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술심의는 불가능…부조리 생겨도 눈감아
민간기구로 견제 기관없어 감시 ‘무풍지대’
민간기구로 견제 기관없어 감시 ‘무풍지대’
검찰은 성인오락기 심의와 관련해 영상물등급위원회(위원장 이경순, 영등위) 아케이드게임소위원회 위원과 직원들의 비리를 집중적으로 수사하고 있다. 바다이야기·황금성 등 유명 성인오락기 심의만이 아니라 일상적으로 벌어진 각종 심의 부조리와 관련해 검찰이 잡은 혐의도 적지 않은 것으로 알려졌다.
하지만 수천종의 사행성 성인오락기가 버젓이 심의를 통과한 것이 꼭 영등위의 비리나 부조리 때문만으로 치부할 수는 없다. 현행 성인게임물 심의 제도나 담당기관 등 구조적 문제를 그대로 두고서는 언제든 비리와 부조리가 자라날 수 밖에 없기 때문이다.
전문가들이 지적하는 영등위 심의의 가장 큰 구조적 문제점은 성인오락기의 프로그램을 분석하는 ‘기술심의’ 능력이 아예 없다는 것이다. 예심위원과 소위 위원들은 성인오락기의 실제 작동원리를 모른 채 제조업체가 제출하는 게임설명서와 실제 성인오락기만 보고 심의를 한다. 당연히 제조업체는 게임설명서에 최대 100~200차례나 연타가 터진다는 등의 내용을 싣지 않고, 하루 50대 이상의 성인오락기를 심의하면서 실제로 기계를 작동시켜 예시·연타 기능을 확인하는 것도 불가능하다.
영등위는 심의를 통과한 성인오락기가 과도한 사행성으로 적발될 때마다 “불법 개·변조된 기계”라고 주장하지만, 실제로 심의 당시부터 사행성이 높게 제작된 것인지 이후에 개변조된 것인지도 판별할 능력이 없는 것이다. 똑같은 성인오락기를 이름만 바꿔 심의신청을 해도 하나는 통과하고 다른 하나는 통과하지 못하는 부조리도 ‘기술심의’가 있었다면 원천적으로 불가능한 일이다. 일본 등 외국의 경우 대부분 사전에 프로그램을 분석하는 ‘기술심의’를 실시하고 있다.
뿐만 아니라 심의위원들의 얘기로 보면, 영등위도 그동안의 심의를 통해 ‘영등위 심의’의 한계와 문제점을 익히 파악하고 있던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영등위는 ‘밥그릇’ 지키기에 골몰했을 뿐, 구조적 문제를 지닌 심의방식이나 심의주체의 변화에는 억지로 눈을 감았다는 것이다. 실제 지난해 하반기 성인오락기 심의 기관의 변경론이 대두되자, 영등위는 “영등위가 오락기 심의 적임”이라고 강력히 주장한 것은 그 대표적 예다.
심의위원들의 전문성도 늘 지적된다. 시민단체 인사나 변호사 등으로 구성된 소위원회 위원 대부분은 성인오락기를 잘아는 일부 위원이나 예심위원, 또는 회의를 이끄는 소위 의장의 의견에 휘둘릴 가능성이 높다.
심의 과정에 대한 감시가 전무한 것도 결정적인 허점이다. 그동안 드러난 것만으로도 영등위는 감사에서 공익요원까지 심의와 관련해 거액의 돈을 업자한테 받았다. 이보다 덜한 부조리도 속속 드러나고 있다. 하지만 매번 영등위는 내부적으로 조용히 사건을 덮었다. 엄청난 이권이 오가는 업무를 다루는 기관이지만 자정 능력과 의지도 없고, 영등위를 견제하는 다른 기관도 없다. 감사원이 9월부터 본격적으로 시작할 예정인 기관운영감사가 사실상 영등위에 대한 외부기관의 사실상 첫 견제인 것이다.
유신재 기자 ohora@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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