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일 아침 8시께 서울 광진구 자양동 건대입구역 5번 출구 쪽에서 만난 최성자(76)씨는 영하 11도까지 떨어진 한파 속에서도 생계를 위해 가판을 지켰다. 정봉비 기자
“내복을 단단히 입고, 난로가 있어도 들이치는 찬바람은 어쩔 수 없네요. 아침 7시에 나왔는데도 지금까지 하나도 못 팔았어요. 언제 팔릴지 모르니까 자리를 뜰 수도 없고…”
‘북극 한파’로 수은주가 영하 11도까지 떨어진 18일 아침, 서울 광진구 자양동 건대입구역 5번 출구 앞에서 노점 가판대를 운영하는 최성자(76)씨는 양말과 방한용품이 놓여 뻥 뚫린 진열대 쪽에서 불어 드는 찬바람을 그대로 맞으며 손님을 기다리고 있었다. 30년 넘게 이곳에서 장사를 하며 자식들을 장가보냈다는 최씨는 추운 날씨보다 안 좋은 경기가 더 무섭다고 했다. “불경기라 그런지 이렇게 추운데도 방한용품이 안 팔리네요. 감기 들어도 어쩔 수 없어요. 이대로라면 점심도 못 사 먹으니 추워도 버텨야죠.”
전국 대부분 지역에 한파 특보가 발효될 정도로 올 겨울 들어 가장 추운 날씨 속에서도 직장인과 노점 상인들은 생업을 위한 아침 일찍 출근 여정에 나서야 했다. 내복에 롱패딩과 털모자까지 겹쳐 썼지만, 몰아치는 찬바람은 막기 어려웠다.
18일 아침 8시께 서울 광진구 자양동 건대입구역 5번출구로 패딩 등으로 꽁꽁 싸맨 직장인들이 출근을 위해 지하철로 향하고 있다. 정봉비 기자
출근길에 만난 시민들은 추위에 대비해 가지각색 대비책을 준비해 길을 나섰다고 했다. 건대입구역에서 만난 직장인 하주연(31)씨는 “어제 추위에 호되게 당해 오늘은 단단히 준비했다”며 “내복은 기본이고, 보온 팩 기능을 하는 물주머니까지 챙겼다”고 했다. 서울지하철 3호선 홍제역 버스정류장에서 만난 직장인 최연정(29)씨는 “일어났는데 집안이 추워 밖에는 엄청 추울 거다 생각했다. 롱패딩·내복·핫팩·목도리까지 철저하게 준비했다”며 “이번 주 내내 최대한 따듯하게 입고 나와야 할 것 같다”고 했다.
‘얼죽아’(얼어 죽어도 아이스 아메리카노) 족도 이날 만큼은 ‘신념’을 접었다. 건대역에 있는 커피전문점 직원은 “아침 7시부터 오전 10시 사이 매출이 한파 오고 나서부터 거의 두배 가까이 늘었다. 아이스 메뉴는 거의 안 나가고, 따뜻한 아메리카노가 70% 이상 된다”고 했다. 다른 커피전문점 직원도 “평소보다 따뜻한 음료가 많이 팔린다. 70%는 따듯한 아메리카노를 사간다”고 했다.
야외 노동자에게 살을 에는 추위는 더 가혹하다. 홍제역 인근에서 붕어빵 노점 운영하는 80대 ㄱ씨는 감기 기운이 있지만 5겹의 옷을 껴입고 집을 나섰다. ㄱ씨는 “붕어빵 반죽을 배달받으려면 아침 7시부터 나와 있어야 한다. 중무장했는데도 너무 춥다”고 했다. 국회 인근 한 주유소에서 일하는 이아무개(43)씨는 “여의도는 바람이 더 세서 체감온도가 더 떨어진다. 어떨 땐 러시아에 있는 것 아닌가란 생각도 든다. 하루 9시간 동안 일하는데 추위 때문에 애로사항이 많다”고 했다.
18일 아침 8시10분께 서울 서대문구 홍제동에서 80대 ㄱ씨가 붕어빵 노점을 운영하고 있다. ㄱ씨는 옷을 5겹 입고 나왔는데도 너무 춥다고 했다. 김영원 기자
고병찬 기자
kick@hani.co.kr 정봉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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