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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 사회일반

[현장스케치] 조관행 전 서울고법 부장판사 첫 공판

등록 2006-09-11 21:03수정 2006-09-12 09:17

법조 브로커 사건에 연루돼 구속영장이 청구된 조관행 전 고등법원 부장판사가 영장실질심사를 받기 위해 서울중앙지법에 들어서고 있다. 이정아 기자 leej@hani.co.kr
법조 브로커 사건에 연루돼 구속영장이 청구된 조관행 전 고등법원 부장판사가 영장실질심사를 받기 위해 서울중앙지법에 들어서고 있다. 이정아 기자 leej@hani.co.kr
11일 오후 2시, 서울중앙지법 418호 법정에서는 팽팽한 긴장감이 감돌고 있었다. 법조브로커 김홍수씨한테서 사건 청탁 명목으로 1억3천만원 어치의 금품을 받은 혐의(특정범죄가중처벌법의 알선수재)로 구속 기소된 조관행(50·사시22회)전 서울고법 부장판사의 첫 공판이 예정돼 있었기 때문이다. 전직 고위 법관이 연루된 사상 초유의 법조비리 사건인 만큼 사건을 담당한 서울중앙지검 특수1부 검사 3명이 검사석에 포진했으며, 법정에 나온 조 전 판사 쪽 변호인도 5명이나 됐다.

예정 시각보다 약간 늦은 2시3분께 형사합의 26부의 재판장인 황현주(49·24회)부장판사와 배석판사인 이현석(32·40회)·노유경(30·42회) 판사가 들어왔다. 이어 재판장이 사건번호와 피고인을 호명했다.

“사건번호 2006고합931. 피고인 조관행!”

구속 피고인 대기실 문이 열렸고 조 전 판사가 모습을 드러냈다. 하늘색 반팔 수의에 금테 안경을 낀 조 전 판사는 재판부를 향해 가볍게 인사를 하고 피고인석에 앉았다. 조 전 판사는 앉은 채로 본인임을 확인받는 ‘인정신문’을 받았다. 이어 검찰이 기소요지 진술을 하면서 본격적인 재판이 시작됐다.

검찰은 “이번 수사는 그동안의 잘못된 관행을 끊고 건전한 법조비리를 정착시키기 위해 비장한 각오로 시작된 것”이라며 “수사팀에게 심적인 부담이 컸지만 재판 업무에 종사자의 비리는 지위고하를 막론하고 엄정하게 처벌해야한다는 생각에 피고인을 기소하게 됐다”고 말했다.

이에 대해 조 전 판사의 변호인단은 “피고인이 전별금을 받거나 술자리에 참석해 품위를 손상시킨 잘못은 인정하고 깊게 뉘우치고 있으며 윤리적·도덕적 비난을 당연하게 생각하며 깊이 참회하고 있다”며 “그러나 사건청탁의 대가로 금품을 받은 적이 없는 만큼 피고인에게 파렴치범의 누명이 씌워져서는 안된다”고 말했다.

이어진 검찰 주신문에서 조 전 판사는 검찰신문 토씨 하나하나를 바로잡으며 또박또박 대답했다. 고위 법관 출신답게 검찰 질문의 의도를 미리 파악하고 이를 논리적으로 반박하려 애를 쓰는 모습이었다.

조 전 판사는 검찰이 김홍수씨의 진술을 빌어 “김씨를 매주 만나 술을 마시지 않았냐”고 묻자, “한 달에 한 번 정도 만났으며, 사무실에서 차 대접을 한 적도 있다. 일을 상의하기 위해 만난 적이 많았을 뿐 만나기만 하면 뭘 먹고 그러질 않았다”고 답했다. 이어 검찰이 “일을 상의한다는 것이 무슨 뜻이냐”고 되묻자 조씨는 “검찰이 ‘일’을 사건청탁으로 얘기하는 것 같은데, 사람이 사람을 사귀는 데 있어 일반적인 사람이 교류하는 것과 똑같다”고 말했다. 검찰이 거듭 “그 일이라는 게 뭐냐”고 물었으나 조씨는 “대답하지 않겠다”고 답했다.


이어 조 전 판사는 △구체적인 사건청탁 내용이나 △사건 상담을 받고 동기 변호사나 사법연수원 제자 변호사에게 사건을 소개해준 등 대부분의 기소사실에 대해서는 “기억나지 않는다”고 답했지만, 일부 신문사항에 대해서는 여러 이유를 들이대며 전혀 사실이 아니라고 주장했다.

검찰이 “양평티피시 골프장 민사소송 관련해 담보서류와 계약서를 읽어본 뒤 ‘경매는 힘들고, 회원권은 승소 가능성이 있다’고 사건 당사자에게 조언해주지 않았냐”고 묻자 조 전 판사는 “나중에 1심 판결문을 읽어봤는데, 상당히 복잡한 사건이었다. 신이 아닌 이상, 대법관도 간단한 서류 읽어보고 그렇게 말하지 못했을 거다. 그 진술이 거짓말이라는 정황이 철철 넘친다”고 주장했다.

또 검찰이 “사건 청탁과도 관련 없이 여러 차례에 걸쳐 1천만원에 가까운 돈을 받을 이유가 없지 않냐”고 묻자 조 전 판사는 “가까운 사람이니까 가능하다”며 “김씨가 정말 전문적으로 사건청탁 의도를 가지고 나를 사귀었다면 내가 담당한 사건을 청탁하는 게 쉬운데 그런 건 없었다. 논리적으로 어떻게 설명할 수 있겠냐”며 되묻기도 했다.김홍수씨로부터 1천만원 상당의 가구를 선물로 받았다는 기소내용에 대해 조 전 판사는 “김씨가 가구대금을 낸 사실을 알고 돈을 주려했지만 김씨가 받지 않았다”며 “그 정도의 선물은 주고받는 사이”라고 답했다. 이어 검찰이 “왜 검찰 조사에서는 가구 대금을 김씨에게 줬다고 거짓말했냐”고 묻자 “검찰이 그 사실을 사건 청탁과 연결시키려는 것을 알고 있기 때문에 그렇게 했다”고 답했다.

2시간 30분 동안의 검찰 주신문이 끝난 뒤 재판장은 휴정을 선언했다. 한 검사가 조 전 판사에게 “수고하셨습니다”라며 말을 건넸지만, 조 전 판사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조 전 판사는 심각한 표정으로 고개를 갸웃거리며 피고인 대기실로 들어갔다.

5시에 다시 시작된 오후 공판에서도 조 전 판사는 “김씨가 허위진술하고 있다”며 혐의를 부인했다. 조 전 판사는 “김씨가 자신과 사업관계로 다투던 박아무개씨가 내 도움으로 보석으로 나온 반면 자신은 돕지 않는다고 오해해 허위진술하고 있다”고 말했다. 이어 조 전 판사는 “김씨가 나와의 대질신문 때 진술을 번복하며 내 범죄혐의를 부인했는데 검찰이 이를 정확히 수사하지 않고 무리하게 기소했다”며 수사방식을 강하게 비난했다. 그는 “김씨가 내게 금품을 줬다는 혐의를 부인했는데도 검찰이 이를 자세히 따지지않고 서둘러 수사를 마무리했고 김씨는 또다시 진술을 번복한 상황”이라며 “당시 대질신문 때 끝까지 따지지않은 이유가 궁금하다”고 말했다.

조 전 판사의 목소리는 또렷했지만, 법대가 아닌 법정에 선 사실이 부끄러운듯 ‘후배판사’들의 눈을 쳐다보지 못했고 시선은 계속 신발코에 가 있었다. 황 부장판사는 “이 사건을 되도록 빨리 처리하고 싶은 게 법원의 바람”이라며 2주뒤 다음 재판을 열기로 했다. 재판이 모두 끝난 오후 6시10분께 조 전 판사는 말없이 방청석을 둘러본 뒤 피고인 대기실로 걸어들어갔다.

김태규 기자 dokbul@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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