국제공항을 출발한 중국국제항공공사 항공기 129편이 폭우와 안갯속에서 김해국제공항 착륙을 시도하다 오전 11시21분께 공항 북쪽 4.6㎞ 거리에 있는 돗대산 중턱 해발 204m 지점에 추락했다. 정봉식을 비롯한 구급대원들이 현장에 도착해보니, 객실을 감싼 항공기 외장재는 종잇장처럼 구겨졌고, 연료탱크에서 항공유가 흘러나오며 동체가 폭발해 여객기는 세 동강 난 상태였다. 폭발과 추락의 충격 탓에 일부 시신들은 사방으로 튕겨나가 찢어져 있었다. 안전벨트에 묶인 채 불에 타고 있는 주검도 있었다.
사고 발생 이튿날인 2002년 4월16일 추락한 중국 여객기가 미끄러지면서 나무들이 잘려나가 황무지처럼 맨땅이 드러난 돗대산 자락에서 119 구조대원과 군경합동 수색대가 실종자를 찾고 있다. 한겨레 자료 사진
그 시신들을 수습하는 임무가 정봉식에게 떨어졌다. 그날 산에는 소방·군인·경찰 1500여명이 투입됐다. 그때부터 돗대산 중턱 해발 204m 지점과 산 아래를 몇 차례 오갔는지, 정봉식은 기억하지 못한다. 비에 진창이 된 산비탈 길에서 몇 차례나 넘어졌는지도 기억나지 않는다. 하지만 그날 봤던 장면들은 지금까지도 또렷하게 기억에 남아 정봉식을 괴롭힌다.
진흙탕을 뒹굴듯이 산을 헤맸고, 도구도 없이 맨손으로 바닥을 헤집었다. 그렇게 사고 당일 이후 한달 동안 정봉식은 7차례나 돗대산으로 출동해 129명의 시신 수습 작업에 참여했다. 하지만 가족들의 간절한 바람에도 실종자 가운데 생존자는 한 명도 발견되지 않았다. “산 아래에서 실종자 가족들이 유류물 하나라도 애타게 기다리고 있었어요. 찢겨든 주검들을 하나하나 찾아서, 그걸 다 수습해왔어요. 그 사람들이 꿈에 다 나타나요. 손가락을 주우면 그 주인이 나타나는 식이지요.”
대형재난 현장만이 아니다. 정봉식은 1992년 울산에서 소방차 운전원으로 근무를 시작해 진해로 옮긴 뒤인 1995년부터 구급대원을 맡았다. 구급대원을 맡고 반년쯤 뒤 경남 진해 기차역 인근에서 세발 자전거를 타던 서너살 아이가 덤프트럭에 치여 숨진 사고가 발생했다. 그 작은 몸이 산산히 부서졌고, 정봉식은 울면서 그 주검을 “쓸어 담아” 병원으로 이송했다. “그 아이가 ‘아빠, 아빠’ 하면서 뛰어와서 나한테 안기는 그런 꿈을 꿔요.”
이런 기억으로 인한 악몽이 외상후 스트레스 장애(PTSD)라는 건 나중에야 알게 됐다. 정봉식이 2013년 받은 정신건강의학과 초진 외래진료기록에는 ‘혼합형 우울 및 불안장애’라는 진단명이 적혀 있었다.
현장을 오래 경험한 소방관일수록 잊히지 않는 참사의 기억들로 인해 외상후 스트레스 장애를 갖게 된다. 재난 현장에서 스러져 간 시민들을 ‘구하지 못했다’는 죄책감과 함께 참혹하게 숨져간 주검들을 수습하며 생긴 심리적 고통이 마음에 각인된 것이다. 한겨레가 소방청으로부터 받은 지난 3년(2020년 7월~2023년 6월) 동안의 소방관 공무상 질병 경위조사서를 분석한 결과, 최소 32명이 외상후 스트레스 장애로 공무상 요양(공상)을 신청했다.(오영환 더불어민주당 의원실) 2018년부터 올해 6월까지 스스로 생을 마감한 소방공무원도 77명이나 된다.
이정재 남울주소방서 온산 119안전센터장이 지난 7월20일 오후 울산광역시 남울주소방서에서 한겨레와 인터뷰를 마치고 근무복 차림으로 사진을 찍고 있다. 김경호 선임기자 jijae@hani.co.kr
남울주소방서 온산 119안전센터장인 이정재(57)는 23년 전 화재 현장에 함께 출동했다가 숨진 동료에 대한 기억으로 마음의 고통을 안고 살아간다. “소방생활을 거의 같이 시작했고, 나이도 비슷한 동료였어요. 울산가구마트에서 화재가 나서 함께 출동했는데, 갑자기 모든 가연성 물질이 동시에 발화하며 폭발하는 ‘플래시오버’ 현상이 나타나면서 동료가 떠났어요. 외상후 스트레스 장애나 우울증 때문에 생을 스스로 마감한 동료들도 있지요.”
대한생물정신의학회의 논문 ‘소방공무원과 외상후 스트레스 장애’(류지아 등, 2017)를 보면, 소방공무원은 빈번한 외상 사건에의 노출, 불규칙한 교대근무, 높은 수준의 직무 스트레스로 인해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 발생 고위험군으로 분류된다.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는 특히 공존 장애가 많은 것이 특징이다. 주요 우울증, 약물이나 알코올 사용 장애, 불안장애, 공황장애가 함께 존재하는 경우가 많다.
퇴역 소방관 정봉식이 정강이 뼈 절단 수술을 한 무릎을 보여주고 있다. 조윤상 피디 jopd@hani.co.kr
이런 마음의 상처가 몸까지 망가뜨린 걸까. 정봉식은 외상후 스트레스 장애와 발작성 심방세동 증상 말고도 다양한 병증을 앓고 있다. 우선은 지팡이 없이 거동이 어려운 상태다. 2014년 화재 출동 뒤 소방차에서 내리다 왼쪽 무릎이 뒤틀려 연골이 파열됐다. 지난 4월 무릎 정강이 뼈 절단 수술을 했고, 정강이에 티타늄과 고정 나사를 끼워 넣었다. 수술비만 1500만원 넘게 들었다. 족저근막염과 척추측만증, 척추협착증, 망막 정맥 폐쇄 등 10개 이상의 질병도 동시에 앓고 있다.
183㎝ 키에 건장한 체격으로 해병대 태권도 교관으로 복무하며 ‘탱크’라는 별명으로 불렸던 정봉식이었다. 소방관으로 일하면서도 늘 “체력이 좋다”는 얘기를 들었고, 40대 때인 2004년 영국 셰필드에서 열린 세계 소방관 경기대회 태권도 부문에서 우승했다. 뒤늦게 시작한 복싱도 수준급 실력을 보였다. 2007년 전국생활체육 복싱 대회 등 각종 대회에서 우승했다. ‘45살 소방관 복서’라는 제목으로 지역 신문에 소개되기도 했다.
정봉식 소방관이 2000년대 초 경남 진해소방서 구조대원으로 근무하던 시절 소방 훈련에 나선 모습. 정봉식 제공
그런 육체적 자신감을 바탕으로 정봉식은 늘 “그래, 그라믄 마 내가 하께”라고 말하며 앞장섰다. “체력이 따라주니까 더 열심히 했었던 것 같아요. 소방관 기술 경연대회 같은 대회나 훈련에도 많이 나갔고, 구급대원을 하면서도 수많은 무거운 환자를 업고 다녔어요.” 정봉식과 함께 근무했던 황종근 창원소방본부 용원119안전센터장의 증언이다. 하지만 그런 수많은 현장 출동과 연장근무, 몸을 과도하게 쓴 업무에서 남은 병증들이 마음의 병과 함께 축적되면서 어느덧 늙은 소방관의 몸 곳곳에서 신호를 보내고 있다. “현장에서 사흘 정도 잠도 못 자고 근무를 하다가 집에 오면 단기 기억 상실증 같은 게 와서 우리 집 현관문 비밀번호도 생각이 안 나요. 그래서 아내한테 전화해서 비밀번호를 물어보고 그랬지요.”
마음과 몸이 망가지면서 가족도 함께 붕괴했다. 정봉식은 가족과 연락이 거의 끊긴 상태다. 아내는 2년 전 다른 지역으로 떠나버렸다. 20대 후반과 30대 초반인 두 딸도 취업 준비를 하겠다며 서울로 떠났다. 정봉식은 이런 상황이 된 건 모두 자기 탓이라고 했다. 소방관으로 살면서 가족에게 좋은 아버지나 남편이 되지 못했다는 것이다. “일이 많아서 집에 자주 올 수도 없었고, 불면증이 시작된 뒤로는 예민해져서 교대근무로 낮에 자야하는 날에 아이들이 조금이라도 떠들면 ‘조용히 하라’ 화를 냈어요. 아이들은 놀라서 울고, 아내가 말리는 일이 반복됐지요. 처가에도 30년 동안 3번 밖에 못 갔으니까요. 돌이켜 보면 후회가 됩니다.”
2020년 6월 몸 상태가 급속도로 악화하며 정년을 3년 남기고 퇴직한 정봉식은 같은해 혼합형 우울 및 불안장애로 인사혁신처에서 승인하는 장해 14급을 인정받았다. 또한 보훈부에서 인정하는 보훈대상자 7급도 승인받은 상태다. 장해 14급으로는 퇴직 시점 소득액의 9.75%에 달하는 장해연금이 나오고, 보훈대상자 7급으로는 매달 36만5천원의 보상금 등이 나온다.
하지만 이 정도의 비용으로는 매달 400만원 가까이 들어가는 치료 비용을 감당할 수 없다. 이에 정봉식은 2021년 수면장애와 부정맥 등의 질병이 업무로 인해 발생한 것이라며 보훈부에 국가유공자로 인정해달라고 소송을 냈다. 그러나, 2년 가까운 기간 동안 진행된 공판 끝에 지난 7월5일 창원지법은 정봉식의 청구를 기각했다. 소송 과정에서 정봉식을 감정한 의료진은 교대근무 등이 원인일 수는 있지만, 질병에 끼친 영향이 경미하다고 판단했다. 게다가 부정맥은 아예 업무와 관련이 없다고 했다. 정봉식은 난감한 표정을 지었다. 그는 항소하지 않기로 했다.
한 차례 공상 승인을 받았던 왼쪽 다리 관절염과 반월상 연골파열에 대해서도 계속되는 치료를 감안해 지난해 공무상 재요양을 신청했으나 역시 불승인 처분이 났다. 이 역시 “작업과 무관하다”는 이유였다. “치료비 문제도 있지만, 사실 국가유공자 소송을 하게 된 건 딸들이 가산점이라도 받아서 취업에 도움이 되면, 아빠한테 그나마 마음이 조금 풀릴까 싶은 마음도 있었어요. 그런데 나라에서는 해줄 생각이 없으니까 답답합니다.”
퇴역 소방관 정봉식이 지난 7월5일 오전 경남 창원시 성산구 창원지방법원으로 들어가고 있다. 조윤상 피디 jopd@hani.co.kr
평생 소방관이 천직이라고 생각했던 정봉식은 요즘에는 가끔 소방관이 아닌 다른 일을 했으면 어땠을까 하는 생각도 하게 됐다고 했다. “안 좋은 거는 보지도 말고 듣지고 말라고 했는데, 허 참, 내가 바보인기라.” 정봉식이 헛웃음을 지으며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