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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 사회일반

[필진] 검사가 알려준 상식? 마땅히 말해야 하는 상식!

등록 2006-09-19 11:22

9월11일자 한겨레신문에 특이한 기획연재 기사가 올라왔다. 제목은 ‘현직검사가 말하는 수사 제대로 받는 법’이고 그 1회 기고문의 내용은 ‘피의자로서 수사를 받을 때 아무 것도 하지 말고 변호인에게 모든 것을 맡기’라는 행동지침이었다.

위 연재기사가 특이한 점은 필자가 현직 검사라는 점이다. 검사라면 범죄의 의심이 있는 사람을 상대로 수사를 하여 재판을 받도록 하는 사람인데, 그런 직무를 맡고 있는 사람이 그 동안 수사한 경험을 살려, 오히려 수사기관에 와서 입을 다물고 아무 말도 하지 말라는 조언을 함으로써 수사를 어렵게 한다는 것은 자신의 직무를 망각한 것이 아닌가 의심이 들게 하기 때문이다. 동료 검사들도 금검사에게 ‘이 자가 미쳤나하는 눈빛’을 보내고 ‘그런 걸 다 가르쳐주면 앞으로 수사를 어떻게 하려고 하느냐’는 말을 하는 사람이 대부분이었다고 한다. 또 검찰 고위간부가 금검사의 부적절한 행동을 호통쳤다는 소문도 있으며 ‘적절한 조치’를 취하도록 한다고 한다.

연 알려주어서는 안되는 것이었나?

그러나 위와 같은 검찰의 반응은 상당히 의외이다. 금 검사의 위 글에는 수사기관의 특별한 신문기법도(그런 것이 있는 지는 모르겠지만), 그 외의 범죄수사기법도 등장하지 않는다. 오히려 너무도 별것 아닌 내용에 ‘이게 뭐야?’하고 고개를 갸웃거리게 만든다.

아무 말도 하지 말라고 하는 것은 피의자에게 법률에 의한 진술거부권을 행사하라는 것이다.(형사소송법 제200조 제2항) 실제로 모든 수사기관은 피의자신문에 앞서 항상 진술거부권을 먼저 고지한다. 검사들도 아마 예외는 아닐 것이다.

변호인에게 모든 것을 맡기라고 하는 것 역시 변호인선임권(형사소송법 제30조)과 함께 변호인의 조력을 최대한 이용하라는 것이다. 경찰에서는 이 역시 진술거부권과 함께 고지를 해 준다. 검사들도 그럴 것이다. 2002년 12월 법무부령으로 책정된 ‘인권보호수사준책’에 의하면 피의자신문에 있어서의 변호인 참여까지 허용하였다.

피의자들에게 항상 알려주고 있는 위 진술거부권과 변호인 선임 및 참여에 대한 것을 금 검사는 왜 신문에까지 기고하였을까?

이는 금 검사 스스로 쓴 것과 같이 시민들에게 법적으로 인정되는 권리의 행사방법을 상세히 설명해 주고 이러한 권리를 제대로 행사하라고 권유하기 위한 것이다. 보통의 사람들은 평소 아무런 관심이 없다가, 또는 평소에 알고 있었다고 하더라도 일단 수사기관에 오면 긴장하고 두려워하기 마련이다. 그런 상태에서 신문 초기에 살짝 ‘진술거부권이 있고요, 변호인선임권도 있습니다. 변호인이 조사에 참여할 수도 있습니다’라고 듣는다 해도 그것이 무슨 의미인지, 어떻게 행사하여야 하는 권리인지 짧은 시간에 이해하기 어렵다. 따라서 그런 권리가 있음을 미리 알고 준비하는 것과는 방어권의 행사에 큰 차이가 발생하는 것이다.

그런데 왜 그런 난리일까?

그럼에도 불구하고 금검사의 이런 국민계몽적 ‘대한뉴스’스러운 글에 검찰이 민감한 반응을 보이는 것은 왜일까? 두 가지 추측이 가능하다.

첫째, 형식적으로는 진술거부권과 변호인선임권을 보장하고 있지만 실제 수사과정에서는 피의자에게 그렇게 하면 오히려 유죄를 받거나 중형을 받을 수 있다는 식으로 위협을 하여 실질적 보장을 하지 않는 것이 주된 신문의 방식이기 때문에 그 내용이 드러나면 더 이상 수사할 밑천이 바닥나기 때문이 아닌가 싶다. 위에 본 것처럼 동료 검사가 ‘그런 걸 다 가르쳐주면’이라고 했다는 데서 추정해볼 수 있다.

피의자의 심리상태와 증거를 활용한 신문기법 같은 것은 없고, 법적으로 보장된 진술거부권과 변호인선임권을 실제로는 사용하지 못하게 하는 수법이 전부이기 때문에 이제 큰일 났다고 생각한다는 추리. 가능하다. 하지만 더 좋은 신문기법이 있다고 믿고 싶다. 제발.

둘째, 위와 같은 팁을 공개하는 것은 거꾸로 생각하면 지금까지의 검찰 수사가 진술거부권도 보장해주지 않았던 반인권적인 수사를 해왔다는 것을 시인하는 것이나 다름없기 때문에 인권보장을 위한 준사법기관이라 자처한 검찰의 얼굴에 먹칠을 하는 행위이기 때문이라는 추정이다. 한 검사가 반농담조로 했다는 ‘조직에서 추방당하고 싶냐?’라는 말에서 추리한 것이다. 또 ‘변호사를 동반하지 않은 피의자를 상대로 밤새도록 똑같은 질문을 해서 자백을 받는 시대는 지났다’, ‘교통사고를 가장해서 피의자의 집 대문을 열게 한 것’ 등 금검사가 과거 이미 지난 시대의 수사관행을 반성하는 의미로 작성한 글에서도 추리가 가능하다.

인권을 존중하는 금검사를 표창하라

수사기관에 종사하는 사람이 수사기관의 업무를 어렵게 할 수 있는 글을 쓰면서까지 다른 사람들의 권리를 존중하고 배려하는 것은 쉽지 않았을 것이다. 그런 쉽지 않은 일을 한 금검사에게 표창은 하지 못할 망정 ‘적절한 조치’를 취한다고 하는 것은 이치에 맞지 않다. 그 적절한 조치가 표창이거나 칭찬이었다면 할 말은 없다.

평소 인권보장의 최후의 보루이고, 준사법기관임을 공공연하게 내세운 검찰은 오히려 위 기고문의 연재를 허락하고 단행본으로 묶어 국민들에게 무상배포함이 타당하다.

(*이 기사는 네티즌, 전문필자, 기자가 참여한 <필진네트워크> 기사로 한겨레의 입장과 다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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