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고이즈미
전두환 시절이 가고 노태우 시대가 오자 사람들은 “아, 옛날이여”를 읊조리곤 했다. 국민생활 첨병지표인 자장면 값까지 오르기 시작한 때문이다. 전두환 시절에는 살기 좋았는데 노태우가 청와대 차지하고부터는 사방 오르지 않는 것이 없더라는 불평뿐이었다. 역시 노태우는 “물태우”였던 것일까? 전두환은 평생 군화만 신고 살았으면서도 경제에 대한 동물적 감각이 있었다는 말일까? 아니면, 그의 참모들은 실물경제의 대가들이었나? 모두 틀린 말이다. 전두환은 살인정치로 물가마저 꼼짝 못하게 옭매었을 뿐 뭘 알아서 제대로 발전시킨 것은 아니었다. 그가 쫓겨난 후 참았던 봇물이 터진 것뿐이다. 그 물벼락을 어정쩡한 노태우 정권이 뒤집어 쓴 결과이다.
이와 정 반대의 혜택을 누렸다는 사람이 있다. 바로 일본의 고이즈미 총리다. 그는 집권 이전 소선거구제 개정으로 자민당 총재로서의 총리권한 강화, 그리고 총리관저/행정개혁 등 2개의 큰 개혁에 따른 최대 수혜자라는 말을 들었다. 이는 총리가 정국을 주도할 수 있는 상황에서 등장한 사람이라는 비하성 발언이기도 하다. 그러나 그가 단지 운 좋은 사람이라고 할 수 없다. “자민당을 깨부수겠다”는 공약대로 담합과 금권정치의 구덩이였던 파벌정치를 무력화시켰기 때문이다. 또한 그는 집권 당시 8.4%에 달하던 부실채권 비율을 1.8%까지 낮추었다. 중의원을 해산하면서까지 실현한 우정성 민영화 역시 그의 공적 중 하나라고 아겠다. 이뿐만이 아니다. 전문가에 의한 경제 프로세스 운영, 공무원 숫자 줄이기에 의한 작은 정부 실현 등도 그의 추진력과 정치력의 산물이다.
그는 이런 치적을 혼자서 이룩할 수 있었을까? 그에게는 이지마 비서관과 다케나카 총무상이 있었다. 저항세력 숙청 등의 악역을 자처한 심복들 말이다. 특히 다케나카 총무상은 경제학 교수로 재직 중 고이즈미 호에 승선하여 끝까지 그와 함께 항해했다. 내각 초기부터 함께하는 유일한 인물이다. 문득 부럽다는 생각을 감출 수 없다.
고이즈미는 덕장(德將)스타일은 결코 아니다. 악담의 선수이며 특유의 표적 때리기는 금메달감이다. 가라오케에서 X-JAPAN을 기막히게 불러대는 솜씨로 10대들의 인기스타 반열에 오르기도 했다. 이는 극장식 식당의 지배인이나 써먹는 수법이지만 사실 자국민에게 통하면 그만 아닌가. 고이즈미는 일본 총리이지 아시아권 총리가 아니다. 자신의 공약대로 신사참배를 강행할 것인지 주변국과의 관계를 고려해 참을 것인지 충분한 저울질도 했던 인물이다. 참배 쪽으로 무게중심이 기울자 끝까지 강행한 고집스러움도 있다. 우리를 포함한 아시아권에서는 비난의 대상이었지만 일본 국내에서는 50%대의 지지율을 유지하고 있었다. 이만하면 내수용 총리로서 충분한 자질 아닐까 싶다. 그러나 역시 그는 비열한 인간이다. 이혼한 아내에게 아이들 얼굴도 보지 못하게 할 만큼 냉혈한이기 때문이다.
컴퓨터 자판을 두드리며 문득 퇴임하는 그를 용병으로 수입하고 싶다는 생각을 했다. 비슷한 형태의 프로그램을 가동했는데 누구는 10%대의 지지율을 가지고 있고 또 다른 누구는 퇴임이 내일 모레인데도 40%가 넘는 지지율을 자랑하고 있다. 차이가 무엇일까? 때문에 그를 수입해 정치에 활용하자는 말이다. 물론 내수용 정책 중 양호한 결과물만 남기고 나머지 프로그램은 당연히 포맷해야 하겠다. 그의 머리 속에는 불필요하거나 혹은 진즉에 삭제했어야 할 버그들이 너무 많은 까닭이다. 오죽하면 이런 제안을 하겠는가. 어디 수입할 것이 없어서 고이즈미 따위를 수입하자고 하겠는가.
여의도나 청와대에 중뿔나게 들랑거리는 정치인들은 겸허히 돌아보라. 당신들이 고이즈미만큼 해냈는지 말이다. 그만한 심복을 가졌고 그처럼 고집스러움을 유지했는가. 당신들은 고이즈미를 욕할 자격조차 없다. 대통령이 다녀 온 나라에 우르르 몰려가서 “얼마 전 다녀간 사람 말 믿지 마세요.”라고 해대겠다는 존재들 아닌가. 국내에서 비게질 하는 것도 외신들이 비웃을 일인데 외국까지 가서 망신을 떨어야 하겠는가. 일본의 의원 어느 누구가 미국에 가서 고이즈미 욕을 했나 생각해 보라. 이제 그만하자. 촌스러운 정치는 이쯤에서 끝내야 한다. 할 수만 있다면 당신들 머리부터 포맷하고 싶다. 더 솔직히 말하자면 영원히 삭제하고 싶은 심정이다.
(*이 기사는 네티즌, 전문필자, 기자가 참여한 <필진네트워크> 기사로 한겨레의 입장과 다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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