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서울 성북구 한 병원에 소아과 진료를 보기 위해 부모들이 대기하고 있는 모습. 연합뉴스
우봉식 대한의사협회(의협) 의료정책연구원장이 최근 기고글에서 최근 심화된 ‘소아과 오픈런’ 현상을 두고 “젊은 엄마들이 일찍 소아과 진료를 마치고 브런치(아침 겸 점심)를 즐기기 위해 오픈 시간에 몰려들기 때문”이라고 주장한 데 대해 부모들이 ‘현실을 너무 모른다’며 분노를 쏟아내고 있다.
7일 맘카페, 사회관계망서비스(SNS), 포털사이트 댓글창 등을 보면 우 원장의 발언을 질타하는 부모들의 성토가 이어진다. 부모들의 분노에는 우 원장이 현실을 몰라도 너무 모른다는 답답함이 깔려있다.
부모들은 오전에 진료를 보지 못하면 오후에나 진료가 가능하고 오후 진료 역시 몇시간을 기다려야 한다고 토로했다.
한 누리꾼은 “오전 9시30분에만 가도 진료가 마감되기 때문에 오픈런을 하는 것”이라며 “오전에 진료를 못 보면 오후 2시부터 시작되는 오후 진료를 봐야하는데, 이것도 12시에는 가서 접수하고 몇시간을 기다려야 한다”고 했다. 소아과 접수 대기 경험이 있는 아빠들도 “병원 주차장에서 새벽에 머리도 감지 못한 채 2시간 대기해보고 오픈런이 뭔지 말하자” 같은 의견을 올렸다.
밤새 앓는 아이를 조금이라도 빨리 진료받게 하려고 ‘오프런’ 하는 부모의 심정에 대한 이야기도 많았다. 초등학생 2학년 아이 엄마인 정아무개(41)씨는 “밤새 아이가 고열에 끙끙대다 날 밝자마자 달려가는 마음을 왜 그런식으로 왜곡하는지 이해가 되지 않는다”고 했다.
한 누리꾼도 “아이가 열이 나고 아프니 안쓰러워하며 밤새 지켜보다가 조금이라도 빨리 진료를 받고 빨리 나았으면 하는 마음에 날이 밝자마자 소아과로 달려가는 것이 부모 마음”이라며 “자식이 없는 건지 아이 키우는 일은 아내한테 맡기고 나 몰라라 한 건지 모르겠지만 브런치 먹으러 가려고 소아과 오픈런 한다는 건 말도 안 되는 소리”라고 지적했다.
지난 7월 28일 오후 서울 용산구 대한의사협회 회관에서 열린 ‘적정 병상수급 시책 마련 촉구 기자회견'에서 우봉식 의료정책연구원장이 발언하고 있다. 연합뉴스
엑스(옛 트위터)에 한 이용자가 ‘눈 뜨자마자 애 들쳐업고 병원가서 접수해도 기본 대기자가 20∼30명이다. 라면이나 냉장고에 먹다 남은 음식 털어 먹는 것도 브런치로 봐준다면 나도 오픈런하고 브런치 먹은 엄마’라고 올린 글은 많은 이들의 공감을 얻었다.
맞벌이 부부들의 분노도 거셌다. 한 누리꾼은 “워킹맘은 오전 반차 쓰고 아이들 병원에 데려갔다가 양가 부모님 눈치 보며 겨우 오후에 아이들 맡기고 출근하는 게 현실”이라며 “브런치는 의사 남편 빽으로 새치기하느라 진료 대기를 안 해 본 의사 사모님들이나 즐길 수 있는 것 아니냐”고 꼬집었다.
맘카페도 들끓었다. 맘카페 회원들은 “만만한 게 아이 키우는 엄마냐” “브런치는 무슨 브런치냐. 화장실도 제대로 못 간다” “자식 키우는 입장에서 분노하는 댓글들이 너무 공감되고 이런 정신 나간 발언이 저출산의 원인 같다” 등의 반응을 쏟아냈다.
우 원장은 최근 의협이 발간한 계간 ‘의료정책포럼’에
‘필수의료 위기와 의대정원’이라는 제목의 시론에서 의사 정원 부족 문제에 대한 정부의 진단을 비판하며 “더러 젊은 엄마들이 일찍 소아과 진료를 마치고 아이들을 영유아원에 보낸 후 친구들과 브런치타임을 즐기기 위해 소아과 오픈 시간에 몰려드는 경우도 있어서 ‘소아과 오픈 때만 런’이지 ‘낮 시간에는 스톱’”이라고 주장했다.
남지현 기자
southjh@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