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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 사회일반

[여성성이 뜬다] 군림하는 권위남? 소통하는 다정남!

등록 2006-06-15 19:35수정 2006-06-16 18:02

박좌용씨(오른쪽 두번째)가 서울 마포구 연남동 참나무 어린이집에서 아들 상범이를 업고 공동육아를 하는 이웃들과 이야기하고 있다. 김종수 기자 <A href="mailto:jongsoo@hani.co.kr">jongsoo@hani.co.kr</A>
박좌용씨(오른쪽 두번째)가 서울 마포구 연남동 참나무 어린이집에서 아들 상범이를 업고 공동육아를 하는 이웃들과 이야기하고 있다. 김종수 기자 jongsoo@hani.co.kr
생활의 축, 직장서 가정으로 가사·육아도 함께 팔걷어
힘·성공지향 관계맺기 아닌 돌봄·평화 여성가치 눈 떠
남편·아빠 변신이 시작됐다
1906년 6월 핀란드에서 북반구 최초로 여성들이 참정권을 얻었다. 이후 한 세기 동안 여성의 목소리에 힘이 붙었다. 발걸음도 커졌다. 남성들이 주도하던 사회에서 사소하게 여겨진 소통, 치유, 돌봄, 살림 등 ‘여성성’ 또는 ‘여성적 가치’는 대안적 또는 보완적 가치로 사람들의 눈길을 받기 시작했다. 정치·경제·사회·문화 등 각 분야에서 여성성은 변화의 새바람을 불러일으키고 있다. 남성들도 자기 안의 여성성을 찾아 조화로운 인간으로 거듭나려고 시도한다. 이런 바람은 왜, 어디서부터 불고 있을까?

편집자

박좌용(39)씨는 인자한 아빠이자 어진 남편이다. 여섯 살배기 아들 상범이의 저녁을 몸소 준비하고, 퇴근이 늦은 아내 이선화(37)씨의 어깨와 허리를 주물러주는 일로 하루를 닫는다. 그는 4년 전만 해도 외출한 아내에게 전화를 걸어 “비 오는데 빨래 걷으러 들어오라”고 하던 전형적인 가부장이었다.

그가 달라졌다. 상범이를 서울 연남동 공동육아 생활협동조합 ‘참나무 어린이집’에 보내면서다. 부모가 함께 발벗고 나서야 하는 공동육아 특성상 그도 청소·회의 등 어린이집 일에 참여하게 됐고, 생활의 중심축도 직장에서 육아쪽으로 크게 옮아갔다. 어린이집 일을 하면서 집안 일에 가는 손길도 조금씩 늘었다.

아내를 대하는 태도도 180도 변했다. 생협 회의 때 상범이가 물을 엎지르자 아내에게 “애 안보고 뭐하냐!”고 소리 지르던 그에게 다른 엄마들은 “그러면 안 된다”고 충고했다. 이런 충고와 그들이 털어놓는 남편에 대한 불만을 들으면서 그는 자신과 아내의 관계를 되돌아보기 시작했다. 원래 다른 사람의 이야기를 잘 들어주던 성격이었던 그는 육아와 ‘아줌마 수다’의 세례를 받으며 아내는 물론 다른 엄마들과도 가장 잘 통하는 남자로 거듭났다. 아이 키우기와 가사를 아내뿐 아니라 자신의 일로도 여기자 이해도 넓어졌다. “남자는 말야”를 연발하는 다른 아빠들을 아내 처지에서 설득하게 된 그는 ‘아빠들 공공의 적’이라는 농담섞인 말도 듣는다.

육아·가사노동은 아내 몫으로 여기고, 군림하려 들었던 그때를 생각하면 창피하다는 박씨. 요즈음 그는 “아내와 매일밤 꼭 껴안고 잔다.” 처음 그의 ‘변신’을 못마땅해하던 직장 동료들도 이젠 “아이, 아내와 새로운 관계를 맺고 생활에 활력이 생겼다”는 그를 부러운 눈길로 쳐다본다.

박씨처럼 남성들 스스로 ‘가부장’을 포기하려는 징후는 세대를 가리지 않는다. ‘경상도 중년 남자’ 송아무개(52·대학교수)씨. 그는 10여년 전부터 아내 친구의 모임에 끼게 됐다. 당연히 남자는 혼자다. 그래도 마음 편하다. 나라와 민족을 걱정하며 열변을 토하는 대신 자신의 ‘진짜’ 삶과 감정을 나눌 수 있기 때문이다. 집에서도 변했다. 자식들이 말대꾸를 해도 “아빠한테 그런 문제가 있는지 몰랐는데, 말해줘서 고맙다”고 답한다. 아내 정아무개씨는 남편의 변화가 “내 친구들과 어울리면서, 문제제기가 의사소통의 출발이고, 권위를 내세워 봤자 통하지 않는다는 걸 알게 됐기 때문이 아닐까 싶다”고 말한다.

〈한겨레〉와 밀워드브라운 미디어리서치가 지난달 23~24일 전국 18~59살 남녀 1000명을 상대로 벌인 설문조사 결과, 남성의 82.3%가 “회식이나 인맥쌓기 모임 등 성공 지향적인 모임보다 가족·친지 모임 등 관계 지향적 모임을 선호한다”고 답했다. 가족의 따뜻함과 평등한 의사소통에 대한 남성들의 욕구가 적지 않다는 걸 보여준다. 조한혜정 연세대 사회학과 교수는 “경쟁, 힘이 지배하는 남성의 관계맺기 방식이 스스로를 옭아매고 외롭게 만든다는 걸 알게 된 것”이라며 “남성들이 소통, 돌봄, 평화, 공존, 관계중심적 사고 등 가부장제 사회에서 평가절하했던 여성적 가치를 재발견해 삶의 새로운 의미를 찾기 시작한 것으로 보인다”고 진단했다.


조혜정 기자 zesty@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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