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 김봉길 변호사(오른쪽)의 군 법무관 시절 모습. 김률 제공
“용감한 우파 변호사 김봉길, 태윤기를 아십니까.”
고 김봉길 변호사(1922~2004)는 국가배상법 위헌 판결을 이끌며 대통령 박정희의 노여움을 샀던 인물이다. 고 태윤기 변호사(1918~2012)는 1980년대 재일·재미동포 간첩조작 사건의 변론을 도맡아 무죄 판결을 이끌어내며 안기부(현 국정원)에게 미운털이 박혔던 인물이다. 김 변호사는 한국전쟁에 군법무관으로 참전해 육군 중령으로 예편했고, 태 변호사는 일제 강점기 광복군에 이어 군 법무관을 거쳐 육군 대령으로 예편했다. 보수 우파로 분류할 수도 있는 두 사람은 권위주의 독재정권 시절 그 누구보다 부조리에 꼿꼿이 저항했다는 공통점을 갖고 있다.
진실·화해를위한과거사정리위원회(진실화해위)는 26일 오후 제63차 전체위원회를 열고 ‘고 김봉길 고 최봉섭의 중앙정보부 가혹행위 등 불법수사 사건’과 ‘고 태윤기 변호사 제명처분에 의한 인권침해사건’에 대해 조사를 개시하기로 의결했다.
고 김봉길 변호사는 국가배상소송 전문 변호사로 유명했다. 1968년 운전병 과실로 추락사한 군인 등 군대 내에서 피해를 당한 장병이나 유족, 군에 의해 재산이 징발된 사건들을 수임해 배상 판결을 이끌었다. 당시는 매년 평균 1400여명이 군복무중 사망할 때였다(베트남 파병 병력 제외).
이같은 소송이 잇따르자 정부는 1968년 군인에 대한 국가배상을 제한하는 국가배상법 개정안을 입법했으나 김 변호사가 맡았던 사건과 관련해 1971년 6월22일 대법원 전원합의체에서 위헌 판결이 났다. 대통령 박정희가 격노했고, 곧 현직 부장판사에 대해 구속영장을 청구하는 제1차 사법파동(1971년 7월)이 일어났다.
고 태윤기 변호사의 생전 모습. 한겨레 자료사진
고 태윤기 변호사는 전두환 정권 시절 가장 대표적으로 탄압받은 법조인으로 꼽힌다. 이승만 정권 시절 이승만 대통령 저격미수 사건과 특무부대장 김창룡 암살사건, 진보당 사건 등을, 1972년 유신 이후에는 강신옥·한승헌 변호사 사건, 10·26 사건 등을 변론했던 그는 1980년대 들어와 재미동포 홍선길 간첩사건의 무죄판결과 2심에서 사형을 받은 재일동포 손유형 간첩사건의 대법원 파기환송 판결을 이끌어내면서 안기부의 1순위 조치대상이 됐다.
고 김봉길 변호사는 1972년 1월경 중앙정보부(현 국정원) 안가로 통하던 내자호텔에 불려가 수일간 구금된 상태에서 폭행과 가혹행위 등 위법한 수사를 받고 구 법률사무취급단속법 위반으로 벌금 20만원을 선고받았다. 같은 변호사 사무실 서기로 근무하던 고 최봉섭씨도 중앙정보부에 먼저 연행돼 장기간 취조와 신체적 고문을 당했고 벌금 2만원을 선고받았다. 김봉길 변호사의 연행과 구속은 1972년 1월17일 “법을 잘 알면서 이를 악용하는 소위 악덕 변호사를 발본색원할 것”이라는 대통령 박정희의 법무부 연두순시 나흘 뒤 확인된 일이다. 당시 김봉길 변호사는 위기감을 느껴 군법무관 시절 직속부하였던 신직수 법무부장관과 최대현 청와대 사정담당 비서관을 찾아갔으나 “대통령 지시사항이라 어쩔 수 없다”는 말을 들었다고 한다.
고 태윤기 변호사는 안기부에 끌려가 조사를 받았으나 형사처벌을 받지는 않았다. 대신 1983년 5월 법무부장관을 위원장으로 하는 변호사징계위원회에서 외국환관리법 위반, 변호사 품위 손상 등의 이유로 제명처분을 받았다. 태윤기 변호사는 즉시 항고했으나 받아들여지지 않았고 재항고도 기각당했다. 태 변호사는 1987년 6월 항쟁 이후 징계위원들과 징계위 조사담당검사 최병국을 서울지검에 고발했으나 모두 불기소 처분됐다. 헌법재판소에 청구한 헌법소원 심판도 1990년 4월 기각당했다.
제명 결정은 물론 항고 기각 결정에까지 안기부가 적극 관여했다는 의혹이 있다. 진실화해위는 국정원에 자료제공 협조 요청을 했으나 아직 회신을 받지 못한 것으로 알려졌다.
고 김봉길 변호사의 재심을 준비하는 서상범 변호사는 26일 한겨레와 한 통화에서 “1차 사법파동의 실체에 대해서는 학자들에 의해서 규명이 된 적 있으나 사법파동의 실제적 원인이 되었던 국가배상법 위헌판결을 주도한 변호사들의 역할이나 고초에 대해서는 규명된 적 없다”고 말했다. 서 변호사는 “당시 김봉길 변호사 뿐 아니라 5명 넘는 변호사들이 구속됐다”며 “국가재정을 이유로 국민의 권리를 실현하기 위한 변호권을 제약한 사건”이라고 말했다.
국정원 과거사위 민간위원을 지냈던 한홍구 성공회대 교수는 한겨레 2014년 3월21일치에 실린 ‘용감한 우파 변호사, 태윤기를 아십니까’라는 제목의 글에서 “조작간첩 사건과 관련하여 우리가 꼭 기억해야 할 사람은 태윤기 변호사이다. 태윤기는 ‘일본 거점 우회침투 간첩만 총 14건을 수임’했다고 안기부 보고서에 나올 정도로 억울한 재일동포 사건을 도맡아왔다. (중략) 흠잡을 수 없는 보수 우파 경력의 태윤기는 용감하게 조작간첩들을 위해 일하다가 안기부에 끌려가고 변호사 자격까지 박탈당했다”고 썼다.
고경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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