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도성·김화자씨 부부가 4일 지체장애 1급인 손자 환준이와 함께 동네 골목길을 걸어가고 있다. 강창광 기자 chang@hani.co.kr
아들은 가출, 생활 어렵지만 남들처럼 열심히 키워야죠
뇌성마비 손자 키우는 60대 노부부
뇌성마비 손자 키우는 60대 노부부
4일 아침 최도성(69·서울 성북구 돈암동)씨는 침침한 눈으로 운전대를 바투 잡았다. 손자 환준(10·돈암초등 4년)이를 시립뇌성마비복지관에 데리고 가는 길이다. 환준이는 지체장애 1급으로 팔다리가 온전치 않다.
지체장애를 지니고 태어난 첫 손자가 생후 20일 만에 숨지고, 이어 둘째인 환준이마저 지체장애를 지니고 태어나자 아이들의 아버지였던 아들은 충격으로 집을 뛰쳐나갔다. 환준이 양육은 고스란히 조부모 최씨와 김화자(63)씨 몫으로 남았다.
최씨도 담석증을 10년 넘게 앓아 눈이 어둡다. 하지만 수술은 엄두도 못 낸다. 집 전세금 4천만원이 유일한 재산인데 이마저 수술비로 털어버리고 나면 환준이 양육을 감당할 수 없어서다. 변변한 수입조차 없는 지금, 이들은 그동안 저축해둔 예금을 쪼개 쓰며 견딘다.
한때는 생활비 70만원 가운데 30만원을 환준이의 과외공부에 썼을 정도로 이를 악물고 가르쳤고, 환준이의 성적은 반에서 중간까지 올랐다. 하지만 빡빡한 생활비 탓에 지난달 환준이의 과외비는 접고 말았다. 최씨는 “기초생활 수급자로 선정되면 그나마 임대아파트라도 얻을 텐데” 하고 말하지만, 아들이 있어서 뜻 같지 않다.
최씨 부부의 희망인 환준이는 “글쓰는 사람이 되고 싶다”는 꿈을 수줍게 말했다. 몸이 허약해 또래와 잘 어울리지 못하다 보니 자연스레 책을 손에 쥐게 됐다. 컴퓨터게임도 즐겨했지만 얼마 전 모니터가 고장나 그만뒀다. 추석 때 뭘 하고 싶냐고 하자 현준이는 “제사 지내고 맛있는 거 먹고 고장난 모니터도 고치고 싶다”고 했다. 최씨는 “얘가 머리가 영특해 앞으로 큰일을 할 수도 있겠다”며 기대감을 감추지 않았다.
환준이는 날마다 1시간 가까이 받는 물리치료 덕에 몸을 더 잘 움직일 수 있게 됐다. 하지만 치료가 힘에 겨워 투정을 자주 부린다. 그럴 때마다 가슴 아파하는 최씨 부부지만 “얘가 대학교도 다니고 남들처럼 좋은 직장 얻는 걸 보는 날까지 살자”며 희망을 놓지 않는다. 두 사람은 어려운 형편에도 환준이 교육에 힘쓴 것을 인정받아 지난달 한국뇌성마비복지회에서 표창장을 받기도 했다.
추석이 지나면 환준이네는 2층 다가구주택에서 반지하방으로 이사를 가려 한다. 가진 돈이 서서히 바닥나 방을 줄여 생활비를 마련해야 하는 까닭이다.
한가위 아침, 환준이와 최씨 노부부의 차례상에도 과일·떡·나물 등이 오를 것이다. 오랜만에 모인 가족들의 왁자지껄한 웃음소리는 들리지 않지만, 꿈 많은 환준이가 있어 최씨 부부는 마냥 쓸쓸하지만은 않다.
전진식 기자 seek16@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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