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일 오후 경기 고양시 장묘문화센터 ‘추모의 집’에서 한 가족이 고인에게 보내는 글을 쓰고 있다. 서울시시설관리공단 제공
온라인 ‘하늘나라 우체국’
먼저 떠난 부모·자식 추모의 글 차곡차곡
먼저 떠난 부모·자식 추모의 글 차곡차곡
“너의 변한 모습을 보고픈데, 너는 늘 그대로구나.”(푼이 엄마)
가족의 가치를 ‘재발견’할 수 있는 인터넷 공간이 잔잔한 감동을 주고 있다.
세상을 떠난 부모·자식에 대한 그리움과 추억을 누구나 쉽게 털어놓을 수 있는 온라인 게시판 ‘하늘나라 우체국’이 그곳이다. 서울시시설관리공단 장묘문화센터가 2000년 2월 문을 연 ‘사이버 추모의 집’(www.memorial-zone.or.kr)에 마련된 ‘하늘나라 우체국’엔 그동안 올라온 5만4천여개의 ‘그리움’들이 차곡차곡 쌓여 있다. 유가족들이 경기도 파주·고양시에 있는 ‘추모의 집’을 찾은 뒤 남긴 글도 3만여건에 이른다.
눈길을 먼저 잡는 글들은 역시 떠난 자식을 그리워하는 부모들의 글이다. “너의 다른 모습을 찍고 싶어서 네 사진을 이것저것 꺼내본다. 즐겁구나, 네 사진을 새로 찍으려니. 그러나 (눈물이 멈추질 않아) 차마 찍지를 못하겠구나.”(푼이 엄마)
부모를 여읜 자식들의 글엔 추억과 후회 섞인 그리움이 가득 배어 있다. “아버지가 사업에 실패해 힘겹던 시절, 엄마는 학교 텃밭에다 고구마를 심으셨죠. (엄마는) 한 자루 가득 머리에 이고 먼 길을 걸어오셨잖아요. 그때가 초등학교 3~4학년쯤이었던 것 같아요. 작은언니와 기차역에서 엄마를 기다리던 생각이 불현듯 스쳐갑니다.”(김순자) “살아서 제게 못 베푸신 사랑, 가신 후에도 그렇게 인색하실 건가요? 도와주세요, 제가 어떻게 사는 게 올바로 잘 사는 건지 꼭 알려주세요.”(큰딸)
한 초등학생 손자가 돌아가신 할머니에게 응석부리듯 쓴 글엔 웃음과 울음이 한데 녹아 있다. “안녕하세요, 나 해용이야. 나는 외할머니를 얼마나 보고 싶어하는지 알아. 할머니 얼굴과 똑같은 사람이 있어요. (시내버스) 28번 기사님이야. 그러니까 할머니 보고 싶다 ㅠ.ㅠ.”(정해용)
인터넷 공간에 등장하는 추모글은 오직 슬픔과 괴로움만을 토해내지 않고, 삶을 기획하며 여전히 ‘가족의 끈’이 이어져 있음을 확인하는 의미를 담고 있다. 이른바 ‘현대판 시묘살이’의 기능을 하고 있는 셈이다. 최혜경 이화여대 교수(가족학)는 “가족은 그냥 주어지는 게 아니라 노력해서 얻어야 할 하나의 ‘가치’”라며 “새로운 매체를 통해 적극적으로 가족의 의미를 곱씹는다는 점에서 매우 고무적인 현상으로 본다”고 말했다. 전진식 기자 seek16@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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