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지법, 횡령혐의 건설업체 대표 영장 기각
전 서울지법원장이 직접 법정서 변호 이례적
검찰 “피의자, 하청업체 사장 진술위협” 반발
전 서울지법원장이 직접 법정서 변호 이례적
검찰 “피의자, 하청업체 사장 진술위협” 반발
변호인 “절차상 정의도 중요”
회삿돈 50억여원을 빼돌린 혐의를 받고 있는 중견 건설업체 대표의 구속영장이 법원에서 기각됐다. 이 피의자는 지난해 말까지 서울중앙지방법원장을 지낸 인사를 변호사로 선임했다.
이상주 서울중앙지법 영장전담판사는 10일 ㅇ종합건설 대표 최아무개(56)씨의 구속영장을 기각했다. 이 판사는 “검찰에서 4개월 동안 수사받으면서 협조를 잘했고, 사는 곳도 일정해서 도주 우려가 없다”며 “이미 검찰 수사 때 압수수색을 당해서 증거 인멸의 우려도 없다”고 기각 사유를 밝혔다.
하지만 검찰은 법원의 결정에 반발하고 있다. 검찰 조사 결과 최씨는 하청업체와 16억원짜리 공사 계약을 맺고 돈을 모두 지급한 뒤 실제 공사는 하지 않고 부가세만 빼고 돌려받는 수법으로 비자금을 만든 것으로 드러났다. 최씨는 아예 공사대금 입금 통장과 도장을 하청업체로부터 넘겨받아 직접 관리했다. 익명을 요구한 검찰 관계자는 “하청업체 사장이 이런 사실을 모두 진술했으나 나중에 검찰에 와서 ‘최씨 쪽에서 그렇게 진술하면 앞으로 같이 일을 할 수가 없다고 협박한다’며 진술을 없던 것으로 해달라고 애걸했다”며 “이는 명백한 증거 인멸 행위”라고 말했다.
이 관계자는 또 “(변호사가) 얼마 전까지 모시던 분인데, (그 판사가) 얼마나 괴로웠겠나”라며 전관예우 의혹을 강하게 제기했다. 일반적으로 법원장 출신 변호인은 직접 법정에 들어오지 않는데, 최씨의 변호인은 이례적으로 직접 법정에 나와 심문에 참여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에 대해 최씨의 변호인은 “고향이 같은 최씨와 이전부터 알고 지내 사건을 수임하게 됐다”며 “실체적 정의 말고 절차상의 정의가 중요하며, 이제는 구속을 수사편의의 방편으로 삼으면 안 된다”고 말했다.
서울중앙지법에서 영장전담으로 있던 한 부장판사는 “영장 실질심사 단계보다는 본안소송 단계에서 고위 법관 출신 변호인 등에 대한 회피 문제가 거론된 적은 있다”며 “하지만 현실적으로 좁은 법조에서 이런 식으로 회피하는 것은 너무 광범해 아무도 선임 못한다는 반대론도 만만찮다”고 말했다. 최씨는 검찰 수사가 시작되자 전직 검찰총장과 전직 서울지검장 등을 변호인으로 선임하기도 했다.
이순혁 고나무 기자 hyuk@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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