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3일 오후 서울 전쟁기념관 앞에서 고 채 상병 사건의 진상을 촉구하는 해병대 예비역 전국 연대 1차 집회가 열리고 있다. 연합뉴스
“박정훈 대령은 수사단장으로 해병대를 수사하고 혐의자를 가려냈다. 내가 보기엔 그럴 권한이 박 대령에게는 없다고 본다. 피의자를 지칭할 수 있는 권한이 그(박 대령)에게는 없다”(전도봉 전 해병대 제22대 사령관)
23일 오후 2시 서울 용산구 대통령실 앞. 해병대 예비역 전국 연대가 ‘고 채 해병 순직 진상 규명 촉구 및 해병대 수사단 수사 외압 규탄 집회’를 열었다. 당초 격려사를 하기 위해 단상에 올라온 전 전 사령관이 갑자기 박 대령을 비난하는 듯한 돌발 발언을 했다. 전 전 사령관은 “군에서 사망사고가 나면 이제 지휘관이고 뭐고 아무 권한이 없다. 경찰에 (권한이) 다 있고 법률적으로 우리는 손을 못 대게 되어 있다”며 “여러분도 서로 조심해야 한다. 우리가 서로 뭘 하고 뭘 하지 말아야 할 것인지 가려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의 발언이 끝나자 단상 아래에서는 “시끄러” “그만 내려와라” “창피한 줄 알아라” 등 고성이 터져 나왔다. 예비역들의 항의에도 불구하고 전 전 사령관은 “내 그 말을 들을 줄 알고 왔다”며 “너희 완전히 이상하게 된 사람들이 됐구나”라는 말을 끝으로 단상에서 내려왔다.
이날 집회에 참석한 예비역들은 해병대의 상징인 빨간 티셔츠를 맞춰 입고 ‘(채 해병 순직) 진상규명 촉구한다’, ‘(박 대령에게) 직무복귀 명령하라’고 적힌 피켓을 들었다.
예비역들은 성명서를 통해 “채 해병 죽음의 원인을 규명하고 유가족의 슬픔을 위로해야 할 이 순간 자신들의 안위만을 걱정하며 손바닥으로 하늘을 가리려는 자들의 파렴치한 만행을 목도하고 있다”며 “국가의 부름을 받은 우리 장병의 목숨을 어찌 그리 가벼이 여기고 한평생 국가와 민족을 위해 헌신한 참군인의 명예를 그리도 무참히 짓밟을 수 있냐”고 규탄했다.
그러면서 지난 7월19일 경북 예천군 내성천에서 집중호우 피해 실종자를 수색하다 순직한 채 아무개 상병 사건의 진상 규명과 이를 수사하다 보직해임을 당하고 항명 혐의로 입건된 박정훈 전 해병대 수사단장(대령)의 즉각적인 업무 복귀, 수사 외압 주체에 대한 엄중한 처벌을 요구했다. 예비역들은 해병대 군가 ‘팔각모 사나이’를 부르고 항의의 뜻으로 대통령실이 있는 방향으로 여러 차례 함성을 지르기도 했다.
23일 오후 서울 전쟁기념관 앞에서 고 채 상병 사건의 진상을 촉구하는 해병대 예비역 전국 연대 1차 집회가 열리고 있다. 연합뉴스
전 전 사령관의 발언은 이날 집회에서 즉각 반박됐다. 해병대 예비역이자 검사 출신인 김규현 변호사는 단상에 올라 “(전 전 사령관의) 아까 말씀은 결국 군은 수사권이 없으니 수사를 시작해서도 안 됐다는 논리인데, 이는 이종섭 국방부 장관이나 대통령실을 추종하는 쪽에서 뿌리고 있는 ‘가짜뉴스’로 확인이 되고 있다”고 주장했다.
김 변호사는 “군사 경찰이 이 사건에 대해 수사권이 없으므로 피의자도, 혐의 사실도 빼는 것이 맞다 이렇게 주장하는 걸로 보이는데 그럼 그렇게 주장한 이 장관은 왜 대대장 2명은 피의자로 적시해 경찰로 보냈냐”고 반문했다.
이어 김 변호사는 “사망사건이면 무조건 (민간) 경찰이 하는 것이 아니고 범죄에 의한 사망사건만 민간에서 하는 것”이라며 “병사가 죽었으면 단순 사고사인지, 범죄에 의한 사망이어서 민간경찰이 수사를 해야 되는 것인지 알아봐야 한다. 수사를 해보고 범죄에 의한 사망이 맞다고 판단되면 그 즉시 민간 경찰로 이첩하는데 그래서 박 대령은 수사를 해보고 사단장 이하 8명에 대해 ‘업무상 과실치사 혐의’가 있다고 판단되자마자 즉시 국방부 장관에 보고하고 민간 경찰에 이첩을 했다. 무엇이 문제냐”라고 말했다.
김 변호사는 “(사건을) 민간 경찰에 보낼 때 범죄인지통보서를 작성하는데 거기 보면 피의자, 죄명, 혐의 사실 모두 적게 되어 있다”며 “수사권이 없으니 아무것도 해선 안 된다고 진실을 호도하는 세력에 속아넘어가지 말라”고 덧붙였다.
윤석열 대통령이 직접 박 대령을 복직시키라는 요구도 나왔다. 박 대령의 해병대 동기인 김성 신부는 지지 발언에서 “박 대령은 엄정한 수사, 성역 없는 수사 이 절대 명제를 지킨 참군인”이라며 “군 검찰은 (그런) 박 대령에게 말도 안 되는 집단항명수괴죄라는 무시무시한 죄명을 붙이더니 자기들이 생각해 봐도 말이 안 된다고 판단했는지 이를 항명죄로 낮췄다. 항명죄라니, 군부 쿠데타라도 일어났냐”고 비판했다.
이어 김 신부는 “군 생활을 해봤던 이들은 사단장, 여단장을 과실치사 혐의로 수사한다는 것이 얼마나 큰 용기를 내는 일인지, 법과 원칙을 따른 참으로 소신 있는 행동임을 다 안다”며 “윤석열 대통령이 박 대령의 양심을 건 소신을 지켜달라. 박 대령의 혐의를 풀고 복직시켜달라”고 촉구했다.
이유진 기자
yjlee@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