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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 사회일반

‘제2의 이수현’ … 일본유학생, 지하철서 여학생 구해

등록 2006-05-24 17:50수정 2009-06-07 17:22

신현구씨
신현구씨
이수현씨 숨진 선로
한국인 유학생이 일본의 한 전철역에서 위험을 무릅쓰고 전철 선로에 떨어진 일본 여학생을 구한 사실이 뒤늦게 밝혀졌다. 사건이 일어난 장소는 2001년 1월 한국인 유학생 이수현(당시 26)씨가 선로에 떨어진 일본인 남성을 구하기 위해 뛰어들었다가 달려오는 전동차에 치여 숨진 데서 불과 5m도 떨어지지 않은 곳이다.

도쿄 아라카와구 닛포리의 ㅇ일본어학교에 다니는 신현구(27)씨는 지난 21일 오전 5시35분께 신주쿠 제이알 야마노테선 신오쿠보역에서 신주쿠로 향하는 선로에 떨어진 일본 여성을 구해냈다. 당시 선배의 이사를 돕기 위해 닛포리로 가던 도중 이 역에 내린 신씨는 등 뒤에서 ‘쿵’하는 소리가 나는 것을 듣고 달려갔다. 젊은 여성이 선로에 떨어져 한쪽 다리가 침목 아래에 빠진 채 신음하고 있었다. 역 구내에는 일본인 20명 정도가 있었지만 모두가 웅성거리며 지켜만 볼 뿐이었다.

어떻게 해야 하나 하고 신씨는 잠시 망설였다. 순간 일본인을 구하다 숨진 한국인 유학생 생각이 스치며 지나갔다. 자신이 구해야 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는 전동차가 오는 방향을 한번 쳐다본 뒤 재빨리 아래로 뛰어내려가 이 여성을 플랫폼 위쪽으로 밀어올렸다. 신씨는 “전동차가 언제 올지 알 수 없어 솔직히 무서웠다”며 “너무 긴장한 탓인지 힘이 솟아나 그 여성을 들어올릴 땐 마치 빈 맥주상자를 드는 것처럼 가벼웠다”고 말했다. 신씨는 감지기를 통해 사람이 선로에 떨어진 것을 알고 달려온 역무원에게 이 여성을 맡기고 화장실로 향했다.

제이알 관계자는 당시 전동차가 10분 간격으로 운행됐고, 다음 전동차가 올 때까지 7분 정도 남은 상황이었다고 밝혔다. 또 역 구내 곳곳에 설치된 빨간색의 비상정지 버튼을 누르면 들어오는 전동차가 멈추기 때문에 이수현씨도 목숨을 잃지 않았을 것이라고 말했다. 그렇지만 그런 사실을 전혀 알지 못했던 신씨로선 목숨을 건 용기있는 행동이었다.

신씨는 평소 이 역을 거의 이용하지 않는다. 이날도 목이 마르고 화장실에 가고 싶었지만, 이 역에 내려야 할 이유는 없었다. 게다가 신씨는 이씨가 다녔던 일본어학교에 현재 다니고 있다. 이씨와 거의 유사한 상황을 겪은 것은 정말 우연이다. 신씨는 “나중에 이씨에 대해 자세히 알게 됐는데, 아주 묘한 기분이 들었다”며 “이씨의 넋이 나의 행동을 이끌었는지도 모르겠다”고 말했다. “한국 사람이면 누구나 같은 행동을 했을 것”이라는 신씨는 “그 때 내가 그 자리에 있었던 것뿐”이라며 검연쩍은 표정을 지었다.

신씨는 과거에도 ‘의로운 일’과 인연이 많았다. 몇년 전 서울 잠실역에서 여성 3명이 소매치기를 잡은 사건이 발생했을 때 신씨는 결정적 기여를 하고도 그냥 자리를 떴다. 그는 여성들이 소리치는 것을 듣고는 성추행범인 줄 알고 잡았는데 소매치기였다고 말했다. 또 풀빵을 파는 할아버지가 불을 피우다 잘못해 옷에 불이 붙은 것을 보고는 몰고가던 스포츠실용차를 멈추고 트렁크에서 소화기를 꺼내 불을 꺼주기도 했다. 주변에 있던 사람들은 그 광경을 바라만 보고 있었다고 한다. 인천 해사고등학교를 졸업하고 롯데월드 등에서 일한 신씨는 자동차 스포츠와 관련된 일에 도전해보기 위해 지난해 9월 일본으로 건너왔다.

신씨 덕택에 목숨을 건진 여성은 18살 대학생으로, 만취 상태에서 선로로 떨어진 것으로 보인다고 <아사히신문>은 24일 경찰의 말을 따 보도했다. 이 여학생은 곧바로 구급차에 실려 병원에 옮겨졌으며, 손발에 가벼운 상처를 입는 데 그쳤다. 그러나 이 여학생으로부터 아직 아무런 연락이 없다. 신씨는 “고맙다는 말을 듣고 싶은 생각은 없다”면서 “다리를 많이 다친 것으로 보였다”며 그 여학생을 걱정하고 있었다.

도쿄/박중언 특파원 parkje@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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