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파트에서 불이 났을 때 대피하다가 연기에 질식해 숨지는 경우가 많아 소방청이 집으로 화염과 연기가 들어오지 않을 땐 무조건 대피하기보다 집 안에 일단 대기하며 화재 상황을 주시하라는 지침을 내놨다.
9일 소방청은 이 같은 내용을 담은 ‘아파트 화재 피난안전대책 개선방안’을 공개했다. 4월부터 10월까지 전문가 18명이 관련 티에프(TF)를 꾸려 빅데이터 분석, 화재 발생 아파트 현장조사, 설문조사 등을 통해 마련한 것이다.
그동안 소방당국은 화재가 발생했을 때 장소와 관계없이 일률적으로 대피를 먼저 하도록 안내했다. 하지만 아파트의 경우 다른 층으로 불이 번지는 경우가 많지 않음에도 대피 과정에서 인명피해가 발생하는 경우가 많아 대피 지침을 개선하게 됐다. 최근 3년(2019~2021년) 동안 아파트에서 발생한 화재(8360건)로 98명이 숨지고 942명이 다쳤는데 이 가운데 39.1%(사망 49명, 부상 604명)가 대피 중에 발생했다.
실제로 지난 3월6일 경기 수원시의 한 아파트 1층에서 불이 났을 때 위층 입주민들이 대피하다가 연기에 의해 1명이 숨지고 2명이 중상을 입었는데 불은 다른 층으로 번지지 않고 40여분 만에 모두 꺼졌다. 소방청은 “이 경우 오히려 집 안에 대기하는 편이 안전할 수 있었다”고 설명했다.
새 지침을 보면, 아파트에서는 불이 난 장소, 화염·연기의 확산 정도 등에 따른 맞춤형 대피 방법을 따라야 한다.
먼저 자기 집에서 불이 났을 때다. 먼저 불이 났다는 것을 함께 집에 있는 사람에게 알린 뒤, 현관으로 대피가 가능하다면 계단을 이용해 낮은 자세로 지상층, 옥상 등 안전한 장소로 이동한다. 이때 출입문을 반드시 닫고 엘리베이터는 타지 않는다. 만약 대피가 어렵다면 집 안에 경량 칸막이, 하향식 피난구, 대피공간 등이 설치된 곳으로 이동한다. 대피공간 등이 없다면 화염이나 연기로부터 멀리 이동해 문을 닫고 젖은 수건 등으로 틈새를 막아야 한다.
자기 집이 아닌 다른 곳(아파트의 다른 세대 또는 복도, 계단실, 주차장 등)에서 불이 났는데 집으로 화염이나 연기가 들어오지 않는 경우에는 어떨까. 이때는 무조건적인 대피보다는 집 안에 대기하며 화재 상황을 주시하고 연기가 들어오지 못하게 창문을 닫은 뒤 안내 방송에 따라 행동하는 것이 더 안전하다.
하지만 다른 곳에서 불이 났는데 집으로 화염이나 연기가 들어오는 경우에는 자기 집에서 불이 났을 때와 동일한 지침을 따라야 한다.
박성열 소방청 화재예방총괄과장은 “평소 가족회의를 통해 유사시 어떻게 피난할 것인지 계획을 세워달라”고 당부했다.
이유진 기자
yjlee@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