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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 사회일반

[필진] 우리 동네 골프장, 돈이 문제다

등록 2006-09-19 00:34

사진 왼쪽 중간의 못위의 약간 희미한 능선 이쪽 골짝부터 모두 골프장 부지가 될 예정지임.
사진 왼쪽 중간의 못위의 약간 희미한 능선 이쪽 골짝부터 모두 골프장 부지가 될 예정지임.
우리 동네 골프장 문제는 아직도 진행 중이다. 군수는 자꾸만 시간을 늦추어 답변을 피하고, 골프장 추진하는 업체에서는 물밑 작업을 거의 끝냈다는 말도 들린다. 땅 임자들은 이미 땅을 팔 뜻을 확실하게 했고, 골프장 반대하던 주민들도 하나 둘 골프장 환영 쪽으로 돌아선다는 소문이다. 그 이면에는 국가에서 추진하는 일은 결국엔 하게 된다는 체념이 깔려있고, 골프장이 생긴다고 자기 삶에 별다른 이해타산이 없는 것 같으니 굳이 반대할 명분을 못 찾으니 알아서 하겠지 하는 부류가 태반이다. 골프장 추진하는 쪽 사람들로부터 술이라도 한 잔 얻어 걸치고, 앞으로 살기 좋은 마을이 될 것이라는 감언이설에 솔깃해져서 돌아선 사람들도 있단다. 은근히 골프장 반대하는 사람에게 노골적으로 무조건 반대만 할 것이 아니라 골프장 추진 쪽처럼 체계적이고 확실한 증거를 내 놓으라면서 반대를 위한 반대는 설득력이 없다는 말도 한단다.

그 말이 일리 있지만 농사꾼으로 평생을 한 터전에서 살아오는 사람들에겐 무리수가 아닐 수 없다. 건설업자들처럼 그 방면에 도사가 되어야 하는데. 도사가 되려면 우선 전문가를 초빙하여 공부를 해야 하고, 그러자면 농사 때려 치워야 하고, 뒷돈을 대 줄만한 든든한 거대 자본가가 있어야 하는데. 누가 있는가. 환경 단체도 가난하고, 전국 농민회도 가난하고, 민주노동당도 가난하다.

가난은 이럴 때 가장 불리한 조건이다.

우리 고장 농민회 측에서는 불안하다. 주민들을 단합시키지 못하면 승산 없는 싸움이지만 주민들을 모아 집회라도 하자면 우선 돈이 문제가 된다. 차량도 있어야 하고, 노인들 점심이라도 한 끼 대접해야 하고, 술잔이라도 돌려야 한다. 그게 순박한 촌로를 위한 인정이지 뇌물은 아니다. 골프장 추진 위원회에서는 이장 단을 모아서 공무원까지 대동하여 골프장 시찰을 시키고 친 환경 골프장을 만들겠다고 선물 공세를 편다는데. 농민회에서 무슨 돈이 있어 그 짓을 하겠는가. 농민 집회 한 번 하는 것도 내 호주머니 털어가며 하는 일이다. 그렇잖아도 앞서 골프장 반대 시위를 하면서도 개인 호주머니를 털었다는데. 이장 단에서도 동네를 위해서 고생한다고 성금을 내 놓기도 했다. 그 때문에 뒷공론을 들어야 했다. 골프장 추진을 원하는 사람들이 왜 동네 돈을 내느냐고 하는 모양이니 한 동네 사람들이 서로를 반목하고 등을 지는 사례가 늘고 있다. 농민회에서도 내부 분열이 있는 모양이다. 몇 명이 골프장 부지 안에 땅을 가지고 있으니 그 땅을 팔았으면 싶지 안 된다고 하기가 싫은 모양이다. 어떤 큰일을 도모함에 있어서도 제 잇속 먼저 챙기기에 급급하니 뒷간 갈 때 맘하고, 갔다 온 뒤의 맘하고 다르다고 욕먹는 정치가들 탓할 수만도 없겠다.

사람살이가 그런 모양이다. 제 잇속 먼저 챙기는 것을 나무랄 사람 없다. 수신제가 치국평천하라고 하지 않는가. 가정이 바로 서야 국가가 바로 선다는 말이 아닌가. 그렇다면 가장 사람다운 행동이 아닌가 싶다. 제 잇속도 못 챙기고 사는 사람이 바보란 뜻이다. 그 바보 측에 끼는 사람이 가장 가까운 사람이다.


그는 처음부터 골프장 반대쪽의 중앙에 서서 뛰었다. 내 고향을 사랑하고, 자연을 아끼는 사람이니 골프장으로 인해 야기될 우리 동네 현안 문제를 누구보다 잘 안다. 또한 골프장이 들어온다고 직접적인 영향권에 사는 것도 아니지만 무분별한 개발로 환경을 파괴하는 행위를 해서는 안 된다고 생각하는 사람이다. 그 사람이 이번에도 앞장을 선 모양이다. 골프장 공사를 강행하겠다는 취지가 발표되기 전에 농민 집회라도 열어보자고 안건을 낸 것이다. 농민 집회를 하려면 우선 얼마간의 자금이 필요하니 모두 힘들지만 힘닿는 데까지 솔선수범해서 얼마간의 개인 호주머니를 털어 만들어서 보자고 한 모양이다.

저녁에 몇 사람이 술병을 들고 우리 집에 찾아왔다. 술상을 마주하고 앉아 토론이 분분한데. 가만히 들어보니 돈 거출 하는 문제다. 자금을 조금이라도 확보해야 사람들을 모울 것이 아니냐는 이야기다. 농민회 회장이 자진해서 기 백 만원의 돈을 내 놓겠다고 한다. 일년 열 두 달 젖소 키우며 젖 짜서 버는 돈의 절반은 사료 대며 축사 개축이며 기계 구입비로 나가는데도 선뜻 거금을 내 놓겠다는 것을 보며 어떤 단체든지 장을 하는 사람의 배포는 남다른 데가 있구나. 감탄하면서도 정작 내 입장이 되니 걱정부터 앞선다. 내 발등에 떨어진 불도 끄기 어려운 현실인데. 그는 틀림없이 빚을 내서라도 얼마간의 몫 돈을 내 놓을 것이란 사실을 알기 때문이다.

늦은 밤 삽짝에 나가 사람들을 배웅하고 들어오며 슬쩍 그의 옆구리를 찔렀다.

“당신은 얼마 냈어? 내는 건 좋은데 제발 우리 형편 좀 챙기고 삽시다.”

한 마디 했지만 나는 금세 속으로 후회한다. 나도 어쩔 수 없는 속물이다. 남보다 내가 우선이고, 공익보다 개인이 먼저다. 그러니 골프장 건설로 이득이 생기는 사람들의 마음을 이해하고도 남음이 있다.

(*이 기사는 네티즌, 전문필자, 기자가 참여한 <필진네트워크> 기사로 한겨레의 입장과 다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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