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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 사회일반

[현장] 75년 ‘동아’ 시민광고주의 격정토로 “배신이야”

등록 2006-04-02 16:08수정 2006-04-02 16:22

<동아일보>에서 강제 해직된 언론인들인 동아자유언론수호투쟁위원회 회원들과 시민들이 이 신문 창간일인 지난 1일 저녁 서울 세종로 동아일보사 앞에서 ‘자유언론 촛불문화제’를 열어 동아일보의 반성과 사죄를 촉구하고 있다. 김정효 기자 <A href="mailto:hyopd@hani.co.kr">hyopd@hani.co.kr</A>
<동아일보>에서 강제 해직된 언론인들인 동아자유언론수호투쟁위원회 회원들과 시민들이 이 신문 창간일인 지난 1일 저녁 서울 세종로 동아일보사 앞에서 ‘자유언론 촛불문화제’를 열어 동아일보의 반성과 사죄를 촉구하고 있다. 김정효 기자 hyopd@hani.co.kr
집값 500만원이던 시절 이틀에 한벌꼴로 30만원어치 ‘격려광고’한 박선용씨

4월1일 저녁 5시 광화문 동아일보 사옥 앞에서 ‘자유언론 촛불문화제’가 열렸다. 이 날은 <동아일보>의 86돌 창간기념일기도 했다.

아침부터 내린 봄비로 날씨는 차갑고 어수선했다. 집회를 열기에는 좋지 않은 상황이었다. 게다가 이날 ‘자유언론 촛불문화제’에 참가할 분들은 동아자유언론수호투쟁위원회(동아투위·위원장 문영희) 소속의 60~70대 ‘노인’들이다. 기자는 참가자가 많지 않겠다는 생각을 했다. 하지만 그것은 착각이었다.

이날 문화제에는 100여명이 넘는 사람이 모여, 행사가 끝날 때까지 대부분 자리를 지켰다. 한달 넘게 한국철도공사에 맞서 파업을 벌이고 있는 케이티엑스 비정규직 여승무원들도 이날 행사에 함께 참여했다.

문화제를 취재하면서 74년 말에서 75년 봄까지 계속된 <동아일보> 광고탄압 때의 시민 광고주를 만나, 그들의 목소리를 듣고 싶었다. 어수선한 분위기의 집회에서, 게다가 비까지 내리고 있는 상황이라 시민 광고주를 찾기 힘들었다. 나이가 든 분들에게 “혹 동아일보 광고주가 아니냐”고 물어봤지만 “아니다”라는 대답만 돌아왔다.

그러다 박선용(66)씨라는 분을 만났다. 박씨의 손에는 <동아일보> 광고탄압 때 <동아일보>로부터 받은 감사패와 메달이 들려 있었다. 그는 동아투위가 <한겨레> 지면에 실은 촛불문화제 광고를 보고 이 곳을 찾았는데, 전날 아내의 삼우제를 치른 뒤여서 쉽지 않은 발걸음이었다고 말했다.


이틀에 한번씩 동아일보에 격려광고 냈던 박선용씨
“제일 나쁜 걸 제일 좋은 것으로 미화하는 게 언론이냐”
<동아일보> 광고탄압 때 이틀 간격으로 동아일보에 격려광고를 낸 박선용(66)씨가 당시 <동아일보>로부터 받은 감사패와 메달을 들고 있다.
<동아일보> 광고탄압 때 이틀 간격으로 동아일보에 격려광고를 낸 박선용(66)씨가 당시 <동아일보>로부터 받은 감사패와 메달을 들고 있다.

무엇이 박씨를 이 곳으로 이끌었을까?

“동아일보에 대한 배신감 때문”이라고 그는 목소리를 높였다. 그는 그 때 이틀마다 한번씩 2천원, 3천원, 1만원씩, 한달 넘게 모두 30만원치의 격려광고를 냈다. “당시 500만원이면 집을 한 채 살 수 있는 돈으로, 적지 않은 돈을 냈지만 동아는 오히려 다른 길을 갔다”며 분노했다.

박씨는 “전철에서 <동아일보>를 보는 사람이 있으면 화가 나 왜 그 신문을 보고 있느냐고 말한다”며 “신문이 아니고 언론도 아니다. 제일 나쁜 것을 제일 좋은 것으로 미화하는 것이 언론이냐”며 거침없는 비판을 했다.

박씨는 6·10항쟁 때는 거의 매일같이 최루탄 연기를 맞으며 거리에 섰고 그 뒤 창간한 <한겨레>의 창간주주가 됐다. <한겨레>에도 자주 시민광고를 냈다며 샛노랗게 바랜 당시 신문광고를 보여주기도 했다.

촛불문화제에서 만난 박성극(66)씨 역시 <동아일보>에 대한 서운함과 안타까운 감정을 쏟아냈다. 당시 건설현장에서 일했던 그는 “그때만 해도 동아일보를 대단히 훌륭한 민족지로 느꼈고, 독재정권한테 탄압을 받고 있다고 여겨 시민광고를 냈다”며 “하지만 그 뒤 동아는 독재정권에 항거하는 기자를 무더기로 쫓아냈다”고 말했다. 그 역시 <한겨레>의 창간주주였다.

두 사람 모두 독재권력에 맞선 동아일보를 좋아했지만 동아가 다른 길을 걷게 되자 그 실망감으로 끝내 동아를 버렸다. 그 뒤 그들은 <한겨레>를 찾았다. 그러나 두 사람 모두 동아가 그 옛날의 모습으로 거듭나길 바라고 있었다.

<한겨레> 편집기획팀 정혁준 기자 june@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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