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7년 기아차 처리때부터 ‘인연’
자동차 빅딜때 큰 역할…컨설팅 용역도 여러건
자동차 빅딜때 큰 역할…컨설팅 용역도 여러건
검찰이 ‘금융계의 마당발’로 알려진 김재록씨 로비의혹과 관련해 현대·기아차에 대한 압수수색을 단행하면서 그와 현대·기아차그룹과의 관계에 관심이 쏠리고 있다.
김재록씨의 주요 활동무대는 금융계였던 반면, 현대·기아차는 금융사업에 그다지 큰 비중을 두지 않는 그룹이다. 이 때문에 재계에서는 현대·기아차가 어떻게 김재록씨 사건에 연루되었는지 의아해하는 시각이 많다. 하지만 김재록씨가 정치권에서 경제계로 몸을 옮길 때 국내 자동차산업 구조조정 업무부터 시작했다는 사실은 잘 알려지 않았다.
김씨는 1997년 정치권과 기업 양쪽에 발을 딛고 있었다. 정치권에서는 당시 김대중 대통령 후보의 전략기획특보였고, 대외적으로 ‘기아차 전략기획이사’라는 명함도 갖고 있었다. 그는 이 두 직함을 가지고 기아차 처리를 둘러싼 정-재계의 견해 차이를 조율하는 일을 했다. 또 이 때의 경험을 바탕으로 국민의 정부 출범 이후 회계법인과 컨설팅회사의 임원으로 활동하면서 기아차 처리에 깊숙이 개입했다. 98~99년 삼성-대우-현대그룹 간에 논의된 자동차산업 빅딜협상에서도 물밑에서 적지 않은 영향력을 행사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 과정에서 기아경제연구소 등의 국내 자동차산업 전문가들과 두터운 인맥을 쌓았다. 그가 2002년 독자적으로 설립한 인베스투스글로벌도 초기에는 자동차산업 전문 경영컨설팅회사였다.
현대·기아차그룹은 김재록씨에게 가장 중요한 고객이었고, 현대·기아차로서도 김재록씨의 ‘서비스’를 적극 활용하는 관계가 형성됐다. 실제로 인베스투스글로벌은 2002년과 2003년에 현대·기아차로부터 경영전략과 특정 사업부문에서 여러 건의 컨설팅용역을 맡아 수행했다. 현대차 관계자는 “인베스투스글로벌의 용역보고서는 텔레메틱스 등 미래사업 전략과 관련한 구상에 상당한 영향을 끼쳤고, 자동차산업의 전·후방 수직계열화 작업에도 여러 자문을 한 것으로 알고 있다”며 “검찰이 말하는 ‘로비자금’은 계약에 따른 공식 자문비일 가능성도 있다”고 말했다.
그러나 검찰이 뚜렷한 범죄단서도 없이 현대·기아차를 압수수색했다고 보기는 어렵다. 검찰이 이날 압수수색한 곳은 양재동 본사의 기획총괄본부와 물류담당 계열사인 글로비스, 전장부품 계열사인 현대오토넷이다. 이 중 기획총괄본부는 그룹 차원의 업무 조정을 담당하는 곳으로, 정몽구 회장 등 최고위층의 의중이 직접 반영되는 부서다. 또 글로비스는 정몽구 회장과 장남인 정의선 기아차 사장이 전체 지분의 60%를 보유해, 그룹 안팎에서는 경영권 승계의 지렛대구실을 하는 계열사로 알려졌다. 검찰이 수사상 필요하다면 정몽구 회장을 비롯한 그룹 최고위 간부들을 불러 조사할 가능성도 없지 않다는 전망도 나오고 있다. 박순빈 기자 sbpark@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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