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7년 2월 서울 송파구 석촌동에 있는 사적 제101호 삼전도비 앞면(왼쪽)에 ‘철’이라는 글자가, 뒷면에 ‘거’라는 글자가 붉은색 스프레이로 쓰여 있다. 강창광 선임기자 chang@hani.co.kr
서울 경복궁 담장을 스프레이로 낙서해 훼손한 사건이 발생한 가운데, “‘경복궁 내 낙서’도 심각하다”며 문화유산을 수시로 훼손하는 행위에 관심을 갖고 시민 인식을 개선해야 한다는 주장이 나왔다.
서경덕 성신여대 교수는 22일 자신의 사회관계망서비스(SNS) 계정에 “경복궁 담벼락 ‘낙서 테러’ 때문에 온 나라가 시끄러운 상황이다”며 전날 경복궁을 방문해 촬영한 사진을 올렸다. 서 교수가 올린 사진에는 경복궁 내부 담장에 적힌 낙서들이 있었다. 스프레이로 낙서한 것보다는 상대적으로 훼손 정도가 가벼운 편이지만 볼펜 수정액으로 이름을 쓰거나, 돌에 이름을 새긴 것이 눈에 띈다.
21일 촬영된 경복궁 내부 낙서. 서경덕 성신여대 교수 페이스북 갈무리
그는 “경복궁 및 다양한 궁 내에는 이미 낙서로 도배된 지가 오래됐기 때문이다”며 “대한민국을 대표하는 문화유산에 이런 일들이 벌어져 왔다는 것이 참으로 안타까울 따름이다”고 했다.
서 교수는 “경복궁 안팎으로 CCTV(폐회로텔레비전) 설치 대수를 늘리는 것이 현실적으로 가장 효율적인 대안이 될 수는 있지만, 장기적으로 봤을 땐 어렸을때부터의 교육이 강화돼야 한다고 생각한다”며 시민 인식 개선이 필요하다고 짚었다.
그는 “우리 문화재에 대한 올바른 인식과 자부심 및 긍지를 가질 수 있도록 교육 환경을 조성한다면, 이러한 낙서 테러는 현저히 줄어들지 않을까 하는 판단한다”며 “무엇보다 시민의식을 개선해야 할 시점이다. 우리 스스로가 우리의 문화재 보존을 위해 더욱더 노력해야만 할 것이다”고 강조했다.
21일 촬영된 경복궁 내부 낙서. 서경덕 성신여대 교수 페이스북 갈무리
“장난” “악령 쫓는 문구”…과거 사례는
서 교수 말대로 낙서로 인한 문화유산 훼손은 그동안 꾸준히 발생해왔다. 경복궁 훼손은 경찰 수사 결과 돈이 얽혀있는 것으로 조사됐는데, 과거에는 “장난삼아 했다”는 주장부터 “악령을 쫓는 문구라 썼다” 등 황당한 동기로 인한 사건이 많았다.
2007년 30대 남성이 2월 서울 송파구 삼전도비 앞면과 뒷면에 붉은색 스프레이 페인트로 ‘철거’, ‘병자’, ‘370’(병자호란이 일어난 1637년과 2007년 사이의 햇수)이라는 글자를 쓴 사건이 대표적이다. 삼전도비는 병자호란 당시 조선이 청나라에 무릎을 꿇은 것을 상징하는 문화재로 당시 복원에 3개월이 걸렸다. 당시 그는 경찰 조사에서 ‘치욕스러운 역사를 청산하기 위해 범행했다’고 진술한 것으로 알려졌다. 그는 1심에서 징역 1년 6개월에 집행유예 2년을 선고받았다.
2011년에는 세계적인 암각화 유물이자 국보인 울주 천전리 각석에 이름을 새긴 혐의로 고등학생이 붙잡혔다. 해당 고등학생은 “친구를 놀리려 장난삼아 했다”고 진술했다가 이후 진술을 번복하고 혐의를 부인했다. 결국 증거를 찾지 못해 불기소 처분됐다.
2014년에는 경남 합천 해인사 전각 벽 22곳에 검은 사인펜으로 쓴 한자 21자가 발견됐다. 낙서를 한 40대 여성은 경찰에 ‘악령을 쫓는 데 효험이 있는 좋은 문구다’라고 진술한 것으로 알려졌다. 울산 울주군 언양읍성 성벽도 각각 2015년과 2017년 스프레이 등으로 훼손됐고, 2019년에 부산 금정산성의 망루와 비석 등 곳곳에 검은 매직펜으로 이름 등을 쓴 낙서가 발견되기도 했다. 당시 낙서를 한 70대는 경찰에 붙잡혔는데 ‘등산 중 쓰러진 경험이 있어 또 쓰러졌을 경우 가족이 쉽게 찾을 수 있도록 했다’고 진술한 것으로 알려졌다.
문화재보호법은 “누구든지 지정문화재에 글씨 또는 그림 등을 쓰거나 그리거나 새기는 행위 등을 하여서는 아니 된다”고 규정하며 법 위반을 엄격히 처벌한다. 어길 경우 3년 이상 유기징역에 처한다. 훼손된 문화재의 원상 복구 관련 비용도 청구될 수 있다.
2014년 11월 경남 합천 해인사가 대적광전 등 17개 주요 전각 벽의 낙서를 찍은 사진을 공개했다. 연합뉴스
이승준 기자
gamja@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