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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 사회일반

쪽방촌에 지원되는 식권 한 장, 생활고가 기준 아니었다고?

등록 2023-12-14 11:09수정 2023-12-14 11:35

“건물주 요청 따라 누군 되고 누군 안 되고”
13일 오후 한겨레가 방문한 서울 구로구 가리봉동의 쪽방촌. 이곳은 곳곳에 쪽방이 존재하지만, ‘쪽방상담소’가 없어 주민들은 생필품· 식사 지원 등을 받지 못한다. 고경주 기자
13일 오후 한겨레가 방문한 서울 구로구 가리봉동의 쪽방촌. 이곳은 곳곳에 쪽방이 존재하지만, ‘쪽방상담소’가 없어 주민들은 생필품· 식사 지원 등을 받지 못한다. 고경주 기자

서울 용산구 동자동 쪽방촌에 거주하는 70대 이상진(가명)씨는 지난해 10월 방 안에 ‘화장실’이 있는 다른 쪽방을 찾아 이사했다. “허리협착증으로 완전히 노동력을 잃어버려 12년 동안 동자동 쪽방촌을 옮겨 다니며 살아왔다”는 이씨의 허리와 다리가 화변기인 쪽방 공용화장실을 도저히 쓸 수 없을 정도로 불편해졌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예상치 못한 난관에 부딪혔다. 화장실이 방 안에 있는 새 방은 ‘쪽방’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이씨는 “건물 양옆과 뒤까지 모두 쪽방이라 당연히 쪽방이라고 생각했지만, 건물주가 이곳을 쪽방으로 등록하지 않은 탓에 쪽방상담소는 무료 식권과 생필품을 지원하지 못한다고 했다”고 말했다. “수급비 외에는 단 ‘1원’도 어디서 나오는 게 없어서 쪽방상담소의 지원 없이는 반찬도 사 먹기 힘들다”는 이씨는 결국 이사한 지 1년도 안 돼 기존 방의 반도 안 되는 크기의 다른 ‘쪽방’으로 이사할 수밖에 없었다.

이는 이씨가 지난 13일 오후 서울 여의도 이룸센터에서 열린 ‘사각지대 쪽방 실태 파악 및 제도개선을 위한 토론회’에서 직접 말한 ‘사각지대 쪽방’ 사례다. 홈리스행동, 한국도시연구소 등 47개 시민사회단체가 함께하는 ‘2023홈리스추모제공동기획단’이 주최한 이번 토론회에서는 허술한 쪽방 주거 주민 지원 체계에 대한 비판이 나왔다.

13일 오후 서울 여의도 이룸센터에서 서울 용산구 동자동 쪽방촌에 거주하는 70대 이상진(가명)씨가 ‘사각지대 쪽방’ 사례를 발표하고 있다. 고병찬 기자
13일 오후 서울 여의도 이룸센터에서 서울 용산구 동자동 쪽방촌에 거주하는 70대 이상진(가명)씨가 ‘사각지대 쪽방’ 사례를 발표하고 있다. 고병찬 기자

이들은 “현재 쪽방 주민에 대한 지원은 정부와 서울시가 인정한 서울지역 5대, 전국 10대 쪽방 지역에만 국한되어 있고, 쪽방촌 안에서도 쪽방에 살지만 쪽방 주민이 아닌 사람들이 있다”며 “전국 곳곳에 존재하는 사각지대 쪽방의 실태를 드러내고, 이들을 지원체계 내로 포섭할 수 있는 제도개선 해야 한다”고 요구했다.

이들은 이씨 사례처럼 지자체가 쪽방상담소를 세워 집중적인 복지 지원을 하는 곳에서도 건물주의 의지에 따라 지원 대상 여부가 달라지는 등의 일이 빈번하다고 했다. 박승민 동자동사랑방 상임활동가는 “면적이나 주거 환경을 기본으로 구체적인 쪽방에 대한 기준이 없어 건물주의 요청에 따라 쪽방 등록 여부가 달라지고 같은 쪽방촌 주민이면서도 누구는 지원 대상이 되고 누구는 안 되는 일이 발생하고 있다”며 “특히 동자동처럼 재개발이 예정된 쪽방촌의 경우 토지·건물주들은 이렇게 쪽방 주민들의 세대 수를 줄여 차후 재개발 시 쪽방 주민들에게 돌아갈 임대주택 건설을 최소화하려 한다”고 주장했다.

쪽방상담소가 존재하지 않는 지역은 아예 공공지원의 공백으로 남아있다. 김준희 한국도시연구소 책임연구원은 “전국 10곳인 쪽방상담소는 2000년 이후 늘어나지도 않고, 그 근거가 되는 ‘노숙인 등의 복지 및 자립지원에 관한 법률’에도 쪽방에 대한 정의가 없다”며 “그러다 보니 서울 구로구, 경기 시흥시 등에도 쪽방에 가까운 주거 취약계층이 모여 살지만 공공의 지원이 없는 사각지대로 남아있다”고 했다.

국토교통부의 2022년 ‘주택 이외의 거처 주거실태조사’를 보면 현재의 거처를 쪽방으로 인식하는 가구는 7만8417가구에 달하지만, 같은 해 보건복지부 집계에 따르면 쪽방상담소에서 지원을 받는 쪽방 주민 수는 4775명에 불과하다.

이에 사각지대 발생을 막기 위해 쪽방에 대한 포괄적 정의를 만드는 한편, 지원 강화가 필요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김 책임연구원은 “쪽방을 면적, 보증금 유무, 거처 유형, 필수설비 여부 등의 기준으로 엄격하게 정의할 경우 사각지대가 발생할 가능성이 크다”며 “다양한 형태의 건물에 존재하는 쪽방(SRO·Single Room Occupancy)을 정책대상으로 삼는 미국처럼 단순하고, 유연하게 다양한 유형을 포괄할 수 있어야 한다”고 했다. 이어 “한국토지주택공사 등 주거급여 조사기관을 통해 쪽방 거주 취약계층을 적극적으로 발굴하고 주거복지센터 등으로 연계하는 것이 필요하다”고 했다.

13일 오후 홈리스행동, 한국도시연구소 등 47개 시민사회단체가 함께하는 ‘2023홈리스추모제공동기획단’이 서울 여의도 이룸센터에서 ‘사각지대 쪽방 실태 파악 및 제도개선을 위한 토론회’를 열고 있다. 고병찬 기자
13일 오후 홈리스행동, 한국도시연구소 등 47개 시민사회단체가 함께하는 ‘2023홈리스추모제공동기획단’이 서울 여의도 이룸센터에서 ‘사각지대 쪽방 실태 파악 및 제도개선을 위한 토론회’를 열고 있다. 고병찬 기자

고병찬 기자 kick@hani.co.kr 고경주 기자 goh@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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