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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 사회일반

[필진] 대추리 방랑기 “얼결에 폭도가 되어!”

등록 2006-05-15 16:49

하늘은 눈부시게 파랗고 아름다운데 씨를 뿌리는 농부옆의 철조망안에는 전경들이 지키고 있다.(평택 미군부대 K7)
하늘은 눈부시게 파랗고 아름다운데 씨를 뿌리는 농부옆의 철조망안에는 전경들이 지키고 있다.(평택 미군부대 K7)

14일 인권영화제 폐막식을 대추리에서 한다는 소식을 듣고 처음에는 기분이 들었다. 언론 매체에서 보니 거의 전시를 상황이라는데 영화제 폐막식이라니? 일순 황당하기도 했지만 주체 측의 속내까지 추측해내기가 귀찮아서 우선 평택으로 발길을 돌렸다. 이미 유명세를 탄 ‘대추리’이니만큼 사진촬영을 해보고 싶은 생각이 들었던 것이다. 주말인데도 평택으로 가는 전철에는 사람이 그다지 많지 않았다.

평택역은 예상했던 것보다 살벌함이 감돌았다. 역광장의 중간에서는 ‘평택미군지기 환영’을 한다는 시위대가 사람들에게 둘러싸여 목소리를 높이고 있었고, 또 다른 곳에서는 대추리로 들어가려는 학생들이 몰려있었다. 그들은 의과대학생들로 만약의 사태를 대비해 의료지원을 위해 참석하려는 것이었다. 초행길인데다가 그들을 따라가면 혹시 대추리로 들어갈까 싶어서 동행하기로 했다. 그러나 버스는 대추리로 들어가는 초입인 다리에서부터 전경들이 두텁게 바리케이트를 치고 있었다.

‘내전을 방불케 하는 분위기 속에서도 용감하게 대추리로 향했으나...’

평택은 마치 ‘내전’에라도 휩싸인 것 같았다. 어찌어찌해서 간신히 검문을 피해 대추리로 향하는 길로 걸어가기 시작했다. 불과 30분을 채 걷기도 전에 세 번이나 검문을 당했으나 용케 통과하여 걸어가다가 차 한 대를 잡아탔다. 두 청년이 친척들을 만나기 위해 가다가 버스가 통행을 하지 않자 몇몇 걷고 있는 사람들을 태워주고 있었다. 그러나 채 이십분쯤 달렸을까 평택시내와 가까운 곳에서 시위를 하는 ‘평택미군지기 환영시위대’를 만났다.


그들은 우리들이 외부차량으로 보이자 무조건 돌과 물병, 달걀을 집어던졌다. 날씨가 더워 창문을 열어놓은 상태어서 차안은 금방 아수라장이 됐다. 수십 명이 차에 몰려들어 차문을 열고 끌어내려고 하는데도 폭력을 행사하는데도 옆에서 지키고 전경들은 이상하게 저지를 하지 않았다.

청년들과 우리가 “우리는 시위대가 아니고 다시 다니러 온겁니다.”며 소리를 질렀지만 ‘황영시위대’의 무차별한 공격에는 소용이 없었다. 그들은 왜 그런지 몰라도 몹시 흥분해 있었다. 운전을 하던 청년은 차문 밖으로 끌려 나가 ‘환영시위대’로부터 폭행을 당하자 겨우 전경들이 달려들어 제지를 했다. ‘여기서 죽나..’하는 생각이 들어서 겁을 먹고 덜덜 떨면서 사진을 찍어둬야 하지 않나하는 생각이 들었지만 카메라를 들면 혹시라도 더 흥분할까봐 그냥 덜덜 떨기만 했다.

자가용 주인들이 우리는 '반대시위대'가 아니고 지나가는 것 뿐이다. 사정을 하는데도 '평택기지 찬성 시위대'는 막무가내로 수십명이 몰려와 집단으로 운전하던 청년을 폭행하고 차에 댤걀을 던지고 부셨다.(실제로는 사진보다 더 처참하게 당했다)
자가용 주인들이 우리는 '반대시위대'가 아니고 지나가는 것 뿐이다. 사정을 하는데도 '평택기지 찬성 시위대'는 막무가내로 수십명이 몰려와 집단으로 운전하던 청년을 폭행하고 차에 댤걀을 던지고 부셨다.(실제로는 사진보다 더 처참하게 당했다)

나중에 이야기를 들어보니 그들은 평택상가의 상인들로 추정되는 인물들로 이미 오래전부터 외부차량에 돌멩이를 던지는 등 폭력적인 행동으로 여러번 경찰에 신고를 받았으나 경찰이 별다른 수사를 하지 않았다고 한다. 대부분의 평택시민들이 이 사실을 다 알고 있었다.(2006년 한국땅에서 우째 이런 일이....)
나중에 이야기를 들어보니 그들은 평택상가의 상인들로 추정되는 인물들로 이미 오래전부터 외부차량에 돌멩이를 던지는 등 폭력적인 행동으로 여러번 경찰에 신고를 받았으나 경찰이 별다른 수사를 하지 않았다고 한다. 대부분의 평택시민들이 이 사실을 다 알고 있었다.(2006년 한국땅에서 우째 이런 일이....)

간신히 도망쳐 나와 수백 미터 떨어진 주유소에 차를 세우고 경찰을 찾아가서 자초지종을 이야기했다. 경찰은 시위대 때문에 자신들도 너무 힘들다면서 누가 시위를 하는 것인지 확인해주겠다고 했다. 주유소 주인의 말에 의하면 이미 차가 몇 대 ‘환영시위대’의 돌팔매질에 차가 부서졌다는 것이다. 순간 나는 경악해서 할 말을 잃었다.

2006년 한국 땅에서 무작정 아무 차에나 달려들어 부수는 사람들이 있는데도 공권력이 발동이 되지 않다니...나는 카메라를 꺼내 우선 청년들의 차를 촬영을 하면서도 다리가 계속 후들거려서 꼼짝도 할 수 없었다. 평생 태어나서 시위라고는 한 번도 한 적이 없어서 이런 일을 당하기는 처음이었다. 20여분 지나도록 다리가 후들거려서 걸음이 옮겨지지가 않았다. 운전을 했던 청년은 ‘환영시위대’에 맞아서 얼굴이 붉게 부어올라 있었다.

‘얼결에 폭도(?)들과 동행하여 시위대 속으로’

길에서 만난 '평택기지 반대시위대'들. 전국에서 몰려온 이 시위대들은 차의 통행을 막자 K7로 3시간 가까이 걸어왔다고 한다.
길에서 만난 '평택기지 반대시위대'들. 전국에서 몰려온 이 시위대들은 차의 통행을 막자 K7로 3시간 가까이 걸어왔다고 한다.

‘환영시위대’의 린치를 당한 후 어딘지도 모르는 평택 땅에 홀로 있기가 무서워서 무작정 걸어다가 다행히 노동자협회 회원이라는 분들을 만났다. 그분들은 미국부대 K7에 시위대가 몰려있어서 그곳으로 향하고 있다고 했다. 처음에는 대오를 지어 걸어갔으나 뿔뿔이 흩어져서 떨어졌다고 했다.

나는 홀로 평택거리를 걷는 것이 너무 무서워서 그분들과 함께 ‘반대시위대’가 몰려있다는 K7로 가기로 했다. 우선 내 복장이 배낭과 카메라를 메고 있어서 ‘평택지기 찬성 시위대’로 오해를 받을 수 있다는 것을 알았기 때문이다. 몇몇 평택시민들이 간혹 나를 잡아서 ‘대추리’로 가냐고 하면서 다구쳐 물었기 때문에 혹시라도 봉변을 당할까 무서웠던 것이다. 태어나서 처음가본 평택은 공권력이 이상하데로 몰린 무법지대처럼 느껴졌다.

아름다운 평택들녁에 왠 깃발인가? 우리가 안전하다고 느끼는 2006년에도 세상은 불합리로 가득차 있다. 한국이라는 이 좁은 땅에서도 평화는 없다.
아름다운 평택들녁에 왠 깃발인가? 우리가 안전하다고 느끼는 2006년에도 세상은 불합리로 가득차 있다. 한국이라는 이 좁은 땅에서도 평화는 없다.

1시간가량 걸으니 시골길을 걸으니 큰 신작로가 나왔다. ‘반대시위대’들이 길을 걸어서 K7로 향하고 있었다. 우선 그들을 보니 안심이 되어서 따라서 갔다. K7 앞에서는 전국에서 몰려든 4-5천 명가량 되는 ‘반대시위대’가 몰려있었다. 이번에도 얼결에 그분들에 끼어 사진촬영을 조금하고 다시 4시에 해산을 하자 다시 따라서 평택역으로 향했다.

미군들에게 창피하다는 평택 택시운전사, “공산당에게 교육받으러 대추리로 가느냐...”는 말에 문뜩 한숨...

6시경 평택역으로 겨우 돌아와서 인권영화제 스탭들을 만날 수 있었다. 인권영화제 페막식은 당초 3시로 예정되었으나 대추리가 폐쇄되어 6시로 옮겨졌다고 했다. 나는 고민을 하다가 목표가 인권영화제 폐막식 관람이니만큼 다시 몇몇 사람들과 함께 대추리로 향했다. 4명이 조를 지어 택시를 타자 운전기사는 우리가 대추리로 ‘영화제’를 관람하러 간다고 하자, ‘공산당 사상교육을 받으러 가냐’며 엉뚱한 질문을 했다.

우리가 ‘아니오. 우리는 영화제를 감상하는 것이고요. 이상한 학생들이 아니에요.’하고 설득을 했지만 흥분한 운전기사를 말릴 수 없었다. 운전기사는 우리에게 그러지 말라고 점잖게 충고를 하면서 ‘미국인들한테 창피해 죽겠다’며 한국인들은 서로 싸우는 못된 민족이라고 했다. 또한 ‘정부에서 지시하면 당연히 농민들이 알아서 나가야지 왜 그렇게 버티는지 모르겠다’는 것이다. 옆에서 듣고 있는 영화제 스탭이 참지 못하고 ‘그럼 불쌍한 농민을 그냥 내쫓는 것이 정부가 할 짓이냐’고 대꾸하자 운전사를 우리를 정말로 ‘폭도’ 취급을 하면서 ‘그런 식으로 행동하면 안 된다’며 충고하기 시작했다. 싸움이 날 것 같아서 듣고 있던 내가 영화제 스탭과 운전기사를 뜯어말려야 했다.

‘아저씨, 말씀 다 맞는데요. 우린 택시를 그냥 영화제를 타고가는 사람들이니 오해하지 마시고 그냥 운전에만 집중해 주세요. 저도 영화제를 왜 대추리에서 하는 건지 모르겠지만 어쨌건 영화제를 보러가는 것 뿐이에요.’

운전기사에게는 나의 말도 들리지 않는 것 같았다. 순간 나는 ‘정말로 이 작은 평택땅에서 이게 웬 난리인가’ 싶어서 서글픈 생각이 들었다. 미군이니 빨갱이니 주사파이니를 떠나서 가난하고 배고픈 농민들에게 조금도 동정심이 없는 평택시민들이 이해가 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평택시민들은 노인들이 거의 무일푼으로 농토를 빼앗기고 공권력에 의해 쫓겨 가는 것에 대한 동정심은 조금도 없었다. 오직 미군들이 들어와서 지역경제가 살아나는 것에 대해서만 관심을 갖는다.

문뜩 시위대가 아니라고 해도 무작정 외부차량으로 보이면 돌멩이를 던지던 ‘환영시위대’의 모습이 겹쳐져서 씁쓸하기만 했다. 택시에서 내려 다시 검문대에 막혀서 웅성거리며 서있다가 상부에서 겨우 승인이 떨어져 대추리로 향했다.

이게 대체 왠일인가? 멀쩡한 들녁이 다 파헤쳐지고 철조망으로 둘러쳐 있다.
이게 대체 왠일인가? 멀쩡한 들녁이 다 파헤쳐지고 철조망으로 둘러쳐 있다.
텔레비전으로 보는 것보다 훨씬 심해보이는 대추리의 풍경을 확인하고 순간 울컥하는 심정에 사로잡혔다. 평생 도시에서 자라 농촌생활에 대해서는 조금도 몰랐으나 미군지기를 짓는다고 논밭을 갈아엎고 철조방이 사방에 둘러쳐 있었다. 막상 도착한 대추리에는 황당하게도 노인들만이 촛불을 앞에 두고 앉아서 영화제를 관람하기 위해 몰려있었다. 얼추 보아도 고작 수십 명의 힘없는 노인들뿐이었다. 반미나 민족주의를 싫어하는 나조차 이건 아니다 싶어서 나도 모르게 한숨이 나왔다.

돌아오는 길, 다시 택시를 기다리며 대추리로 들어서는 길에 서 있었다. 사방이 철조망이었다. 마치 휴전선에 고립되어 있는 기분이었다. 여자 몇 명이 택시를 기다리며 서 있는데 멀리서 조명 여러 개가 우리를 향해 비추었다. 우리는 철조망 안에 경찰(군인?)에게 소리쳤다. ‘택시 기다리려고 서 있는 거에요.’....10여분 쯤 우리를 비추었던 조명이 다른 곳으로 돌아갔다. 마치 포로수용소에 서 있는 기분이었다. 어둠속에서 갈아엎어진 논이 눈에 보였다. 그때 처음으로 느꼈다.

‘나는 자유인이 아니었구나! 국가에 소속된 그냥 힘없는 한 마리의 개미 같은 존재였구나! 대체 국가란 무엇인가....’

누가 이 힘없는 노인을 폭도로 만들었는가? 평생 주어진대로 세상을 살았으며 운동권학생을 폭도로 생각했었던 이 분들을 누가 촛불 앞에 앉게 했는가? 이 노인의 이마에 찍혔을 '폭도'라는 낙인에 가슴이 아려온다.
누가 이 힘없는 노인을 폭도로 만들었는가? 평생 주어진대로 세상을 살았으며 운동권학생을 폭도로 생각했었던 이 분들을 누가 촛불 앞에 앉게 했는가? 이 노인의 이마에 찍혔을 '폭도'라는 낙인에 가슴이 아려온다.

문뜩 슬퍼졌다. 땅을 잃고 가엾게 촛불 앞에선 저 노인들을 어쩌리오.... 그들을 지켜주는 평택시민들은 정말 하나도 없는 것인가....

태어나서 정말이지 평생 처음으로 대추리에 있는 가엾은 노인들처럼 폭도(?)가 되어본 하루였다.

(*이 기사는 네티즌, 전문필자, 기자가 참여한 <필진네트워크> 기사로 한겨레의 입장과 다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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