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자매 등 8건 범행 여성 5명 살해” 자백
변장에 범행기사 스크랩도…“부자만 보면 죽이고 싶어”
변장에 범행기사 스크랩도…“부자만 보면 죽이고 싶어”
`부자가 싫다'는 한 30대 강도사건 용의자가 서울 서남부 지역에서 여성 5명을 연쇄살해했다고 자백해 `희대의 연쇄살인극' 유영철 사건때처럼 우리사회에 `증오범죄'에 대한 불안감을 높이고 있다.
서울 영등포경찰서는 지난 22일 영등포구 신길동에서 반지하집을 털다 붙잡힌 정모(37)씨로부터 지난달 27일 관악구 봉천동에서 발생한 `세자매 피습사건' 등 8건의 살인행각 등을 벌였다는 진술 등을 확보, 정씨를 강도살인 혐의로 24일 구속하고 진술내용을 집중적으로 확인 중이다.
경찰에 따르면 정씨는 2004년 2월부터 지금까지 관악, 금천, 영등포구 등 서울 서남부 지역에서 8건의 강도살인.상해 행각을 벌여 여성 5명을 살해하고 8명에게 중상을 입힌 혐의를 받고 있다.
경찰은 정씨가 이날까지 자백한 범행 8건 중 작년 4월 이후 저지른 5건에 대해 별도 증거를 확보해 범행사실을 확인했으며 정씨가 범행동기 중 하나로 `부자가 싫었기 때문'이라고 진술함에 따라 여죄를 캐고 있다.
경찰은 정씨를 상대로 밤샘조사를 통해 봉천동에서 발생한 3건의 사건을 집중 조사하는 한편 그가 자백한 사건 외에 다른 범행사실이 있는지를 추궁했다.
◇ 평범한 외모에 `막가파식' 범행 = 정씨가 자백한 범행 중에는 3월27일 새벽 발생한 봉천동 3자매 피습사건도 포함돼 있다.
정씨는 당시 관악구 봉천8동 김모(55)씨의 단독주택에 침입, 잠을 자던 김씨의 세 딸을 둔기로 마구 때려 이 중 한 명을 숨지게 하고 2명을 중태에 빠뜨린 뒤 이불 등에 불을 지르고 달아났다. 중태에 빠졌던 2명 중 1명도 결국 숨졌다.
경찰 조사결과 정씨는 가정집을 털 때는 서민층 거주 지역을 골랐고 범행 도중 들키거나 금품이 적을 경우 화를 내면서 피해자들의 머리를 둔기로 무차별 가격했으며 인적이 드문 공원 주변이나 주택가 골목에서 강도짓을 할 때는 피해자를 고른 뒤 쫓아가 흉기로 찌른 것으로 드러났다.
인천에서 70대 노모와 누나 등과 함께 사는 정씨는 경찰 추적을 피하기 위해 집에서 멀리 떨어진 서울을 범행 무대로 택했으며 모자와 마스크, 안경 등을 이용해 변장한 뒤 범행하는 치밀함도 보였다.
또 자신의 범행을 다룬 신문기사를 스크랩해 집에 보관하며 스스로의 범행 내용을 기록하면서 '완전범죄'를 노리기도 했다고 경찰은 전했다.
경찰 관계자는 "정씨는 연쇄살인범답지 않게 의외로 왜소한 체격에 순해 보이는 외모를 가졌다"며 "그러나 범행 당시의 세세한 동선까지도 정확히 기억할 정도로 완전범죄에 집착하고 있었다"고 말했다.
◇ 범행동기 = 정씨는 경찰에서 범행동기와 관련, "직장도 못 구하고 결혼도 못해 화가 나 부자만 보면 죽이고 싶어진다"고 진술한 것으로 알려졌다.
경찰은 정씨가 별다른 이유없이 일면식도 없는 여성 5명을 무차별적으로 살해했다는 점에서 희대의 살인마 유영철 경우처럼 `증오형 범죄'를 일삼았을 가능성을 배제하지 않고 있다.
특히 정씨가 1995년 처음 겪은 수감생활 중 동료 재소자들로부터 괴롭힘을 당하면서 대인기피증과 피해의식이 심각해진 것도 그의 연쇄범행에 영향을 미친 것으로 판단하고 있다.
그러나 경찰은 전과 5범인 정씨가 주로 금품을 노리고 범행을 일삼았다는 점으로 미뤄 일단 그가 사회에 적응하지 못한 채 경제적 궁핍상황을 비관하며 범행을 일삼은 것으로 보고 있다.
◇ 검거경위와 수사방향 = 정씨는 22일 새벽 4시45분께 영등포구 신길동 김모(47)씨의 반지하집을 털다 잠에서 깬 집주인 김씨 등과 격투 끝에 붙잡혔다.
정씨는 신고를 받고 출동한 경찰관에 의해 연행되던 중 도주하기도 했으나 인근 주민의 신고를 받고 출동한 경찰에 2시간여만에 다시 붙잡혔다.
경찰은 정씨의 자백내용을 확인하기 위해 지문 감식 등을 국립과학수사연구소에 의뢰하는 한편 서울과 인근 수도권지역에서 발생한 다른 미제사건들과 관련이 없는지를 집중 조사 중이다.
경찰은 특히 최근 경기도와 서울 양천 일대에서 일어난 살인사건에 정씨가 연루 돼 있을 가능성에 주목, 조사를 벌이고 있으며 정씨가 자백한 범행에 대해 피해자들을 상대로 확인조사를 펴고 있다.
경찰은 정씨의 지인들을 상대로 그의 성장과정이나 교우관계 등을 파악해 정확한 범행동기도 규명할 계획이다.
김병규 기자 bkkim@yna.co.kr (서울=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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