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차그룹 비자금 사건과 관련해 검찰 조사를 받던 박석안(60·사진) 전 서울시 주택국장이 15일 스스로 목숨을 끊어, 자살 배경을 놓고 의혹이 일고 있다.
박씨는 지난해 7월 현대차로부터 3600여만원짜리 그랜저엑스지 승용차를 730만원 할인받아 2934만원에 구입한 것과 관련해 대검 중수부의 조사를 받고 있었다. 채동욱 대검 수사기획관은 “현대차그룹 압수수색에서 박 전 국장과 건축과장이 현대차로부터 승용차를 한 대씩 할인 구입했다는 품의서가 발견돼 4월28일 처음 조사한 뒤 네 차례 더 불러 조사했다”며 “양재동 사옥 증축 허가 과정과 승용차를 산 돈의 출처 등을 조사했고 15일 아침 9시30분에 검찰청에 나오라고 통보한 상태였다”고 말했다.
하지만 채 기획관은 “박 전 국장에 대한 조사는 조사실도 아닌 7~8명이 지켜보는 사무실에서 이뤄졌다”며 “자체적으로 경위를 확인했으나 조사 과정에서 폭언이나 폭행 등 무리한 점은 발견되지 않았고, 그럴 만한 상황도 아니었다”고 말했다.
그러나 박씨의 가족들은 그가 검찰 조사를 받는 내내 심한 스트레스를 호소했다고 전했다. 실제 박씨의 집 책상 서랍에서 발견된 에이4 용지 3쪽 분량의 유서를 보면 “나를 괴롭혀서 항복을 받아낼 욕심으로 처남은 물론 처남과 돈거래한 사람까지 (수사를) 계속 확대하고 있다”고 쓰여 있다. 박씨는 유서 말미에 “주변 친지와 서울시청 동료·후배들, 그리고 가족의 명예를 지킬 수 있는 길”을 가겠다고 밝혔다. 그는 숨지기 하루 전인 14일 동료 공무원들을 만난 자리에서 검찰 조사를 받다 투신자살했던 안상영 전 부산시장 등을 거론하며 “차라리 죽어버려야겠다. 명예가 더럽혀져서 더이상 못 살겠다”고 억울해하며 눈물을 흘렸던 것으로 전해졌다. 이에 따라 박씨가 여섯 차례나 검찰의 소환 조사를 받게 되면서 느낀 압박감이나 모멸감을 참지 못해 스스로 목숨을 끊었을 가능성이 제기되고 있다. 그러나 채 기획관은 “박 전 국장은 3~4시간 가까이 자술서 정도만을 쓰고 돌아가 조사에 부담을 느낄 만한 상황은 아니었던 것으로 판단된다”고 말했다.
박씨는 15일 오전 10시께 경기 광주시 퇴촌면 광동리 광동교 아래 경안천 하류 팔당호에서 양복 바지와 등산복 점퍼를 입고 구두를 신은 채 숨져 있었다.
전진식 황상철 기자, 광주/김기성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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