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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 사회일반

22년 전통의 인권위 합의정신, 시험대에 서다

등록 2023-12-18 09:25수정 2023-12-21 17:05

‘소위원회에서 1명만 반대해도 진정 자동기각’
18일 전원위 상정…통과돼도 법적 구속력은 없어
11월22일 열린 인권위 상임위 모습. 백소아 기자 thanks@hani.co.kr
11월22일 열린 인권위 상임위 모습. 백소아 기자 thanks@hani.co.kr
인권위 출범 이후 20년 넘게 지켜온 합의정신의 전통이 작은 시험대에 섰다.

3명의 위원 중 1명만 반대해도 해당 진정이 자동기각되도록 하자는 이른바 ‘소위원회에서 의견 불일치일 때의 처리’ 안건이 18일 오후 국가인권위원회(인권위) 전원위원회에 상정된다.

안건을 발의한 인권위원이 6명으로 전체 과반이 넘어 표결이 이뤄질 경우 통과될 가능성이 크지만, 법적 구속력은 없는 법 해석에 관한 결정이어서 앞으로도 논란은 계속될 것으로 보인다. 또한 모든 발의 위원이 “반드시 이번에 꼭 통과시켜야 한다”는 입장도 아닌 상황이라 “다양한 의견을 경청하고 심사숙고할 시간을 갖자”는 송두환 위원장 등의 주장이 관철될 가능성도 있다. 어떤 식으로 결론이 나든 인권위 내부혼란은 더욱 깊어질 것으로 보인다.

이번 안건 발의에 참여했던 한수웅 위원은 15일 한겨레와 한 통화에서 “법적인 관점에서 봤을 때 새로운 해석이 더 타당하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표결해도) 내부 논의를 통해 결과를 정리하는 수준의 의결일 뿐 행정법원의 최종판결이 나오지 않는 한 집행을 강제할 방법은 없다”고 말했다. 한 위원은 “표결을 늦출 이유도, 빨리할 이유도 없다고 본다”고 했다.

재단법인 일본군 성노예제 문제 해결을 위한 정의기억연대(정의연)는 지난 10월 25일 인권위를 상대로 수요집회 보호 진정과 관련한 기각결정을 취소해달라는 행정소송을 서울행정법원에 낸 바 있다. 정의연은 소장에서 침해구제제1위원회(침해1소위)에서 3명 이상의 찬성으로 의결하지 않은 이 사건 처분 절차의 위법성 문제를 제기했다.

인권위법 제13조2항은 “소위원회 회의는 구성위원 3명 이상의 출석과 3명 이상의 찬성으로 의결한다”고 돼 있다. 정의연은 8월1일 열린 소위에서 해당 진정에 대해 김수정 위원이 인용 의견을 내 위원 3인의 의견일치가 되지 않았음에도 소위원장인 김용원 상임위원이 기각을 선언하고 9월12일엔 인권위가 이 결정을 확정한 것은 평등권 침해 등 위법에 해당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인권위 사무처는 기각 선언 직후 후속조치를 취하지 않다가, 김용원 상임위원이 직무 거부 의사를 밝히자 기각 결정을 정의연에 통보했다.

이후 10월30일 6명의 위원이 ‘소위원회에서 의견 불일치일 때의 처리’ 안건을 발의했는데, 현재 각 위원 뿐 아니라 인권위법 최초발의자인 이미경 전 의원, 전 인권위원 15명, 민주주의법학연구회 등이 이에 관한 의견서를 인권위에 낸 상태다.

논란의 핵심 중 하나는 인권위법 해당 조항(‘3명 이상의 찬성으로 의결’)에 나오는 ‘의결’을 어떻게 풀이할 것이냐다. 이번 발의를 주도한 김용원·이충상 상임위원은 “‘의결’은 ‘가결’을 의미한다”고 주장한다. 따라서 위원 3인 찬성으로 가결되지 않으면 자동으로 부결되어 기각결정을 해야 한다는 것이다. 위원 3인 중 1인이라도 반대하면 ‘가결’, 통과시킬 수 없으므로 기각이라고 주장한다.

김수정 위원은 “의결과 가결은 다른 개념이며, 소위 진정사건에서 다루는 안건은 가결 여부가 아니라 ‘어떻게 처리할 것인지’에 대한 결정으로서 인권위법이 정하는 바에 따라 가결과 부결뿐 아니라 권고, 기각, 각하, 타 구제절차 이송, 수사의뢰 등 여러 가지 다른 형태의 결정으로 나올 수 있다”고 주장한다. 3명 이상의 찬성으로 가결·부결·권고·기각·각하 등 다양한 결정을 선택할 수 있다는 의미로, ‘소위원회의 어떤 결정도 만장일치로 이뤄져야 한다’는 주장에 가깝다. 이제껏 인권위는 이 해석에 근거해, 소위원회에서 만장일치로 어떤 쪽으로든 결론이 나지 않는 안건은 모두 전원위원회에 회부해왔다.

한수웅 위원은 최근 인권위에 제출한 의견서에서 “6인이 제출한 새로운 해석을 반대하는 논리의 대부분은 법률해석 자체에 대한 반대가 아니라 법률해석의 결과에 대한 반대(기각결정이 용이해진다는 것에 따른 우려)이다. 그러나 법률해석은 일반적 법해석 원칙에 따라야 하는 것이지 해석의 결과에 의하여 지배받고 좌우되어서는 안 된다”고 주장했다.

반면 출범 초기부터 인권위에 몸담았던 남규선 상임위원은 “왜 인권위를 ‘독임제’가 아닌 ‘합의제’로 만들었는지에 그 답이 있다”면서 “합의제 기구의 정신을 살리기 위해 결정 하나하나를 더 신중하게 해야 하고, 전원위의 위임을 받는 소위원회가 (전원 찬성으로 의결해야 한다는 조항을) 출범 초부터 인권위법과 운영규칙에 담아왔다. 이 조항은 너무 명백해 다른 해석이 있을 수 없다”고 말했다.

현재 인권위원 11명 중 8명이 법률가로, 발의에 참여한 위원 중에서는 김종민·이한별 위원만 비법률가다. 김종민 위원(대통령 지명, 봉은사 주지 원명 스님)은 한겨레에 “(8월1일 침해1소위의 수요집회 진정 건은) 전원 찬성 인용이 안돼서 기각을 한 것으로 안다. 초임이고 법률가가 아니라 잘 모른다. 그래도 법조계에 계셨던 김용원 소위원장이 그렇게 판단하길래 동조한 것”이라고 말했다. 김 위원은 “법률 해석에 따라 다양한 판단이 있을 것”이라면서 “표결을 한다면 김용원·이충상 위원과 같은 입장”이라고 했다.

이한별 위원(대통령 지명, 북한인권증진센터 대표)은 한겨레와 한 통화에서 “지금 의견을 절충해가는 과정에 있다”면서 “(18일 열리는) 전원위에서 의결될 가능성은 없다고 본다. 상황을 두고 볼 것이고 소신껏 의견을 표명하겠다”고 말했다.

한편, 익명으로 인권위 인트라넷(사내망)에 여러 위원의 의견 분석과 자기 생각을 30쪽에 이르는 장문의 글로 올린 한 직원은 “진정사건 처리 시 기각과 각하도 인용과 함께 신중하게 처리해온 것은 위원회의 목적과 기능 때문만이 아니라 토론과 자문 등을 통해 숙의 과정을 거칠 것을 요청한 입법자의 의사가 위원회 관계 법령에 스며 있고, 이를 존중하여 지켜온 관행에 의한 것”이라며 “그동안의 관행이 위법한 것이 아니라면 이를 변경할 이유가 없다. 왜 꼭 위법하지도 않은 관행을 무리하여 바꿔야만 할까”라고 적기도 했다.

고경태 기자 k21@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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