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직원감금’ 이후 갈등 깊어져…법조항도 모호
스스로 ‘법원 가족’이라 부르는 판사와 일반직 법원공무원 사이의 갈등이 예사롭지 않다. 서울의 한 지방법원에서 판사가 잘못을 따지려 직원을 방으로 불러 6시간 이상 붙잡아둔 사건을 계기로, 이들의 해묵은 갈등이 법원 내부를 들끓게 하고 있다. 한 판사는 미국의 ‘흑백 갈등’보다 더 심하다고 표현할 정도다.
문제된 사건의 장본인인 ㅈ판사는 여전히 “재판의 중심은 어디까지나 판사”라며 “재판 사무의 특성상 판사가 직원들에게 지시를 내리고 감독하는 게 당연하다”고 주장했다. 이에 맞서 김도영 전국공무원노조 법원본부장은 “권위만을 앞세우는 판사들이 수두룩하다”며 “판사와 직원은 지휘·감독 관계가 아니라 협력 관계일 뿐”이라고 맞받았다. 사람들의 ‘다툼’을 해결하는 곳인 법원에서 정작 내부의 다툼은 해결하지 못하고 있는 셈이다.
이번 사건을 두고 의정부지법에 근무하는 ㅅ판사(37)는 “직원들은 통상 1년 가량 판사실에 있다 다른 곳으로 옮기기 때문에 굳이 문제를 키우는 걸 꺼린다”고 말했다. 평소 광범위하게 잠복해있던 문제라는 것이다. 법원행정처 기획조정심의실은 “(판사가 직원에게 지시를 하는 것이) 너무나 당연하다고 생각해왔다”며 “관련 법률이나 규칙이 있는지 확인해 볼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실제 판사와 일반직 법원공무원 사이의 지휘·감독 관계를 명확히 규정한 법률 조항이 없다는 점이 갈등의 원인 가운데 하나다. 현행 국가공무원법 57조는 ‘공무원은 직무를 수행함에 있어 소속 상관의 직무상의 명령에 복종하여야 한다’고 규정하고 있고, 형사소송법에는 ‘공판기일의 소송지휘는 재판장이 한다’(279조)는 조항이 있다. 그러나 판사가 일반직 공무원의 상관인지, 소송지휘의 범위에 법원 내부의 사무처리가 포함되는지는 여전히 분명치 않다. 조서 작성이나 송달 업무 등 재판 사무에 차질이 생겼을 때 조정할 관련 규정이 제대로 갖춰지지 않은 상황에서는 이번과 같은 사건이 언제든 또다시 불거질 수 있는 것이다.
한상희 건국대 교수(법학)는 “직원이 판사를 ‘모시고’ 판사는 직원의 도움을 받아 업무를 처리하는 한 문제가 사라지지 않는다”며 “법관이 행정 요직을 도맡고 있는 지금의 구조를 바꿔 인사·예산 분야 등은 일반직 공무원이 맡는 게 바람직하다”고 말했다.
전진식 기자 seek16@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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