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수' 고용 상대방 패 다 읽고 속여
사행성 PC방의 도박프로그램에 대한 해킹이 광범위하게 이뤄지고 있다는 풍문이 사실로 드러났다.
4일 광주 북부경찰서가 검거한 이모(32)씨 등 일당 11명이 만든 성인 PC방용 해킹 프로그램인 '돋보기'는 상대방이 어떤 '패'를 가지고 있는지 훤히 알 수 있도록 제작됐다.
이씨는 도박 프로그램인 'PC이야기'의 제작자로 이를 PC방에 보급했으면서 'PC이야기'의 해킹프로그램인 '돋보기'까지 개발해 유포한 혐의를 받고 있다.
도박 상대방의 '패'를 보이게 해준다는 의미로 '돋보기'로 불리는 해킹프로그램은 PC방 개발업자와 운영자들이 수익성을 높이기 위해 제작된 것으로 알려졌다.
원래 프로그램 개발업체들은 도박프로그램을 사행성 PC방에 공급하면서 '딜러비' 명목으로 판돈의 5% 가량을 받았는데 경찰의 단속이 심해지면서 '딜러비'가 2%까지 낮아져 수익성이 크게 떨어진 상태다.
이 때문에 경찰은 현재 사행성 PC방에서 운용중인 도박 프로그램 대부분이 '돋보기'를 갖고 있는 것으로 보고 있다.
김영근 북부경찰서 형사과장은 "이씨는 몇몇 다른 도박 프로그램에 대해서도 `돋보기'를 만들려고 했는데 현재 운영되는 대부분의 도박 프로그램에 대한 `돋보기'가 각각 존재한다고 봐도 과언이 아니다"고 말했다.
실제로 경찰은 이날 검거한 일당에게 "대부분의 도박 사이트 본사에서 '선수'를 고용해 수익을 올리고 있다"는 진술을 확보했으며 일부 지역에서는 조직폭력배들이 사기 도박에 개입하고 있는 정황도 포착했다.
도박 사이트 회사에 고용된 '선수'들은 게임 초반에는 푼돈을 잃어주다가 판돈이 커졌을 때 긁어들이는 고도의 심리전을 구사해 이용자들을 옭아매고 있다는 것이다.
경찰은 전국 20여개 도박 사이트 운영 업체 대부분이 이처럼 해킹프로그램을 이용, 부당 이득을 보고 있으며 해킹 프로그램을 구매한 상당수의 PC방 업자들도 비슷한 방법으로 돈을 벌어들이고 있는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이들이 가맹 PC방을 모집하면서 기획서에 '톱 시크릿' 항목으로 게임 중에 패를 읽거나 조작할 수 있는 '특별 옵션'이 있음을 강조한 것도 이를 뒷받침하고 있다.
경찰은 이날 해킹 프로그램이 담긴 USB 메모리 94개를 압수했지만 복사가 간단한 소프트웨어의 속성상 한번 유포된 프로그램의 유통을 막기는 어려워 보인다.
결국 해킹 프로그램을 이용해 게임을 마음대로 조작하는 사람들이 판을 치는 와중에 순진하게 게임을 하는 일반인들만 '봉'으로 전락할 수 밖에 없는 실정이다.
이세원 기자 sewonlee@yna.co.kr (광주=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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