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순경 사건’의 당사자 김아무개(57)씨가 28일 경기 수원시의 한 커피숍에서 한겨레와 인터뷰 중이다. 정혜민 기자 jhm@hani.co.kr
“이틀 전에도 끌려가는 꿈을 꿨어요. 김홍일이 텔레비전에 나오면 30년 지난 지금도 악몽을 꿔요. 잊을 만하면 한 번씩 나오니까 좀 힘듭니다.”
31년 전 여자친구를 살해했다는 누명을 쓰고 기소됐던, 영화 ‘마더’의 모티브가 되기도 한 ‘김순경 사건’의 당사자 김아무개(57)씨가 28일 한겨레를 만나 힘겹게 입을 열었다. 사건 발생 후 약 30년
만의 언론 인터뷰다. ‘대중의 관심에서 잊히고 싶었다’던 그는 27일 김홍일 방송통신위원장 후보자의 인사청문회장에 달려나갔고, 김 후보자의 공개 사과를 받으려 했지만 여당 위원들의 반대로 증인석에 앉지 못했다.
김씨는 이날 경기 수원시의 한 커피숍에서 한겨레와 만나 30년 만에 대중 앞에 나선 까닭에 관해 이야기했다. 경찰이었던 김씨는 1992년 11월 서울 관악구의 여관에서 여자친구를 살해했다는 혐의로 체포됐다. 당시 최초 신고자인 김씨를 범인으로 지목한 경찰은 7~8일간 잠을 재우지 않는 방법으로 그의 거짓 자백을 얻어냈다.
이 사건을 송치받아 기소와 재판을 맡은 검사는 다름 아닌 김 후보자였다. 김 후보자는 ‘가혹 행위를 당해 허위 자백했다’며 추가 수사를 요청하는 김씨의 요구를 묵살하고 경찰이 적용하지 않은 살인죄까지 적용해 김씨를 기소했다. 경찰은 폭행치사 혐의로 이 사건을 검찰로 보냈다. 김씨는 “왜 내 말을 하나도 안 믿어주냐고, (증거를) 추적해달라고 강하게 김 후보자에게 다 이야기했다”고 말했다.
상고심 중이던 1993년 11월 진범이 붙잡혔지만, 김씨는 곧바로 풀려날 수 없었다고 한다. 김씨는 “진범이 잡히고 2주가 지나도록 풀어주지 않으니 그때가 더 무서웠다. (검찰이 부실수사를 인정하지 않고) 나를 계속 엮으려 한다는 두려움이 들었다”라고 회상했다.
당시 검찰은 진범 검거 사실을 안내해주지 않았고, 경찰 관계자로부터 제보를 받은 가족이 서울고검에서 밤새 농성하고 난 다음 날 새벽에야 석방이 결정됐다고 김씨는 전했다.
김홍일 방송통신위원장 후보자가 27일 오전 서울 국회에서 열린 인사청문회에서 질의에 답하고 있다. 연합뉴스
김씨는 진범이 잡히고 난 뒤 30년이 지난 지금까지 김 후보자의 사과를 받지 못했다고 했다. 김씨는 “진범 검거 뒤 김홍일 검사가 저를 한번 불렀다. 최소한 차 한 잔 주면서 사과할 줄 알았는데, ‘당신 동료들이 잘못해서 사건이 이렇게 됐다’ 그 한마디가 끝이었다”라고 회상했다.
김씨는 “범인이 잡힌 다음에는 저한테 진정성 있는 사과를 해야 하는데, 사과하지 않았기 때문에 나쁜 사람인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최소한 오늘(28일) 김 후보자가 연락할 줄 알았는데, 역시나 연락이 없었다”고 덧붙였다.
김 후보자는 27일 청문회에서 “늘 가슴 아프고 나 때문에 어려움을 당했던 일에 대해 사죄하고 싶다”며 “전화번호를 알려주면 연락해서 (사과) 기회를 만들겠다”고 말했다. 김씨는 “(김 후보자 쪽에서) 청문회장 복도 끝에서 만나자고 했지만, 30년 만의 사과를 그렇게 받고 싶지 않았고 모든 국민이 알 수 있게 공개 사과를 받고 싶다”고 전했다.
진범이 잡혀 석방된 뒤에도 김씨의 삶은 녹록지 않았다. 김씨는 행정 소송을 통해서야 복직할 수 있었고, 3년 남짓 근무한 뒤에 스스로 제복을 벗었다. 김씨는 “명예를 지키려 복직했는데, 같은 조직에 (강압 수사를) 당했으니 조직이 싫어지더라”라고 했다. 얼마 지나지 않아 김씨는 백혈병 진단을 받아 생사를 오가야 했다.
그즈음 김 후보자는 이명박 대통령 후보의 다스 실소유주 의혹 수사를 무혐의 처분한 뒤 대검찰청 중앙수사부장으로 발탁됐다. 김씨는 “김 후보자가 중수부장으로 승승장구하는 것을 보면서 정말 괴로웠다. 참고 참다가 온 국민에게 그 사람이 어떤 사람인지 이야기 하고 싶어 청문회장에 나갔다”라고 했다.
김씨는 “(김홍일은) 검사로서 약자에게만 기소권을 휘둘렀고 강자한테는 넙죽 엎드렸다”며 “국민이 그나마 표현할 수 있는 창구가 언론인데, 김 후보자가 방송통신위원장으로 임명되면 (언론을 탄압해) 저와 같은 피해자가 또다시 생겨날 것”이라며 답답해했다. 한겨레는 김씨의 사건에 대한 김 위원장의 입장을 묻기 위해 여러 차례 전화했으나 답을 듣지 못했다.
정혜민 기자
jhm@hani.co.kr 박강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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