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원, 석명권 요구에 검찰 곤혹
삼성 에버랜드 사건 항소심 재판부가 20일 유죄 판결을 내린 1심에 대해 “논리적 비약이 있다”며 검찰에 석명권을 행사함에 따라 이건희 회장의 공모 관계를 밝히는 추가 수사가 어려움을 겪을 것으로 보인다.
재판부의 이 발언은 사실상 현 단계에서는 허태학, 박노빈씨에게 유죄를 선고하기가 어렵다는 뜻을 공개적으로 밝힌 것으로 해석된다. ‘머슴’에 불과한 허씨 등이 ‘주인’인 이건희 회장한테서 구체적으로 어떤 지시를 받았는지 모르는 상태에서 이들을 배임죄로 처벌하기는 어렵다는 것이다. 이에 따라 허씨 등의 유죄를 전제로 한 상태에서 진행 중인 이 회장에 대한 검찰 수사는 차질이 불가피하다.
검찰 안에서는 그동안 이 회장을 항소심 선고 전에 조사해야 한다는 견해와 선고 이후로 조사를 미뤄야 한다는 견해가 팽팽히 맞서왔다. 하지만 이날 재판부의 태도는 이 회장을 항소심 선고 이후에 조사해야 한다는 견해에 힘을 실어줄 것으로 보인다. 허씨 등에 대한 유죄가 불확실한 상태에서 이 회장을 공모 혐의로 조사한다는 게 검찰로서는 여간 부담스러운 일이 아니기 때문이다.
그러나 검찰이 의외로 이 회장 조사를 앞당기는 강수를 둘 것이라는 전망도 나온다. 재판부의 석명 요구에 응하기 위해 직접 이 회장의 진술을 받는 방법을 택할 수도 있다는 것이다. 이와 관련해 익명을 요구한 검찰 고위 관계자는 “재판부가 저렇게 나오면 우리도 따로 생각한 게 있다”며 묘한 여운을 남겼다. 이춘재 기자 cjlee@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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