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계·검찰 등 출신 안배 ‘구색맞추기’ 흐를 우려
민변·시민단체 대응도 무기력 새만금 판결 등 보수 일색
“사법부에 열린 시각 필요”
민변·시민단체 대응도 무기력 새만금 판결 등 보수 일색
“사법부에 열린 시각 필요”
오는 7~9월 사이 대법관 5명과 헌법재판관 5명 등 무려 10명의 사법부 수뇌부 인사를 앞두고 사법권력이 다시 보수화하는 게 아니냐는 우려가 나오고 있다. 특히 대법원의 경우 ‘다양화’를 명분으로 학계 및 검찰 출신 인사의 기용을 기정사실화하는 분위기이지만, 법조계 한쪽에선 후보군들의 성향을 지적하며 ‘무늬만 다양화’라는 비판이 나오고 있다. 대법원은 7월 강신욱·이규홍·이강국·손지열·박재윤 대법관이 물러나고, 헌법재판소는 8~9월 윤영철 소장을 시작으로 권성·김효종·김경일·송인준 재판관이 잇따라 퇴임한다. 불과 3개월 사이에 우리나라 최고법원 구성원 22명 중 절반에 가까운 자리가 새 얼굴로 채워지는 것이다. 대법관의 경우 이용훈 대법원장의 ‘다양화 원칙’에 따라 정통법관(2명), 검찰(1명), 학계(1명), 재야 또는 여성(1명)으로 배분될 것이라는 관측이 유력하다. 하지만 유력 후보로 거론되는 외부인사들에 대해 ‘다양화’의 취지를 제대로 반영하지 못하고 있다는 비판이 나온다. 현재 유력하게 거론되는 학계 출신 후보들의 경우 모두 기존 대법원 판례를 답습한 보수적인 학자들로 분류된다는 것이다. 고등법원의 한 부장판사는 “학계 출신은 법조계의 타성에 젖지 않고 원론적인 생각이 살아 있는 사람이어야 한다”며 “현재 대법관 후보로 거론되고 있는 학자들이 대법원 판례를 옹호한 교과서를 만들었는데 그들이 대법원에 오면 무슨 의미가 있겠는가”라고 반문했다. 검찰 출신 후보군에 대해서도 논란이 있다. 그동안 인권보호를 경시하는 형사소송 절차를 편의적으로 이용하고 이를 개혁하려는 움직임에 반발하던 검찰 출신은 법원의 보수화를 부추길 수 있다는 것이다. 서울 지역 법원의 한 중견판사는 “우리나라의 낙후된 형사소송 제도에서 편리함과 향수를 느끼는 전형적인 검찰상이 아니라, 큰 틀에서 무엇이 옳은지를 두루 생각할 수 있는 적격자가 아니라면 검찰 몫을 유지하는 것은 의미가 없다”고 꼬집었다. 헌법재판관도 사정은 비슷하다. 대통령이 헌재 소장을 포함해 2명, 국회가 2명, 대법원장이 1명을 추천하게 돼 있으나 직역 안배 논리와 인물난으로 보수화 가능성이 크다는 분석이다.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 모임과 시민단체를 비롯한 진보 진영 쪽은 별다른 움직임을 보이지 않고 있다. 민변은 대법관 인선 작업이 시작됐음에도 독자적으로 후보를 추천할지, 다른 시민단체의 후보추천에 도움을 줄지 등 방향을 아직 결정하지 못했다. 장주영 민변 사무총장은 “대안으로 제시할 인물도 부족하고, 우리 움직임에 대한 법조계의 시선도 부담스럽다”고 말했다.
그러나 김승환 전북대 법대 교수는 “지난번 대법관 인선을 통해 다양화의 물꼬를 트긴 했지만 새만금 판결은 ‘11 대 2’라는 결과가 나왔고, 첫 여성 헌법재판관인 전효숙 재판관이 기용된 뒤에도 한나라당 안에서조차 문제가 있다고 본 국가보안법의 찬양·고무죄 등이 전원일치 합헌 결정을 받았다”며 “아직 대법원과 헌재에 보수적 색깔이 짙은 만큼, 진보성이 더욱 반영돼야 한다”고 지적했다. 한 고위 법관은 “재야 변호사든 검찰이든, 현시점에서 요구되는 대법관이나 헌법재판관은 보수적인 법원에 신선하고 열린 시각을 불어넣을 수 있어야 한다”며 “이를 무시하고 직역을 우선기준으로 삼아 구색맞추기식 다양성을 추구하면 안될 것”이라고 말했다. 대법원은 15일 신임 대법관 제청을 위한 자문위원회(위원장 송상현 한국법학교수회 명예회장)를 구성한 뒤 23일부터 29일까지 1주일간 후보자 추천을 받는다. 다음달 초 대법관 제청자문위원회에서 최종 후보가 선정되면 이 대법원장은 5명의 새 대법관을 제청하게 된다. 대법관 후보 대상자는 법조경력 15년 이상, 40살 이상이어야 하며 법원 안팎에서 추천이 가능하다. 이춘재 김태규 기자 cjlee@hani.co.kr
물망에 오른 후보 살펴보니
“유력 후보들 보수 치우쳐” 비판 목소리 대법관 후보군은 현재 정통법관·학계·검찰 등 직역 중심으로 논의되고 있다. 대법관 후보군 중에는 헌법재판관 물망에 오르는 사람도 많아, 새 헌법재판관의 윤곽은 대법관 인선이 끝난 뒤에 드러날 것으로 보인다. 정통 법관 후보군 가운데 가장 유력한 후보는 이홍훈(사시 14회) 서울중앙지법원장이다. 사회적 약자를 위한 판결로 주목받기 시작한 이 법원장은 대법관 인선 때마다 단골 후보로 거론됐다. 박일환(15회) 서울서부지법원장은 실무능력에다 지역(경북) 안배 차원에서 유리한 고지에 있으며, 김능환(17회) 울산지법원장도 겸손한 성품을 바탕으로 법원 내부의 지지를 받고 있다. 하지만 이들에 대해서는 “법원의 주류를 대변하는 ‘엘리트 법관’의 한계를 벗어나지 못했다”는 비판도 나온다. 대법관 또는 헌법재판관 기용설이 나오고 있는 목영준(19회) 법원행정처 차장에 대한 평가도 엇갈린다. “사법개혁 작업을 보좌한 공을 인정해야 한다”는 평가가 있는가 하면, “판사 생활의 대부분을 법원행정처에서 보낸 그는 판사라기 보다 관료에 가깝다”는 ‘혹평’도 있다. 이태운 의정부지법원장과 민형기 인천지법원장, 이주흥 대전지법원장(이상 16회)도 후보로 거론된다. 유원규 법원도서관장, 김이수 서울고법 부장판사(이상 19회), 이인복(21회) 서울고법 부장판사는 유력 후보군에선 밀리고 있으나 법원 안에선 상대적으로 개혁적이란 평가를 받고 있다. 학계 출신으로는 서울대 법대의 양창수(16회), 윤진수(18회) 교수가 거론되는 가운데 양 교수가 유력한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양 교수는 민법 분야의 권위자로 인정받고 있지만, 법조계 안팎에서는 그의 등용에 우려를 나타내는 목소리도 적지 않다. 민변 소속의 중견 변호사는 “양 교수의 성향은 매우 보수적”이라며 “보수 일색인 대법원에 또다른 보수주의자가 들어오면 현시점에서 요구되는 대법원 구성의 다양화에 역행하는 셈”이라고 지적했다. 검찰에서는 김희옥(18회) 법무부 차관과 안대희(17회) 서울고검장이 후보군에 올라 있다. 형사법 박사 학위를 갖고 있는 김 차관은 학구적인 태도가 좋은 평가를 받고 있고, 안 고검장은 대선자금 수사의 ‘스타검사’라는 상징성을 갖고 있다. 그러나 서울 지역 법원의 한 중견판사는 “사법개혁안을 둘러싼 법원과 검찰 사이의 논란 과정에서 드러났듯이 검찰 출신 인사들이 형사소송 절차 개선 등의 개혁작업에 장애물이 될 수 있다”며 우려를 나타냈다. 전체 법관 가운데 여성이 15% 정도를 차지하고 있다는 점에서, 김영란 대법관에 이은 2번째 여성 대법관이 나올 가능성이 커 보인다. 여성 대법관 1순위는 전수안(18회) 광주지법원장이다. 여성 법관 가운데 최고참인 전 법원장은 전문직 범죄에 대한 엄격한 양형으로 유명하다. 최근에는 법원의 과거사 반성을 공개적으로 촉구하기도 했지만, “시류에 편승한 것 아니냐”는 비판적 시선도 법원 내부에 있다. 재야에서는 김덕현(23회) 여성변호사회장이 거론되고 있지만, 사법 개혁의 철학이나 비전은 부족한 게 아니냐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재야 변호사 중에서는 조용환(24회) 변호사가 유력하게 검토되고 있는 가운데, 송두환(22회)·김형태(23회) 변호사 등의 이름도 나오고 있다. 조 변호사는 민변 창립 멤버로, 한국인권재단을 이끌면서 국가인권위원회 산파 구실을 한 인권변호사다. 재야의 대표적인 법이론가로 꼽히며 지난해 열린우리당의 헌법재판관 제의를 ‘고사’하기도 했다. 헌법재판관 인사와 관련해선 노무현 대통령 지명 몫 두 자리 가운데, 김대중 전 대통령 시절 지명했던 검찰 출신 재판관 후임으로 다시 검찰 출신 인사를 임명할 것인지가 관심거리다. 이와 관련해 청와대는 검찰 출신 대신 재야 변호사를 재판관으로 임명하는 방안을 검토 중인 것으로 알려져 주목된다. 이용훈 대법원장은 고위 법관 1명을 재판관으로 지명할 계획이며, 국회 몫 가운데 야당이 1명을, 나머지 1명은 여야가 합의해 추천할 것으로 보인다. 김태규 고나무 기자 dokbul@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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