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법 “수사기관, 자발적 동행 증명 못할 땐 불법”
임의동행을 강제연행의 수단으로 악용해 온 수사기관의 관행에 제동을 거는 대법원의 확정판결이 나왔다.
대법원 2부(주심 손지열)는 6일 박아무개(27)씨에 대한 도주죄 사건 상고심에서 “오로지 피의자의 자발적 의사로 동행이 이뤄졌음이 객관적인 사정으로 명백하게 입증된 경우에 한해, 그 적법성이 인정된다”며 △피의자에게 동행을 거부할 수 있음을 알려줬거나 △동행한 피의자가 언제든지 나갈 수 있었음이 인정되는 경우 등에만 임의동행으로 인정된다고 밝혔다.
이로써 수사기관의 임의동행 관행이 크게 바뀔 것으로 보인다.
강원도 춘천에서 중고자동차 판매상으로 일하는 박씨는 2004년 9월 밤일을 마치고 돌아오는 길에 집앞에서 잠복하던 네 경찰관과 마주쳤다. 경찰관들은 “무슨 일이냐”고 묻는 박씨에게 “가 보면 안다”는 말만 하고 차에 태웠다.
경찰서에는 박씨의 누나도 잡혀와 있었다. 이아무개씨 안방에서 100만원짜리 수표 석 장을 훔친 혐의로 체포된 박씨의 누나는 수표 출처를 묻는 경찰의 추궁에 “동생이 줬다”고 둘러댔다. 박씨는 범행을 완강히 부인했으나 경찰은 그를 긴급체포했다. 박씨는 유치장 입감을 앞두고 감시가 소홀한 틈을 타 나왔다가 다시 붙잡혔다. 조사 과정에서 박씨의 누나가 거짓진술을 한 사실이 드러났으나, 검찰은 박씨를 도주죄로 불구속 기소했다.
재판부는 “박씨가 경찰서에 온 것은 동행 요구를 거절할 수 없는 심리적 압박 아래 이뤄진 사실상의 불법적인 강제연행이고, 나중에 이뤄진 긴급체포도 위법하다”며 박씨에게 무죄를 선고한 원심을 확정했다.
김태규 기자 dokbul@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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