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달 29일 찾은 서울 서초구에 마련된 흡연부스. 정봉비 기자
☞한겨레 뉴스레터 H:730 구독하기. 검색창에 ‘한겨레 h730’을 쳐보세요.
“부스가 좁아 들어갈 수가 없네요.”
지난달 29일 낮 서울 서초구 방배역 3번 출구 인근 골목. 대학생 최아무개(21)씨가 흡연부스 인근 골목에서 담배를 피우고 있었다. 좁은 부스 안은 이미 흡연자로 가득 차 있었다. 최씨는 “어디든 금연구역은 많다. 그렇지만 흡연부스는 별로 없다. 부스가 있어도 겨우 1~2개뿐이라 늘 꽉 차 있다”고 말했다.
금연정책이 확대되면서 금연구역은 계속 늘고 있지만, 서울시 내 흡연부스는 100여개에 불과해 갈 곳을 잃은 흡연자들로 거리 간접흡연 피해도 늘고 있다. 피해를 막으려면 추가 부스 설치가 필요하지만, 흡연을 ‘조장’ 또는 ‘배려’한다는 시각 탓에 지자체들은 적극 설치를 꺼리고 있다.
3일 서울시 실외흡연 시설 현황 자료를 보면, 서울시와 25개 구청이 운영 중인 흡연부스는 총 141개다. 이 중 한강공원(11곳)에 마련된 37개를 제외하면 일반 도로에 놓인 부스는 104개다. 이마저도 2020년 11월 양재1·2동 전체가 금연구역으로 지정된 서초구(77개·74%)에 대부분 밀집해 있다.
나머지 구에는 흡연부스가 거의 없다. 영등포구 10개, 중구에 6개가 있고, 성동구와 노원구에 각각 4개와 3개의 흡연부스가 있다. 광진·마포·구로·동작구에는 1개씩 있다. 나머지 16개 구엔 흡연부스가 아예 없다.
지난달 29일 찾은 서울 서초구에 마련된 흡연부스. 정봉비 기자
서울시나 구청이 ‘길거리 흡연을 막겠다’는 명분으로 흡연부스를 설치하려 해도 걸림돌이 있다. 금연정책에 역행하는 모양새로 비칠 수 있기 때문이다. ‘흡연하라고 세금 들여 장소까지 제공해야 하느냐’는 비판이 대표적이다. 비흡연자인 60대 황아무개씨는 “흡연구역을 늘리면 길에서는 담배 냄새를 맡을 일이 줄어들겠지만 흡연자를 위해 돈까지 써가면서 만들 일인지는 모르겠다”고 했다.
막상 설치하려 해도 장소를 구하기 쉽지 않다. 흡연부스는 흡연자를 불러 모으기 때문에 누구도 달가워하지 않는 시설이기 때문이다. 밀폐가 불가능해 부스 주변에 담배 연기가 퍼져나가는 것도 흡연부스 설치가 쉽지 않은 배경이다.
관악구청은 “부스 설치를 추진하자는 의견도 있었지만, 흡연부스 주변이 담배 연기로 피해를 볼 수밖에 없어 추진하지 않았다”고 했다. 강동구청은 “부스를 설치한다 해도 부스 안에서 피우지 않고 부스 근처에서 피우는 경우가 많다”며 “부스 자체가 담배 피우는 모습을 전시하는 효과도 있어 국내 금연정책과 맞지 않는다”고 말했다. 서울시가 흡연구역 설치 가이드라인을 제정한 2017년 1월(43개) 이후 7년 동안 흡연부스는 98개 늘어나는 데 그쳤다.
‘서울시 흡연구역 설치 가이드라인’을 보면 유동인구가 많고 거리 간접흡연 피해가 많은 공공장소에 흡연부스 설치를 권하고 있다. 동시에 환기 등을 이유로 벽면의 50% 이상을 개방해야 한다고 규정한다. 부스에서 담배 연기가 새어나올 수밖에 없는 구조다. 접근성 있는 곳에 설치해야 하지만, 인파가 많은 곳에 설치하자니 흡연부스로 몰려든 흡연자 탓에 많은 이들이 간접흡연 피해를 입을 수밖에 없는 딜레마에 빠진 셈이다.
서울시 스마트건강과 관계자는 “부스 주변에 담배 연기로 인한 피해를 주지 않으면서도 이용객이 많아야 하는데 그런 장소를 찾기가 쉽지 않다. 더 늘리기가 어렵다”고 말했다.
곽진산 기자
kjs@hani.co.kr 정봉비 기자
bee@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