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누구나 듣고 싶어한 소식 전했을뿐…”
아나운서로 ‘단파수신 사건’ 옥고
“당시에 누구나 듣고 싶어했던 소식을 전했을 뿐인데….”
올 삼일절에 항일 독립운동으로 서훈을 받는 독립유공자들 가운데 유일한 생존자인 박용신(89) 옹은 23일 “나는 독립운동을 한 것도 아니다”며 이렇게 말했다.
그는 1940년 경성중앙방송국(현 한국방송)에 입사해 아나운서로 일하면서 해외 단파방송을 몰래 들은 뒤 해외의 독립운동 소식과 국제 정세 등을 국내에 전했다. 그는 “방송국 2층 기술부에 고성능 단파 수신기가 있어서 새벽 한두시께 올라가서 몰래 방송을 들었다”며 “모든 전투에서 승리하고 있다는 일본의 선전과 실제 상황은 많이 달랐다”고 말했다.
그는 중국 충칭의 임시정부 방송과 미국에서 나오는 방송 등에서 해외 독립운동과 연합국의 승전 소식을 들었다. 그는 “우리들만 그런 소식을 알고 있을 수만은 없어 주위의 가까운 친구나 기자들에게 전했다”고 말했다. 그가 들은 내용은 송진우·김병로·이인·허헌 등에게 전달됐다.
그러다 1942년 12월 ‘단파수신 사건’으로 동료들과 함께 체포돼 이듬해 11월에 징역 6개월을 선고받아 서대문형무소에서 옥고를 치렀다. 그는 “경기도경에서 몇달 동안 물고문과 비행기 태우기 등 온갖 고문을 받았다”며 “그 때 함께 잡혀간 동료 아나운서 2명은 해방 뒤에 월북했다”고 말했다. 단파수신 사건으로 맺어진 이승만 전 대통령과의 인연으로 그는 해방 뒤 경성전기(한국전력의 전신)에서 미군 사장의 비서실장 등으로 오래 근무했다.
그는 이런 사실을 거의 털어놓지 않다 지난해 12월 아들 상억(48)씨에게 고향인 강원도 홍천 얘기를 하면서 자세히 전했다. 올 삼일절에 받게 되는 건국포장도 아들이 지난해 말 자료를 찾아 신청한 것이다. 그는 “애국심이라기보다는 당시에는 누구나 그런 일을 했을 것”이라고 말했다.
글 황상철·사진 김태형 기자 rosebud@hani.co.kr
글 황상철·사진 김태형 기자 rosebud@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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