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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 사회일반

농민해방과 민중세상 위해 현장에서 행동한 실천가

등록 2023-11-12 17:46수정 2023-11-13 13:40

1970년대 농민운동 본격 뛰어들어
기독교농민회 회장·전농 의장 등
민중운동의 한가운데서 핵심 역할
2003년 평통사 대표 등 통일운동도

지난해 암진단 뒤에도 활동 이어가
지리산 ‘이현상 추모’ 지게 타고 참석
영원한 청년 농민 , 배종열 전 전농 의장을 기리며

지난 10월20일 광주 5·18민주광장에서 고 배종열 의장의 노제가 열리고 있다. 장헌권 목사 제공
지난 10월20일 광주 5·18민주광장에서 고 배종열 의장의 노제가 열리고 있다. 장헌권 목사 제공
배종열 전 전국농민회총연맹(전농) 의장이 지난 10월18일 별세했다. 배종열 의장과 필자와의 만남은 35년 전이다. 1988년 8월8일 전남 장성 남면에 있는 백운교회당 입당식을 할 때 필자는 설교를 하고, 배종열 의장은 축사를 했다. 그때 연세가 55살이었다. 카랑카랑한 목소리로 “농민 세상, 민중 해방을 위하여 양키 귀신, 쪽발이 귀신을 한국 교회는 몰아내야 한다”고 역설했다.

1933년 전남 무안군 해제면 유월리에서 난 고인은 초등학교를 마치고 한학을 배우며 독학으로 함평농고에 진학했다. 단국대 국문학과를 다니다 중도에 그만두었다. 이후 해광중을 설립하여 8년 간 교직원으로 근무하다가 1970년대부터 본격적으로 농민운동에 뛰어들었다.

전남 기독교농민회장을 거쳐 1980년대 한국 기독교농민회 총연합회장과 5·18 광주 민중항쟁 9주기 추모위원장 등 수많은 직함을 가지고 민중운동의 한가운데에서 역할을 했다. 1993년 전국농민회총연맹 의장 임기를 마치고 농촌경영 사업에 참여하면서 직접 농민들에게 도움을 줄 수 있는 방법을 생각했다. 고인은 농민운동을 민족의 평화·통일운동으로 생각하고 2003년부터 ‘평화와 통일을 여는 사람들’(평통사) 상임대표로서 통일운동과 함께 민중운동을 했다.

팔순이 다 된 연세에도 늘 젊은이들과 함께 소통하며 친구로 지냈다. “우리끼리 하나 되어 평화를 지키고 통일을 지향하면서 대동 세상을 펼쳐보자”고 하신 이야기가 지금도 생생하다.

5·18민주광장 노제와 헌화.  장헌권 목사 제공
5·18민주광장 노제와 헌화. 장헌권 목사 제공
행동하는 양심으로 살아가는 일은 늘 고난과 십자가의 길이다. 팔순 기념 글모음인 ‘한반도라는 감옥에서’에 실린, 교도소에 수감 중일 때 아내에게 쓴 옥중서신을 보면 알 수 있다. “1975년부터 농민운동에 참여하면서 나는 집에 없고 1주일이 멀다 하고 경찰 등 기관원들이 집에 찾아다녔으니… 많은 연행, 유치장 생활, 몇 번의 교도소 생활 중에서…모두들 (당신이) 운동가의 부인이 되었다고들 했었어요.” 이처럼 배종열 의장은 현장에서, 투쟁과 실천으로 오직 농민해방과 민중 세상을 위하여 행동하는 실천가였다.

투쟁하면서 벌금형을 받으면 벌금을 내는 대신 팔순의 노구임에도 불구하고 몸소 구치소로 가서 노역으로 꺾이지 않는 투쟁 정신을 보여준 투사이다. 농민운동을 민주화운동과 민족의 평화·통일운동으로 생각하고 투쟁의 현장 곳곳마다 역사와 후배들을 위하여 실천으로 살았다.

필자가 소장한 책 가운데 ‘김영원의 들소리’라는 책이 있다. 김영원 장로 역시 배종열 의장처럼 농민운동, 환경운동, 민주화운동을 했던 시대의 예언자이다. 그 책에 보면 ‘배종열 장로의 편지’가 있다. 1980년 5월 광주 현장에 대한 증언이었다. “명예롭게 역사의 전환기에 죽어야 할 크리스천들은 용케 살아남아 변명을 해야 하니 비겁하기만 합니다. 서울의 김의기 형제가 우리를 앞서가고 말았습니다.” 김의기 형제는 광주 민중항쟁에 대한 참상을 알리기 위해 ‘동포에게 드리는 글’을 남기고 서울 종로5가 기독교회관에서 투신했다. 광주 진상을 바깥에 알린 첫 번째 사건이다. 1980년 6월10일치 편지를 통해서 배종열 의장의 삶과 신앙 고백을 알 수 있었다.

전남 무안 장례식장.  장헌권 목사 제공
전남 무안 장례식장. 장헌권 목사 제공
고인은 지난해 여름 지리산 모임 뒤 교통사고로 말미암아 치료를 받던 중 혈액암을 발견했다. 투병 중에도 의지는 대단했다. 구순에도 지팡이의 도움을 빌려 힘들게 불굴의 활동을 했다. 지난 6월18일에는 70년 전 남조선 인민유격대를 총지휘하여 조국 통일을 위해 싸우다 전사한 ‘이현상 남부군 사령관 추모제’에 참석했다. 그때 지리산 걷기가 불가능해서 들것과 지게를 통해서 다녀온 것이다. 결국 마지막 활동이 되었다. 이처럼 생의 마지막 불꽃이 다할 때까지도 오직 민족해방과 조국의 자주·민주·통일만을 생각했다.

농민해방, 자주·통일 세상을 기도하면서 질척거리는 민중의 삶과 최악의 남북관계, 민생 파탄 등으로 힘든 상황에서 민중과 농민의 밀알이 되어주신 영원한 청년 농민, 고 배종열 의장은 지난 10월20일 자주·평화·통일장으로 광주 5·18민주광장에서 노제를 한 뒤 오랜만에 금남로에 만장과 함께 운구 행렬을 했다. 지금은 망월동 민족민주 열사 묘지에 이성학 장로(광주 5·18민중항쟁 때 수습위원) 곁에 나란히 안식하고 있다.

장헌권/목사·광주전남민주화운동동지회 상임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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