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가의 반인도적 행위로 인해 피해를 봤다면 손해배상 청구권의 소멸시효가 지났어도 민법의 `신의칙'(신의성실의 원칙)에 따라 배상을 해야 한다는 판결이 나왔다.
서울고법 민사25부(길기봉 부장판사)는 1984년 청송보호감호소에서 교도관들에게 집단구타를 당해 숨진 박영두(당시 29세)씨의 유족이 국가를 상대로 낸 손해배상 청구소송 항소심에서 원고 패소한 1심을 깨고 "국가는 유족에게 2억3천만원을 배상하라"며 원고 일부승소 판결했다고 21일 밝혔다.
1심은 손해배상 채권의 소멸시효가 지났다며 배상 책임을 인정하지 않았지만 항소심은 반인도적 행위로 박씨가 숨졌고 사망 경위를 은폐해 진상이 뒤늦게 규명된 점 등을 들어 시효 주장은 신의칙(서로 상대방의 신뢰에 어긋나지 않도록 성실하게 행동해야 한다는 원칙)에 반해 인정할 수 없다고 판단했다.
재판부는 판결문에서 "원고들의 손해배상 청구권 소멸시효는 지났지만 교도소 등이 사망 경위를 은폐해 2001년 의문사진상규명위원회의 조사 결과가 나올 때까지 가혹행위의 내용을 파악할 수 없었던 유족이 국가를 상대로 소송을 내는 것은 사실상 불가능했기 때문에 소멸시효 주장은 허용될 수 없다"고 밝혔다.
민법과 예산회계법상 국가의 불법행위에 손해배상을 청구할 수 있는 시효는 `불법행위가 있었던 때로부터 5년 간' 또는 `손해 및 가해자를 안 날로부터 3년 간'이며 박씨 유족은 의문사위가 2001년 6월 발표한 조사결과를 토대로 2004년 4월 소송을 냈다.
임주영 기자 zoo@yna.co.kr (서울=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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