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주고등법원 찾은 검찰총장 정상명 검찰총장(왼쪽)이 22일 이용훈 대법원장의 ‘검찰·변호사 비하 발언’ 논란과 관련한 법원·검찰 간 갈등이 지속되고 있는 가운데 광주고등법원을 찾아 이태운 법원장과 함께 법원장실로 가고 있다. 광주/연합뉴스
피고인 반론 보장·공개증거 중시 취지
“기소내용 의심사건은 100건 중 2~3건 ‘검찰이 잘했겠지’ 집행유예 타협 많아”
“기소내용 의심사건은 100건 중 2~3건 ‘검찰이 잘했겠지’ 집행유예 타협 많아”
개념·실태 짚어보니
이용훈 대법원장 발언 파문으로 공판중심주의가 법조계 안팎의 관심사로 떠올랐다.
공판중심주의는 우리 법 현실 속에서 오랜 역사적 맥락이 있다. 공개되지 않은 조사실에서 검찰이 피의자를 상대로 작성한 진술조서가 아니라, 공개된 법정에서 검증된 증거가 더 높은 증명력을 갖고 이를 통해 유무죄를 가려야 한다는 게 공판중심주의다. 근대적인 형사사법 제도의 대원칙으로, 당연히 받아들여져야 하는 이 개념이 논쟁의 빌미가 되는 현실의 뿌리는 독재정권 시절까지 거슬러 올라간다. 법원이 ‘통법부’라는 굴레를 뒤집어쓰고, 정권의 비호를 받던 검찰을 제대로 통제하지 못했던 과거에서 비롯한다는 것이 법조계 인사들의 설명이다.
시국사건에서 검찰의 공소장이 그대로 판결문으로 옮겨지거나, 시국사범의 영장이 기각됐다고 해서 검사가 법관을 압박하거나 뒷조사를 하던 과거 사례가 이를 보여준다.
따라서 공판중심주의는 사법부가 모든 권력에서 독립해 형사소송법에 충실하게 “재판을 제대로 해보자”는 자기반성이기도 하다. 앞서 윤관·최종영 등 이전 대법원장들도 누누이 강조해왔다.
공판중심주의를 위한 본격적인 첫걸음은 2003년 3월, 대법원이 도입한 ‘새로운 형사재판’ 모델이다. 피고인이 검사의 질문에 ‘예, 아니오’ 식으로만 대답하던 관행을 바꿔 본인의 주장을 충분히 펼칠 수 있도록 보장했다. ‘무죄 추정의 원칙’에 충실하도록 피고인 쪽의 증인 신청을 폭넓게 받아들이고, 피고인에게 불리한 진술을 한 사람이 법정에 증인으로 나오지 않으면 수사기관에서 했던 진술의 증거능력을 엄격히 심사하도록 했다. 그 결과, 같은해 4월부터 9월까지 6개월 동안의 무죄 선고율이 전년 같은 기간 대비 75% 정도 늘어났다. 또 유죄 예단을 갖지 않기 위해 검찰의 수사기록을 보지 않는 형사재판장들도 생겨났다. 2004년 12월에는 피고인이, 검찰이 작성한 피의자 신문 조서 내용에 대해 “내가 진술한 것과 다르다”고 부인하면 이를 증거로 쓰지 못하도록 하는 대법원 판례까지 나왔다. 검찰도 이러한 공판중심주의 강화 움직임에 일정 부분 호응해, 지난 4월 기소 단계에서 수사기록 전부를 재판부에 제출하는 기존의 방침을 바꿔, 기소할 때 공소장만 제출한 뒤 그 밖의 수사기록은 필요할 때마다 재판부에 제출하는 ‘증거 분리제출 제도’를 도입했다. 판사가 수사기록을 공판 전에 봄으로써 유죄 예단을 갖게 됐던 기존의 관행에서 벗어날 수 있는 환경이 조성된 것이다.
서울중앙지법 형사합의부 재판의 경우, 거의 주 5일 동안 재판을 하고 증거조사에 힘쓰는 등 공판중심주의의 원칙에 따라 법정에서 심리가 충실해지고 있다.
그러나 공판중심주의의 완성도는 높지 않다는 게 대체적인 평가다. 피고인이 일관성 있게 자신의 혐의를 부인해도 검찰 조서에 의존하는 경향은 여전하다는 것이다. 서울 지역 법원의 형사재판장은 “형사사건 100건 가운데 피고인이 혐의를 부인하는 건수가 10건 정도지만, 그 가운데 정말 검찰의 기소 내용에 의심이 가는 사건은 2~3건 정도”라며 “이 경우 충실한 심리를 통해 의심이 가시지 않으면 무죄를 쓰면 되지만, ‘검찰이 알아서 잘 했겠지’라는 생각에 집행유예 정도로 타협하는 경우가 있다”고 말했다. 서울 지역 법원의 한 중견판사는 “현재 공판중심주의의 완성도는 15% 정도”라며 “판사들이 기존에 검찰 조서에 의존하던 관행에서 쉽게 벗어나지 못하는 측면이 있다”고 말했다.김태규 기자 dokbul@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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