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일본 홋카이도 무로란시 고쇼사에 안치돼 있는 조선인 희생자 유품 중 희생자 어머니가 보낸 엽서. 희생자가 숨진 날짜는 1944년 7월15일이고 어머니가 보낸 엽서 소인 날짜는 44년 12월25일이다. 일제강점하 강제동원피해 진상규명위원회 제공.
“어미는 매일 걱정…편지 자주 보내라”
규명위, 일본 현장조사 “내년 7월에 무사히 도착할 수 있도록 마음으로 빌고 있다. 요전번에 편지를 보냈는데 받았는지, 어미는 매일 걱정이다. 자주 편지 보내거라. 무사히 도착할 때까지 몸 건강하거라.” 일본으로 강제동원된 아들에게 어머니가 보낸 엽서의 일부분이다. 아들의 무사귀환을 빌고 있지만, 엽서를 보냈을 당시 아들은 벌써 이 세상 사람이 아니었다. 엽서 소인은 1944년 12월25일로 찍혀 있었지만, 아들은 이미 44년 7월15일에 숨졌다. 일본 정부가 사망 사실을 통보할 의무를 저버린 것이다. 일제강점하 강제동원피해 진상규명위원회는 지난 16~22일 일본을 방문해 벌인 강제동원 전쟁 희생자 유골실태 조사 결과를 25일 내놨다. 규명위는 홋카이도 무로란시 절 고쇼사(광조사)에서 위의 편지가 나온 유골함을 포함해 조선인 유골함 3개를 찾았다. 다행히 유골함에는 이름과 본적, 생년월일이 적혀 있는 명부가 나와 60년 만에 경남 하동과 사천에 있는 유가족들에게 알려줄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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규명위는 시즈오카현 시미즈시 기타야베 시미즈 화장장의 조선인 유골 안치당도 찾았다. 이 곳 추모비에는 “이억만리 남의 땅, 남의 나라에서 억울하게 희생당해 무주고혼이 된 당신들이여. 당신들의 백골도 영혼도 주인이 있고 조국이 있다. 멀지 않은 장래에 당신들을 데리러 올 그날까지 고이 잠드시라”고 적혀 있었다고 규명위는 전했다. 한편, 규명위는 유골 실태조사를 위해 한국과 일본 두 나라가 민관 합동으로 가칭 ‘한-일 유골실태조사위원회’를 만들자고 일본 정부에 제안했고, 일본 쪽으로부터 협력할 수 있는 부분을 진지하게 검토하겠다는 약속을 받았다고 밝혔다. 정혁준 기자 june@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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