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폭개입ㆍ업소난립ㆍ시상률 조작 등은 `복사판'
한나라당 홍준표 의원이 27일 자신의 홈페이지에서 "바다이야기 사태는 1993년 슬롯머신 사건의 재판"이라고 밝히면서 13년 전 전국을 떠들썩하게 한 슬롯머신 업계 비리 사건이 새삼 관심을 끈다.
당시 검찰 수사로 `6공 황태자'로 불리던 박철언 전 의원과 이건개 전 대검고검장이 슬롯머신 업계의 대부 정덕진(65)씨에게 돈을 받은 혐의로 구속 기소되는 등 큰 파장이 일었었다.
바다이야기 사태도 게임기 심의나 상품권 발행을 둘러싸고 정관계의 로비나 검은 돈 거래가 있었는지가 수사의 초점이어서 슬롯머신 사건 때처럼 고위 공무원 등 유력인사들의 비리가 드러날지 주목된다.
◇ 닮은 점 = 1993년 김영삼 정부 출범 직후 터진 슬롯머신 업계 비리 수사는 급속도로 확산돼 사회 문제로 인식돼 온 사행성 도박에 철퇴를 내렸다는 점에서 바다이야기를 중심으로 한 최근의 사행성 게임 비리 수사와 맥이 닿아 있다.
1980년대 중반까지 일부 호텔에서만 영업한 슬롯머신 업소는 1988년 서울올림픽을 거친 뒤 1990년대 들어 기하급수적으로 늘어 1993년 당시 서울에만 79개 업소가 문을 열었으며 전국적으로 330개가 넘는 업소가 들어서 사회 문제가 됐다.
바다이야기 등 사행성 성인오락 게임장 수도 빠른 속도로 늘어 몇 년 사이 1만5천개로 늘어났으며 수많은 서민들이 큰 돈을 탕진하고 인생을 망치는 사례가 속출해 심각한 사회 문제로 대두됐다.
당시 슬롯머신 업소 운영 전반에 조직폭력배가 깊숙히 개입했다는 사실이 수사를 통해 확인됐는데 이 점은 13년이 지난 현재의 사행성 오락 게임 업계에서도 공공연한 사실로 여기고 있다.
아직 수사 초반이어서 검찰 수사를 통해 확인되지는 않았지만 검찰은 경품용 상품권 유통망 및 오락실 운영에 조폭이 상당히 깊숙히 개입했다고 보고 수사망을 폭력조직 쪽으로도 좁혀가고 있다.
업주들이 승률을 조작하거나 최고 시상률을 턱없이 높게 잡은 것도 13년 전이나 지금이나 다를 바 없다.
당시 슬롯머신 수사에서 일부 업소는 100원을 넣어 1게임으로 챙길 수 있는 최고시상액을 법정한도(10만원) 보다 22배나 초과하는 220만원까지 설정했다가 적발되기도 했다.
바다이야기의 경우 `메모리 연타'와 `예시' 기능을 넣어 이용객들이 자리를 뜰 수 없도록 만들었고, 최고 200배가 넘는 상금을 줬다는 점에서 예나 지금이나 `한탕'을 노리는 업자들의 상술은 달라진 것이 없다.
사건의 주역이었던 정덕진씨와 바다이야기 제조사 대표 차용관씨가 각각 슬롯머신과 바다이야기로 떼돈을 벌었고 이 돈 중 일부로 사회공헌 사업을 한 것도 흥미롭다.
정씨는 1980년대 후반 치안본부장(현 경찰청장)과 내무장관(현 행자장관)에게 5차례나 표창장과 감사장을 받을 정도로 건실한 사업가이자 지역 유지로 행세했고, 바다이야기 제조사인 에이원비즈의 대주주 차용관씨도 게임기를 팔아 번 수백억원대 돈으로 대북사업을 벌이는 등 사회에 공헌했다.
북에서 태어난 정씨가 남한에 내려와 단성사 앞에서 암표장사를 해가며 주먹 세계의 제왕으로 군림하고 슬롯머신 업계를 평정했다면 바다이야기의 차씨는 게임 벤처에 발을 들여놓은 뒤 부침을 겪은 끝에 대박을 터뜨린 것도 유사하다. 두 사람은 모두 한 때 `성공신화'의 주인공으로 여겨지다 결국 비리 혐의가 드러나 쇠고랑을 찼다.
◇ 차이점 = 슬롯머신 업소가 대부분 호텔 내부에 자리잡아 서민들과 일정한 거리를 둔 반면 바다이야기 등 사행성 성인오락 게임업소는 대도시와 중소도시, 농어촌을 가리지 않고 동네 곳곳에 진출했다는 차이점이 우선 눈에 띈다.
당연히 슬롯머신 업소엔 어느 정도 쌈짓돈이 있는 회사원 등이 주로 찾았으나 사행성 성인오락실은 주머니 사정이 좋지 않은 서민들이 꼬여들었다.
정씨가 슬롯머신 업계에 영향력을 행사하면서 자신을 비호하는 검찰 경찰, 정치인들에게 뇌물을 상납했지만 바다 이야기는 아직 정관계에 어떤 로비를 벌였는지 구체적으로 드러나지 않고 있다. 다만 상품권 발행업체들이 게임산업개발원의 지정을 받기 위해 브로커를 통해 로비를 했다는 의혹만 있을 뿐이다.
슬롯머신이 업자와 조폭, 업자와 비호세력 간 관계로 비교적 단순한 비리 구조를 가진 반면, 사행성 오락게임이 `상품권'이라는 매개가 개입되면서 관련되는 기관이 많아졌고 사안이 훨씬 복잡해진 것도 차이점이다.
슬롯머신 수사가 김영삼 정부 초반 정권 차원의 의지가 반영돼 전격적으로 단행됐고 전 정부 고위 관계자들을 잇따라 낙마시켰다면 바다이야기 사건은 참여정부의 중후반에 터져 자칫 현 정부에 아킬레스 건이 될 수 있다는 전망이 나오는 점도 두 사건이 비교되는 대목이다.
조성현 기자 eyebrow76@yna.co.kr (서울=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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