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공한 쿠테타는 처벌하지 않는다는 말이 있다.
어처구니 없는 말이지만 한때 이 말이 사실로 받아들여지던 암울한 때가 있었다. 한나라당 유기준 대변인이 지난 20일 태국 군부 쿠데타에 대한 논평 중에 노무현 대통령을 태국 탁신 총리에 비유하면서 태국 쿠테타를 타산지석으로 삼으라는 말은 아무리 경쟁관계의 입장에 있는 야당이지만 공당으로서 해야 할 수위를 넘은 발언이다. 이는 노무현 대통령을 쿠테타의 대상으로 보고 자신들이 쿠테타의 주역일 수 있다는 과거 군사독재정권 시절에나 있을 법한 인식을 한나라당이 가지고 있다는 반증으로 본다해도 한마라당은 할 말이 없다. 정치는 정권을 잡기 위해 상대 정당이나 정권을 비판하기도 하고 협력하기도 하면서 민주주의를 풍성하게 채워나가는 행위이다. 따라서 그 과정에는 최소한의 지켜야 할 선이 있고 최대한으로 노력해야 할 방향이 존재한다. 그런데 이 과정 속에 상대방을 적으로 간주하거나 제거해야 할 쿠테타의 대상으로 형상화하는 인식이 존재한다면 그것은 정치가 아니라 내전이자 전쟁이다.
현실 정치속에서 실제 쿠테타를 당한 사람을 비유해 당신도 그만한 사람이니 조심하라는 말은 도발적 발언이자 성공만 할 수 있다면 우리 정치사에 쿠테타가 다시 필요할 수도 있다는 인식을 한나라당이 가지고 있음을 자인하는 것으로서, 민주주의를 근본적으로 부인하는 망언이다. 보수적 언론매체인 조선일보마저 ‘남의 나라에서 일어난 쿠데타까지 억지로 갖다 붙여 상대방을 비난하는 것은 정치를 더욱 거칠게 만들 뿐이다’라며 유 대변인의 망언을 질타했다. 성공한 쿠테타도 쿠테타이긴 마찬가지다. 지금이 제국주의적 침략의 시대도 아니고 그렇다고 군부정권 시대도 아닌데 왜 한나라당이 이런 망언을 내뱉는지 참으로 한나라당의 시대착오적 인식이 유감스러울 따름이다.
2006. 9. 21
이영일 흥사단투명사회운동본부 운영위원
(*이 기사는 네티즌, 전문필자, 기자가 참여한 <필진네트워크> 기사로 한겨레의 입장과 다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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