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4세대 여성사업가 천타냐씨
강제이주 70년 중앙아시아의 한인들(하)
지난 12일 타슈켄트 시내 팰리스호텔에서 만난 4세대 고려인 천타냐(34)씨는 우즈베키스탄에서 만날 수 있었던 어떤 고려인보다 화려했다. 뭉툭한 선글라스 차림에 운전기사가 열어주는 승용차 문으로 내린 그는 고려인 여성사업가였다. 1인당 국민총생산(GNP)이 4천달러에 머물고 있는 우즈베키스탄에서 신세대 고려인 대부분이 선망하는 삶을 살고 있었다. 그러나 그에 입에서 나온 다부진 쓴소리는 성공한 신세대 고려인의 덕목을 다시 한 번 생각하게 했다.
“요즘 젊은 고려인들은 지나치게 돈만 밝혀서 걱정입니다. 선대들은 아무 것도 없는 곳에서 하나하나 이뤘는데, 지금은 뭐든 한꺼번에 쉽게 이뤄질 것으로 생각하는 젊은 고려인들이 적지 않아요.”
그도 한 때 뭐든 할 수 있는 부잣집 둘째 딸이었다. 하지만 옛 소련이 해체되면서, 은행에 맡긴 집안의 돈을 모두 잃었다.“아파트 10채 값”이라고 했다. 반세기 동안 쌓아온 선대의 노력이 물거품이 됐다. 결국 아버지는 충격으로 병을 얻어 앓다가 1998년 숨졌다.
“역경이었지만 울지 않았다”는 천씨는 23살에 결혼했다가 29살 이혼하면서 졸지에 어머니와 딸까지 책임져야하는 가장이 됐다. 2002년, 사업을 시작한 계기였다.
직접 중국을 오가며, 빌린 돈으로 의류를 사다 팔았다. 한푼 한푼 모아 2003년 타슈켄트의 ‘타미리스 여행사’를 인수했다. 직원 2명이었던 회사는 이제 30명이다. 수익은 10배가 늘었다.
“꿈을 갖는 건 좋지만, 돈이 꿈이어선 안된다”는 천씨는 “젊은 고려인들의 경쟁력도 ‘교육’과 ‘사람과 관계’에서 나올 수 있다. 우즈베키스탄에서 성공한 고려인 여성사업가의 모델이 되고 싶다”는 당찬 포부를 밝혔다.
임인택 기자
항상 시민과 함께하겠습니다. 한겨레 구독신청 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