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석현·이학수씨 화법을 들어보면 뇌물 전달 보고가 일상적이고 사무적이었습니다. 영화에서 보면 그보다 작은 범죄를 모의할 때도 귓속말 하면서 조심하는 모습인데, (이 사람들은) 죄의식이 전혀 없는 것처럼 느껴졌습니다. 돈이면 다 된다는 생각을 하고 있다는 느낌이 들었죠.”
지난해 삼성의 불법로비 의혹이 담긴 국가안전기획부 도청 테이프(엑스파일)를 보도한 이상호 <문화방송> 기자는 19일 서울중앙지법에서, 엑스파일을 처음 들었을 때의 소회를 이렇게 밝혔다. 이날 이 기자는 ‘떡값 검사’로 거론됐던 김진환(58) 전 서울지검장이 이를 폭로했던 노회찬(50) 민주노동당 의원을 상대로 낸 손해배상 청구소송에 증인으로 나왔다.
이 기자는 홍 회장이 검찰수사에서 엑스파일에 나오는 목소리가 자신임을 시인했다고 증언했다. 이 기자는 “자기 목소리라는 것은 인정했지만 오래 전 일이라 기억할 수 없다고 한다”는 수사검사의 말을 전했다. 이에 대해 “그러면 기억을 살려내기 위해 테이프를 들려주지 그랬냐”고 제안하자, 수사검사는 “제작경위 등이 문제가 되기 때문에 들려줄 수 없었다”고 말했다고, 이 기자는 증언했다.
이 기자는 “형사처벌을 무릅쓰고 보도를 한 이유가 뭐냐”는 노 의원 쪽 변호인 신문에 “지속적이고 일상적으로 일어난 범행이어서 보도가 필요했다”며 “만약 이 사건이 우발적인 일이었다면 보도하지 않았을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이어 “이건희 회장에서 홍석현 회장으로 이어지는 광범위한 뇌물고리의 고발 필요성을 느꼈다”고 덧붙였다.
이날 재판에서는 양쪽 대리인 사이에 증인신문 방식과 내용을 놓고 감정적인 공방이 벌어지기도 했다.
“엑스파일의 내용을 얘기해달라”는 노 의원 쪽 변호인의 요구에 이 기자가 엑스파일에 담긴 내용들을 소개하자, 김 전 지검장 쪽 변호인인 장용국(53·사시 17회) 변호사는 “이 사건과는 관련이 없다. 이 곳은 정치선전장이 아니니 그만하라”며 이의를 제기했다. 이에 대해 노 의원 쪽 송호창(39·41회) 변호사는 “떡값 검사 부분에 대해 검찰의 구체적 수사결과가 없는 상황에서 엑스파일이 진실이라고 믿을 만한 ‘상당성’을 입증할 수밖에 없다”며 반박했다. 이에 재판장은 “또 다른 명예훼손이 될 수 있으니 이 사건과 관련됐거나 사실이 확인된 부분만 말해달라”고 주문했다. 그러나 이 기자의 엑스파일 내용 설명이 계속되자 다음과 같은 설전이 벌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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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 변호사 : 법정을 정치 선전장으로 만들어선 안됩니다. 하고 싶은 주장이 있으면 써서 내면 되는데, 왜 굳이 말을 합니까?
송 변호사 : 그렇게 말씀하시면 증인신문 취지의 의미가 없습니다.
장 변호사 : 법조 선배로서 얘기하는 건데, 너무 범위를 넘어섰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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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어 사전에 준비해온 증인신문에 이어 송 변호사가 추가 신문을 하려하자, 장 변호사는 “그만 합시다. 그것 참!”이라며 언성을 높였다. 재판장은 “반대신문 한 뒤 추가신문을 하라”며 상황을 정리했다.
‘살벌한’ 분위기 속에서 기회를 얻은 장 변호사의 신문은 이렇게 이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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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 변호사 : 이상호 기자, 고생했고 수고 많았어요. 비꼬려는 게 아닙니다. 그런데 왜 원고인 김 전 지검장이 이 기자가 아닌, 노회찬씨만을 상대로 소송을 냈는지 압니까?
이 기자 : 저는 최대한 안전하게 보도했고, 노회찬 의원은 국회의원으로서의 특권과 의무를 가지고 용기있게 문제제기를 했기 때문에….
정 변호사 : 용기 있다고? 무모한 게 아니고요? 무모하다는 식으로 표현해주길 바랐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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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어 노 의원 쪽 대리인인 송 변호사의 추가질의에서도 또 한 번의 파열음이 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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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 변호사 : 피고인 노 의원이 지난해 8월18일 이전에 문제제기를 하기 전에, 이미 다른 언론에서 엑스파일의 구체적으로 보도했는데 어떤 보도 사례가 있었나요?
장 변호사 : (갑자기 끼어들며) 아무리 경험이 없는 변호사라고 해도 그렇지…. 그러려면 자료를 내세요!
송 변호사 : 좀 예의를 지키시죠.
이 기자 : 재판장님! 제가 말을 해도 되겠습니까. 경험 많은 변호사님이 재판장님 앞에서 말씀을 하셔서….
재판장 : 말씀하세요.
이 기자 : 그러면 하겠습니다. 진실은 말해야합니다.
장 변호사 : 누가 진실을 말하지 말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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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조 경험과 연배등을 내세워 언성까지 높아진 법정 논쟁에 방청객들의 눈살이 찌푸려졌다.
한편, 노 의원 쪽에서 증인으로 신청한, 엑스파일의 주인공인 홍 회장과 이 부회장은 이날 법정에 나오지 않았다. 재판장은 “신문 내용을 다 부인하는 취지로 홍씨와 이씨가 불출석 사유서를 제출해왔다”며 노 의원 쪽 변호인에게 “불출석 사유서를 검토해 증인으로 다시 신청할지를 검토해달라”고 말했다.
김태규 기자 dokbul@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