붉은악마 회원들과 시민들이 지난 2002년 6월4일 저녁 서울 대학로에서 한국과 폴란드의 경기를 대형 스크린으로 보며 응원하고 있다. <한겨레> 자료사진
‘월드컵 폭격’ 또 맞을라 “나, 떨고 있니?”
“다들 일주일 공연 가운데 반은 접었죠. 아예 손님이 없거나, 결국 공연을 취소했으니까요.” 대학로 마당발, 조형준 아르코예술극장 프로듀서는 2002년 월드컵 때를 이렇게 회상했다. 당시 대학로 곳곳에서는 조씨 등이 기획한 서울프린지페스티벌의 공연들이 한창이었으나, ‘관객’은 드물었다. 온통 ‘붉은악마’뿐이었다. 조씨는 당시 상황을 “폭격을 맞은 것 같았다”고 표현했다.
서둘러 공연 막 내리거나 한국전 있는날 시간 조정
응원단 넘쳐나도 관람객 실종 2002년엔 모든게 마비
“다양한 문화 부족” 아쉬워 다시 돌아온 ‘잔인한 6월’=2002년 월드컵 한국 경기가 있던 날, 때때로 대학로 혜화역에선 지하철도 서지 않았다. 응원하는 시민들로 붐볐기 때문이다. 당시 작품을 올렸던 연출가 김낙형씨는 말했다. “이탈리아전이 열리던 날인가요, 5명인가 왔더라고요. 미안하다며 돌려보냈습니다.” <생존도시>를 무대에 올렸던 연출가 조광화씨는 스페인전이 열리던 22일, 아예 본 공연을 취소하고 말았다. 정확한 집계는 없지만, 당시 한국의 8강, 4장 진출전이 열리는 날마다 대학로 소극장의 절반 가량이 공연을 하지 않은 것으로 전해진다. 김씨는 “응원 함성 때문에 공연 중에 막을 내린 극장도 많았다”고 말했다. 한 공연기획자는 “당시 대학로에선 모든 게 ‘올스톱’이었다”고 기억했다. 일본은 달랐다. 2002년 6월 뮤지컬 <갬블러>를 40일 동안 도쿄 등 일본의 8개 도시에서 순회 공연했던 신시뮤지컬컴퍼니의 정소애 기획실장은 “객석의 80~90%가 차면서 모두 5만여명이 다녀갔다”고 말했다. 한국의 6월만 잔인했던 셈이다. 공포의 월드컵=다시 2006년 월드컵의 대학로. 여건은 많이 다르다. 국내에서 경기가 열리지 않는데다, 대개 새벽 경기다. 대학로의 마지막 공연은 늦어도 저녁 8시면 시작한다. 전체 예매율도 소폭 감소했을 뿐이다. 그런데도 대학로 사람들은 한결같이 “월드컵이 무섭다”고 말한다. 한 연출가는 이를 “대학로가 ‘월드컵 쇼크 증후군’을 앓고 있다”는 말로 압축했다. 기획사 ‘축제를 만드는 사람들’은 이번 월드컵 기간에 두 작품을 무대에 올린다. 공연 뒤 무대에 스크린을 설치해 경기를 함께 관람하는 한밤 패키지다. 월드컵 특별수요를 노린 시도다. 하지만 접었다. 국제축구연맹(FIFA)과 경기 중계권 계약을 한 마케팅사 ‘에스엔이’(SNE)에 최대 5천여만원의 사용료를 내야 하기 때문이다. 일반 소극장 공연 한달 매출의 2~3배다. 동숭아트센터에서 공연 중인 뮤지컬 <밴디트>도 같은 이유로 응원 관람 마케팅을 포기했다. 자본주의의 외곽=‘2002 월드컵 보고 놀란 가슴’이 올해 눈치를 안 볼 수가 없다. 연극 <닭집에 갔었다>의 극단 오늘은 토고전이 열리는 13일 공연 취소를 심각하게 고민했다. 저녁 8시에 막을 올리던 뮤지컬 <밴디트> 13일 공연은 결국 한 시간을 당기기로 했다. 6월10일 이전에 서둘러 끝내는 작품도 많다. 기획사 파임커뮤니케이션즈의 김의숙 대표는 4년 전 스페인전 때 낮 공연을 접고 다른 기획자들과 술을 마셨다. 그는 이번 월드컵 한복판에도 연극 <남자가 여자를 사랑할 때>(6월16일~7월2일)를 올릴 참이다. 그 흔한 월드컵 할인 마케팅도 하지 않는다. 김 대표는 “관심이 워낙 월드컵에만 쏠려 있어서 관람료 할인 등의 ‘대응’ 자체가 무의미해 보인다”며 “그냥 좋은 작품이나 만들려고 한다”고 말했다.
이달 18일까지 연극 <검둥이와 개들의 싸움>을 올리는 김낙형씨는 “독일은 개최국인데도 월드컵을 중계하지 않는 카페가 있다”며 “자본이 월드컵을 부추기는데다, 우리 스스로 다양하게 문화를 즐기는 토대도 너무 부족하다”고 아쉬워했다. 임인택 기자 imit@hani.co.kr
응원단 넘쳐나도 관람객 실종 2002년엔 모든게 마비
“다양한 문화 부족” 아쉬워 다시 돌아온 ‘잔인한 6월’=2002년 월드컵 한국 경기가 있던 날, 때때로 대학로 혜화역에선 지하철도 서지 않았다. 응원하는 시민들로 붐볐기 때문이다. 당시 작품을 올렸던 연출가 김낙형씨는 말했다. “이탈리아전이 열리던 날인가요, 5명인가 왔더라고요. 미안하다며 돌려보냈습니다.” <생존도시>를 무대에 올렸던 연출가 조광화씨는 스페인전이 열리던 22일, 아예 본 공연을 취소하고 말았다. 정확한 집계는 없지만, 당시 한국의 8강, 4장 진출전이 열리는 날마다 대학로 소극장의 절반 가량이 공연을 하지 않은 것으로 전해진다. 김씨는 “응원 함성 때문에 공연 중에 막을 내린 극장도 많았다”고 말했다. 한 공연기획자는 “당시 대학로에선 모든 게 ‘올스톱’이었다”고 기억했다. 일본은 달랐다. 2002년 6월 뮤지컬 <갬블러>를 40일 동안 도쿄 등 일본의 8개 도시에서 순회 공연했던 신시뮤지컬컴퍼니의 정소애 기획실장은 “객석의 80~90%가 차면서 모두 5만여명이 다녀갔다”고 말했다. 한국의 6월만 잔인했던 셈이다. 공포의 월드컵=다시 2006년 월드컵의 대학로. 여건은 많이 다르다. 국내에서 경기가 열리지 않는데다, 대개 새벽 경기다. 대학로의 마지막 공연은 늦어도 저녁 8시면 시작한다. 전체 예매율도 소폭 감소했을 뿐이다. 그런데도 대학로 사람들은 한결같이 “월드컵이 무섭다”고 말한다. 한 연출가는 이를 “대학로가 ‘월드컵 쇼크 증후군’을 앓고 있다”는 말로 압축했다. 기획사 ‘축제를 만드는 사람들’은 이번 월드컵 기간에 두 작품을 무대에 올린다. 공연 뒤 무대에 스크린을 설치해 경기를 함께 관람하는 한밤 패키지다. 월드컵 특별수요를 노린 시도다. 하지만 접었다. 국제축구연맹(FIFA)과 경기 중계권 계약을 한 마케팅사 ‘에스엔이’(SNE)에 최대 5천여만원의 사용료를 내야 하기 때문이다. 일반 소극장 공연 한달 매출의 2~3배다. 동숭아트센터에서 공연 중인 뮤지컬 <밴디트>도 같은 이유로 응원 관람 마케팅을 포기했다. 자본주의의 외곽=‘2002 월드컵 보고 놀란 가슴’이 올해 눈치를 안 볼 수가 없다. 연극 <닭집에 갔었다>의 극단 오늘은 토고전이 열리는 13일 공연 취소를 심각하게 고민했다. 저녁 8시에 막을 올리던 뮤지컬 <밴디트> 13일 공연은 결국 한 시간을 당기기로 했다. 6월10일 이전에 서둘러 끝내는 작품도 많다. 기획사 파임커뮤니케이션즈의 김의숙 대표는 4년 전 스페인전 때 낮 공연을 접고 다른 기획자들과 술을 마셨다. 그는 이번 월드컵 한복판에도 연극 <남자가 여자를 사랑할 때>(6월16일~7월2일)를 올릴 참이다. 그 흔한 월드컵 할인 마케팅도 하지 않는다. 김 대표는 “관심이 워낙 월드컵에만 쏠려 있어서 관람료 할인 등의 ‘대응’ 자체가 무의미해 보인다”며 “그냥 좋은 작품이나 만들려고 한다”고 말했다.
이달 18일까지 연극 <검둥이와 개들의 싸움>을 올리는 김낙형씨는 “독일은 개최국인데도 월드컵을 중계하지 않는 카페가 있다”며 “자본이 월드컵을 부추기는데다, 우리 스스로 다양하게 문화를 즐기는 토대도 너무 부족하다”고 아쉬워했다. 임인택 기자 imit@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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