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킨슨병에 걸린 33년차 소방관 김범진 세종 조치원소방서 현장대응단장이 현장 근무 때 가장 많이 이용한 중형펌프차 앞에서 사진을 찍으려고 화재진압복을 입고 있다. 김정효 기자 hyopd@hani.co.kr
“근데 왜 저 같은 사람을 취재하세요? 더 아프고 더 열심히 산 소방관들도 많은데….”
파킨슨병에 걸린 33년 경력의 김범진(57) 소방관은 인터뷰가 끝난 뒤 기자에게 조심스럽게 물었습니다. 잠시 말문이 막혔습니다. 그는 일평생 사람들을 구조한 후유증으로 오른팔과 오른 다리가 굳어가는 중이었습니다. 그토록 원하던 정년조차 채우지 못하고 일을 그만둬야 할 상황입니다. 하지만 그는 자신에게 찾아온 고통과 질병이 특별하다고 생각하지 않았습니다. 많은 동료의 처지가 그와 다르지 않기 때문입니다.
두 달 동안 전국을 돌며 심층 인터뷰한 은퇴 전후의 소방관 15명은 평생 다른 사람을 구조하며 살았지만 정작 자신을 위한 구조 요청에는 서툰 이들이었습니다. 불에 데고 뼈가 부러지는 것 정도는 ‘소방관이면 당연히 감수해야 할 일’이라고 서로 위로하며 지내왔다고 합니다. 그들을 이렇게 만든 근원적 이유에는 직업에 대한 사명감이 있었겠지만, 그게 전부는 아니었습니다.
시민들의 항의는 곧 ‘민원’이고, 소방관들 역시 ‘공무원’입니다. 다만 민원에 잘못 떠밀리면 그 대가가 ‘목숨’이 될 수 있다는 점이 좀 다르죠. “‘불 속에 사람이 있는데 소방관이 안 들어가고 뭐 하냐’고 욕먹는 경우가 많아요. 상황을 판단해야 하는데 현장에서 압박을 받으면 떠밀려서 들어가기도 하고, 나쁜 상황에서는 목숨을 잃는 거예요.” 30년차 소방관 김태효(56)의 말입니다.
재난 앞에서 소방관들의 목숨 가치는 구조자들에 견줘 한없이 낮게 취급되곤 합니다. “배가 뒤집힌 수난 사고에 구조하러 간 적이 있어요. 일부 구조대원은 물에 들어가서 사람을 구하고, 또 일부는 필요한 장비를 전달하고 있었죠. 구조자의 아들이 ‘다 물에 안 들어가고 뭐 하냐’며 입에 담을 수 없는 욕설을 하더라고요.” 김태효 소방관은 기억을 되짚으며 씁쓸함을 감추지 못했습니다. 구조한 사람의 가족에게서 “미국이었으면 총으로 다 쏴서 죽여버렸을 것”이라는 폭언을 들은 적도 있습니다.
실제로 독촉에 떠밀려 사고 현장에 재진입했다가 목숨을 잃을 뻔한 경우도 있었습니다. 30년 근무하고 지난 6월 은퇴한 박태선(60) 소방관은 2005년에 금방이라도 무너질 것 같은 한옥에서 일어난 화재를 떠올렸습니다. “이미 내부를 한번 확인하고 나왔는데, 지나가던 주민이 ‘아직 못 구한 사람이 있는데 왜 안 들어가냐’고 다그치더라고요. 자꾸 우기니까 어쩌겠어요. 다시 들어갔다가 대들보가 무너져서 그대로 죽을 뻔했죠.”
이후 그는 교관 생활을 할 때도 후배 소방관들에게 항상 “남의 말을 함부로 믿지 말라”고 교육했습니다. 구조자와 관계된 사람들은 당연히 마음이 급할 수 있지만, 그렇다고 소방관이 죽거나 다쳐서는 안 된다고 강조하면서요.
지난 3월6일 오후 성공일 소방교가 70대 남성을 구하려다 숨진 전북 김제시 금산면 주택 화재 현장. 전북소방본부 제공
취재팀이 마지막 인터뷰를 위해 지난 3월6일 전북 김제 금산면 화재 현장에서 74살 노인을 구조하기 위해 불 속에 뛰어들었다가 순직한 성공일(당시 30살) 소방교의 유가족을 만나러 전북 전주에 간 이유도 여기 있었습니다. 한겨레가 입수한 소방청의 ‘전라북도 김제시 단독주택 화재 순직사고 관련 조사·분석 결과 및 재발방지 대책’ 보고서에서는 성 소방교의 마지막 출동 현장 상황과 원인 분석이 고스란히 담겨 있습니다.
현장에선 2인1조 활동 원칙 미준수 등 여러 문제가 발견됐지만, ‘격앙된 관계자·주민의 다급한 인명 구조 요청, 진입 강요’도 순직 사고의 원인 가운데 하나로 꼽혔습니다. 당시 현장에서 한 주민은 창문을 깨려고 하는 등 위험한 행동을 하면서 “실컷 소방대원들을 불러놨더니 아무것도 못 하고 있냐”며 욕설을 했다고 합니다. 성 소방교는 애초 주택 현관으로 진입했다가 나왔지만, 이 말을 듣고 왼쪽 거실 출입구를 통해 다시 현장에 뛰어들었습니다. 성 소방교가 진입하고 3분 뒤 화염의 기세가 커지자 동료는 밖에서 “반장님! 어딨어요?” 하고 불렀고, 성 소방교는 “네, 나갈게요”라고 답했지만, 더는 응답을 보내오지 않았습니다. 화재가 진압된 뒤 성 소방교는 출입문에서 3.1m 떨어진 방에서 몸을 웅크린 채 산화한 주검으로 발견됐습니다.
보고서는 화재 현장에서 군중의 격앙된 말투, 통제되지 않은 위험한 행동이 현장 지휘관과 소방관들의 상황 판단에 걸림돌이 되었다고 분석합니다. 한겨레와 만난 성 소방교의 아버지는 그가 오랫동안 소방관을 꿈꾸던 청년이었다고 했습니다. 성 소방교는 대학에서부터 소방방재학을 전공했다고 합니다. “소방관이 너무 되고 싶어서, 시험을 세 번 떨어지고 네번째 붙은 아이예요. 소방관이 되고 굉장히 자랑스러워했고 기뻐했죠. 체력이 안 받쳐줘서 일에 지장이 갈까 봐 쉬는 날에도 운동을 열심히 했어요.”
하지만 성 소방교가 품어온 8년 동안의 꿈은, 입직하고 채 1년도 안 되어 스러졌습니다. 그의 아버지는 그럼에도 소방서나 같이 출동한 소방관들을 원망하지 않았습니다. “그분들도 나라를 위해 애쓰시는 분들이잖아요. 제가 아들이었어도 그 상황에서 불 속으로 들어갔을 테니까요.”
다만, 아들과 같은 희생이 다시 없도록 하기 위해, 소방관들에 대한 격려와 협조가 꼭 필요하다고 생각한다고 당부했습니다. “불이 나면 거기 있는 사람들은 다 탈출할 때, 소방관들은 비로소 목숨을 걸고 들어가는 거잖아요. 시민들이 소방에 협조를 해주면 좋겠어요. 그래야 구해야 할 분들을 구할 수 있으니까요.”
보고서에는 미국 소방 지휘 시스템의 ‘위험 감수 3단계 기준’이 강조되어 있습니다. 1단계 ‘우리는 구할 수 있는 생명을 보호하기 위해 많은 위험을 감수할 것이다’, 2단계 ‘우리는 구할 수 있는 재산을 보호하기 위해 위험을 조금 감수할 것이다’, 3단계 ‘우리는 이미 잃어버린 생명 혹은 재산을 위해서 어떤 위험도 감수하지 않을 것이다’라고 적혀 있습니다. 보고서에는 이 기준을 강조한 까닭으로 “대원들이 언제, 어디서, 어떻게 그리고 왜 그러한 위험을 감수해야 하는지를 결정하고, 이를 명확하게 규정하는 것은 우리 대원들의 생존에 필수적”이기 때문이라고 적고 있습니다.
소방관들이 화재진압 때 사용하는 호흡장비. 김정효 기자 hyopd@hani.co.kr
어떻게 보면 너무나 당연한 말인 이 기준을, 굳이 2023년 지금 다시 세워야 하는 이유는 무엇일까요. 소방관들이 위험의 정도와 관계없이 고통과 부상, 죽음을 감수하는 게 자연스러운 일이 되어서는 결코 안 된다는 의미일 것 같습니다. 구조를 업으로 삼는 이들이기에 조금 더 다칠 수밖에 없다면, 적어도 그 이후의 치료에 대해 국가가 인색하게 굴어서는 안 된다는 뜻이기도 합니다.
김범진 소방관의 딸 김한나(30)씨는 소방관들이 국가로부터 공무상 요양(공상)을 승인받으려고 하는 이면에는 경제적 이유 이상의 것이 있다고 말했습니다. “대가성이 아니라 사실은 나라를 위해 고생했다고 인정받고 싶은 거예요. 아파도 보상과 인정조차 해주지 않는다면 누가 인생을 바쳐 사람을 구조하고 불을 끄려고 할까요.”
최근 우리는 부쩍 늘어난 자연적, 사회적 재난과 마주하고 있습니다. 재난에 앞장설 이들의 발아래를 제대로 받쳐주지 못한다면, 그 결과를 감내해야 하는 건 우리 자신이 될 겁니다. 늙고 병든 몸을 추스르며 뒤늦게 구조 신호를 보내는 소방관들의 목소리가 외면받지 않기를 바라는 까닭입니다.
김지은 기자
quicksilver@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