근로복지공단 황당한 조사
근로복지공단이 직원들의 임대아파트 입주 여성들에 대한 성적 괴롭힘 의혹을 조사하면서 주민들의 신원을 공개하도록 해 비판을 받고 있다. 근로복지공단은 최근 임대아파트 관리사무소 경비원들이 여성 입주자들에게 “함께 성인방송을 보자”는 등 성적 괴롭힘을 행사한 데 대해 조사를 벌이고 있다.
<한겨레>가 최근 입수한 근로복지공단의 ‘아파트내 성희롱에 관한 조사표’를 보면, 공단은 경비원들의 여성 입주자들에 대한 성적 괴롭힘 의혹을 조사하면서 입주자들의 신원을 밝히도록 조사표를 만들었다. 주민들은 설문 과정에서 자신의 아파트 동·호수는 물론 이름까지 모두 공개하도록 돼 있었다.
또 조사 과정에서도, 제3자인 공단 본사 직원들이 조사하는 것이 아니라, 가해자일 가능성이 있는 관리사무소 경비원들이 조사표를 직접 나눠주고 거둬가도록 했다. 조사 기간에 대해서도 주민들에게 미리 알리지 않고 저녁에 조사표를 나눠준 뒤 다음날 아침에 바로 거둬가는 등 매우 짧았다고 주민들은 밝혔다.
김은하(36·여) 서울 구로임대아파트 입주자 대표는 “공단 쪽의 이런 조사 행태는 성적 괴롭힘을 당한 여성 입주자들의 사정을 전혀 고려하지 않은 것”이라며 “피해자가 가해자일 수 있는 사람들에게 자신들의 어려움을 ‘고발’하는 것이 현실적으로 가능하냐”고 불만을 표시했다. 김지선 한국성폭력상담소 활동가는 “성희롱 피해자의 개인정보가 그대로 노출되는 상황에서는 피해 사실을 솔직히 털어놓기 어렵다”며 “공단의 조사는 피해 여성의 상황에 대한 배려에 큰 문제가 있었다”고 말했다.
이에 대해 강관중 근로복지공단 복지계획팀장은 “입주자들과 사전에 조사 방식에 대해 협의하지 않은 것은 사실”이라며 “실명을 공개하도록 한 조사표에 문제가 있어서 2군데 조사를 마친 뒤 무기명 양식으로 바꿔 조사하고 있다”고 밝혔다. 전국의 6개 근로여성 임대아파트 가운데 현재까지 성적 괴롭힘 조사를 벌인 곳은 부산, 대구, 서울, 인천 4곳이며, 부천과 춘천은 아직 조사가 이뤄지지 않았다.
전진식 기자 seek16@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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